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리뷰



 나는 얼마 전까지 A라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했다. A시설에서는 6개월에 한번씩 ‘장터’라는 행사를 열었다. ‘장터’는 각종 물건들과 음식을 지역 주민들과 A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행사였고, 사회복지 기금 마련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A시설에서는 대대적인 홍보를 하곤 했다. 그러나 그 행사의 이면에는 좋은 모습만 담겨있진 않았다. A시설의 직원은 ‘장터’를 위해 자신의 애장품을 시설에 기부해야했다. A시설은 각 부서별로 장터에서 사용되는 화폐인 ‘쿠폰’을 약 100만 원가량 구입토록 했다. 내가 소속된 부서에는 부서원이 13명이었는데, 직급에 관계없이 100만 원을 나누어 쿠폰을 구입해야만 했다. 행사는 보통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진행되었는데, 모든 직원이 출근해야했다. 그러나 출근부에 출근이 기록되는 경우는 없었다. 시설장은 행사 날 이루어진 전 직원의 출근을 ‘자원봉사’로 규정했다. 누구도 자원하지 않았음에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비치지 못했다. 결국 행사는 성대하게 치러졌고 시설에는 자동차 한 대가 생겼다.


 하루하루 격무에 시달리던 나는 부서장에게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A시설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 받아 30대 중반에 100여명의 직원 중 권력 서열 3위에 오르고, 다른 직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 부서장은 나를 빈 프로그램실로 불러내어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회사가 없으면 나와 가족은 생활을 못해. 그래서 나는 회사가 가족보다, 그 무엇보다 우선이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김 선생은 책임감이 없는 것 아닌가?” 면담을 진행하며 김 부서장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해나갔다. 나는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내 삶을 조직에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직장을 다니며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휴일에 출근을 하지 않으면 안됐으며, 시설장의 자원봉사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됐다. 이는 말과 행동, 사유의 제한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과 행동, 사유의 제한을 요구받는다.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며, 생각을 제한당하는 인간을  두고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은 ‘대리인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대리인간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는 대리사회이다. 


 김민섭은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라는 책의 저자로 2015년 12월 까지 대학에서 현대소설 연구자로 생활했다. 그는 대학의 대리자로 대학에서 8년간 시간 강사로 일을 하였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그를 노동자로 대우하고 보호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과 생계를 위해 카카오드라이버의 대리운전자 일을 하였다. 그는 대리운전의 노동 현장에서 ‘대리’로 이루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고「대리사회」라는 책을 출간하게 됐다.


 대리운전자는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차주가 설정한 목적지로 운전을 한다. 대리운전자는 운전석을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듣고 싶은 음악을 틀 수 없다. 오직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으로 핸들과 악셀, 브레이크를 조정할 뿐 다른 행동의 자유는 없다. 또 손님이 먼저 말을 걸기 전에는 손님에게 먼저 말을 할 권리도 없다. 손님과의 대화에서 가치관이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때에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다.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도, 교수에게 학점을 따기 위한 학생들도, 거대하게는 한 국가의 국민도 이러한 대리인의 속성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김 부서장은 조직을 위해선 무엇이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자신처럼 하길 요구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조직에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었고, 조직의 일을 하며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조직의 대리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의 역할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것이고, 조직은 아무렇지 않게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의해 규정된 자가 아닌 주체로 서고 싶었다. 그렇다면 주체로 살기 위해선 직장인이 되면 안 되는 것인가? 어떤 조직에 속하면 안 되는 것인가? 어떤 사회에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누군가로부터 어떤 일을 수주하면 안 되는 것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대리인으로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김민섭은 대리인간을 두 부류로 구분하는 것 같다. 자신이 대리임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는 개인들을 주저앉힌다. 하지만 그것이 대리된 욕망임은 알지 못하고 주체로서 정의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국가/조직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는 모든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 자신이 대리임을 모르는 이들은 대리된 욕망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을 다스린다. 그러나 그에게도 언젠가 자신이 대리였음을 인식하는 순간이 온다. ‘자신을 주체로 믿던 누군가 밀려나고 나면 그를 잉여, 패배자로 규정하고는 곧 다른 대리인간을 세운다.’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동과 말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 김민섭은 한 발 물러서 자신을 바라보고 대리인으로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라고 이야기한다. 대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서야 주체로 살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다. 


 김민섭은 대리인인 자신을 발견하고서야 자신의 대리인이 된 타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대리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할 수 있게 되고, 대리인을 주체로 새워주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가 주체가 되기 위해서 대리사회를 깨우치고, 서로 주체로 설 수 있기를 이 책을 통해 바라는 것 같다.


 나는 주체로 살아가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런 와중에 「대리사회」를 읽고 그간 내가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내 대신 노동을 하고 있는 나의 가족이 나의 대리인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나의 대리인이 된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거기서 서로를 주체로 만드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대리사회의 실체를 파악한 김민섭은 다시 누군가의 대리인이 되어 타인의 운전석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다시 누군가의 대리인으로 돌아가야 함을 느낀다. 대리사회 속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실체를 파악하고 대리로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주체로 서는 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어 「대리사회」의 저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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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괴로운 청춘을 위하여





3개 국어를 하고 학점도 높지만 스펙이 걱정돼 지원했던 인턴직에서 교통비만 주겠다고 하진 않았습니까. 힘겹게 들어간 직장이지만 계속 다니다간 살아있지 못할 것 같아 퇴직하지는 않았습니까. 돈이 없어, 취업이 안 돼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고 싶어지진 않았습니까. 집을 사기 위해 평생 빚의 노예가 될 바에 오늘 하루, 나를 위한 사치를 하진 않았습니까. 여긴 아마 안 될 거야하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습니까.

