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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휴일을 보내다 (18.11.30)

by GrapeVine.Kim 2020. 2. 20.

휴일을 보내다.

직업 특성상 주말에 일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평일에 쉬는 날이 종종 있다. 아내와 함께 휴일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내는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어서 그렇게 되긴 어렵다. 막 잠에서 깬 모습으로 아침 일찍 출근길을 나서는 아내를 보내고, 우유 한 잔과 계란 두 알을 삼키면 다시 잠이 오기 시작한다. 전기 장판과 이불을 정갈하게 정리한 채 침대 위로 다이빙,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점심 먹을 시간이 다가온다. 늦은 외출 준비를 마치고 계획도 없이 밖으로 나온다. 집 근처 명지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당을 가고 카페를 간다. 나는 생기넘치는 학생들을 지나쳐 발걸음을 때다가 문득 마주친 돈까스 집 앞에서 허기를 느끼고 가게로 들어선다. 가게는 이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돈까스 집이었고,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다. 빈 테이블 하나를 발견해서 앉았는데, 괜시리 가게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왕돈까스 하나를 주문해서 조금 속도를 내어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하나. 약간의 추위와 적당한 햇살이 비치는 도로에는 자동차가 줄지어 달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지나간다.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잠시 궁금증이 들었지만, 알 길이 없다. 다른 사람들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내 삶을 알 수 없겠지 싶다. 맛있는 돈까스가 위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나, 괜시리 허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을 하며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도 내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언제나 같이 있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 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을 떨치기 위한 몸부림들을 떠올려 보았다. 깨달을 순간 조차 없도록 몰두하고 집중하고 탐닉했던 것들, 이해를 강요하고 분노했던 사람들, 인생의 동반자를 기다리고 찾아왔던 순간들, 성취하려 했던 것들, 실패를 이용해 괴로운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려고 했던 시도들, 그리고 목마름을 호소하며 올린 기도를. 그 모든 좌절들을.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외로움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숨쉬는 것 처럼, 사는 것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깨달음일수도 있고 포기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게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느껴지는 것들에 집중해보았다. 머리카락을 흔드는 바람을, 마른 낙엽이 바스라지는 소리를, 자동차 배기 가스의 메케함을,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유쾌한 소음을, 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공허함을. 나를 아는 이 하나 없는 거리에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더 건강해진 것이 아닌가 싶어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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