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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야기, 창작27

눈 찌꺼기 밖은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하얀 눈은 나에게 닿자 마자이내 녹아버리고검은 빛 물들어 있는 어깨 위에서색을 바래 검게 물들고 만다. 녹아 사라지는 눈을 보다가시선을 돌린 길 위에는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없이더러운 찌꺼기로 가득할 뿐.아름다움은 짧고 찌꺼기는 길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녹아 없어질 것들이 생채기를 낸다.이것들아 그냥 없어져 버려라.이것들아 그냥 내리지 말아라.멀뚱이 하늘을 보며 소리 없이 항의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저 눈 보라 속에서어느새 나는 그저 찌꺼기 속에서더럽게 물든 나를 발견할 뿐,서럽게 울지 못해 차갑게 식어갈 뿐.녹아내리는 눈 물 한방울만이 아래로 떨어질 뿐. 아마 오늘은 밝아오는 아침까지 눈 찌꺼기가 내리려나 보다. 2014. 12. 18.
겨울새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과는 대조적인 추운 겨울, 새로운 싹을 틔울 시기는 춥기만 하다. 아프고 시린 삶을 감추듯 어둠을 지난 세상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순백의 세상은 속도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추위를 피해, 외로움을 피해 들어온 작은 카페에서 작은 창으로 트인 세상을 바라보았다. 하얗게 옷을 입은 나무 위로 작은새 위태롭게 앉아있다. 하얀 모래 밭 사이에서 아침이나 먹었을까. 얼어 붙은 세상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을까. 이리저리 쉴 새도 없이 고개를 흔든다. 바람이 부는 듯, 나무가 흔들린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곧게 서있는 나무일지라도 가지의 끝은 곧 부러지기라도 할 듯 본심을 드러낸다. 사방으로 흔들리는 가지 위의 작은새 떨어져 죽을까 마음을 준비했는데 새는 떨어지지 않았다. 바람은 나무를 흔.. 2014. 12. 18.
노점상 길 위에 늘어선 노점상들 앞으로완장을 차고 위풍 당당한 험상궂은 사내들이 달려든다.어제의 범죄가 오늘의 공무가 되어부수고, 넘어뜨리고, 으깨고, 뒤집는정의로운 폭력 그 앞에서울부짖는 아줌마, 짖밟힌 어묵 꼬지,씨뻘건 국물 얼룩진 땅바닥.조금전까지 온기를 채워준 사람들은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그저 바라볼 뿐.새벽 같이 일어나 그저 자식이 학교 잘 다녀오길,따뜻한 밥 한끼 먹길 바라는 마음은그렇게 버려질 뿐. 울분에 겨워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선다.길가에 놓인 작은 꽃 화분 하나가눈에 들어와 발로 차서 깨뜨렸다.꽃은 뿌리를 드러내고,환히 드러난 몸으로 나를 마주한다.꽃잎이 그의 얼굴에서 흐른다.한장, 두장, 석장, 넉장이제 벌거숭이가 된 그 꽃이 나에게 말한다. '그래, 네가 그랬지.' 2014.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