 

만약 위 내용이 자신의 얘기라고 생각된다면, 나는 왜 이렇게 암울한 걸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면, 「청춘리포트」를 한번 읽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30대 청년들 중에서 위 내용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춘리포트는 중앙일보에 게재되었던 청춘에 관한 기사들을 한데 엮어 발간된 책입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2~30대 청춘들이 과연 누구인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취업, 연애, 결혼 등 삶에서 중요한 부분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 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독자는 대한민국 청년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을 통해 청년이 겪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서 청년들의 지갑 사정, 성 문제, 가방 속 풍경, 신조어, 정치, 관심사 등 청년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청년을 더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알 때, 청년의 문제는 개인적 좌절이라는 틀을 넘을 수 있게 됩니다. 부디 우리가 좌절을 넘어서 함께 청년의 삶을 바꾸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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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저자
허지웅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9-2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글쓰는 허지웅""의 에세이""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TV에서는 종종 보았던, 그러나 잘은 몰랐던 허지웅의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다 읽게 되었다.

자기 생각으로, 자기 방식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사는 사람은 멋지다. 그런 면에서 허지웅은 내 기준에서 멋진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 다른 이들의 에세이를 종종 읽게 된다. 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어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내게 누군가의 삶이 담긴 에세이에서 조금은 기운을 얻고 있기 때문일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과 생각들이다. 나는 나대로 나의 이야기와 생각을 정리하며, 편협하지 않으면서 소신 있는 삶을 꿈꾸어본다.

책을 보며, 록키 1편과 록키 발보아를 꼭 봐야겠다 생각이 든다. 기억해두었다가 감상해야지.

무엇보다, 주성치 영화에 관해 같은 것을 느끼고 있던 동지를 만난 것 같아 기쁘다. 소외된 사람들의 삶 속에 숨겨진 희망이랄까 그러한 것을 느끼게 해주어 주성치 영화에는 항상 애정이 있었던 나이기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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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2013)

Boomerang Family 
8
감독
송해성
출연
박해일, 윤제문, 공효진, 윤여정, 진지희
정보
가족 | 한국 | 113 분 | 2013-05-09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영화 초반에는 씁쓸한 마음이 가득했다. 따뜻한 가족 영화라고 생각했으나, 극 중 인물들의 삶의 모습들이 안타깝고, 우울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불편했기에 짜증이 날 정도였다. 왜 그렇게 마음에 불편함을 주었던 걸까. 그건, 그만큼 우리네 삶의 이야기인 것만 같고, 가까워서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떤 이들은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막장 느낌의 가족이 우리 삶과 가깝다고? 꿈 앞에 좌절한 사람, 범죄자로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 결혼에 실패하여 이혼한 사람, 힘겹게 살아가는 자식들을 품는 노부모...틈만 나면 치고 박고 싸우는 가족 같지 않음에도 밥상 앞에서 한 냄비에 숟가락을 담구어 먹는 식구들...조금만 둘러보면 우리 일상 속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영화는 인생의 실패자 같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한 가족이 되는 모습으로 진행된다. 극 중 인물들도 본인의 삶의 의미와 소중한 것들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살아가는 인생은 각자의 삶 자체로 의미가 있다."


라는 대사는, 원작의 작가가 주려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였을 것 같다. 극 중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우리네 삶에 위로가 되는 메시지.


아,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과 조금 다른 면이 있다고 하니,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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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시봉 (2015)

C'est Si Bon 
4.7
감독
김현석
출연
김윤석, 정우, 김희애, 한효주, 장현성
정보
로맨스/멜로, 코미디 | 한국 | 122 분 | 2015-02-05


김인권씨가 나오는 영화는 잘 챙겨보는 편. 영화 포스터에 김인권 씨가 그것도 정 가운데 딱 들어가 있어서 자세한 영화 정보를 확인도 안하고 봤는데! 아, 글쎄 김인권 씨는 그냥 비중 없는 조연이셨네...제대로 확인을 안한 나의 잘 못이니...허허허


영화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좋은 노래들과, 유명한 가수들의 이야기들이었기에 꽤 재미있었다. 또 극 속 인물들의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눈물샘을 자극했다. 적고 보니, 재미는 있으나 슬픈...?


개인적으로는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화라고 생각하고 상영 중에 몰입했으나, 이후에 거의 50% 정도가 각색된 허구라는 사실을 알아서 조금 허무.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은 나처럼 조금 허탈할 수도 있겠다.


좋은 이야기에 좋은 노래를 다시 한번 들을 수 있다는 의의가 있는 영화.

Posted by GrapeVine.Kim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
유시민 지음
출판사
생각의길 | 2013-03-1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힐링에서 스탠딩으로,멘붕 사회에 해독제로 쓰일 책자유인으로 돌아...
가격비교



유시민 씨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활동하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정치 활동을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기에, 유시민 씨에 대해선 자세히 알고 있는게 거의 없었다. 그러다 우연하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유시민 씨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셨던 분이었기에 내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호감이 있던 공인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갈 것에 대해 어느정도 호기심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뭐랄까 에쎄이 집이다. 삶에 대한 에쎄이. 그렇기에 책의 저자는 정치인 유시민이 아닌, 인간 유시민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처럼 삶을 대하는 한 인간의 고찰에 대해 다룬다. 살아온 연륜이 있어서인지 정리된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미하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부터 시작해서 죽음, 사랑, 조금 더 인생을 받아들이는 생각 들 등 삶의 전반 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내 삶은 그저 흘러가는 삶인가, 나에게 정말 의미가 있는 삶인가. 내 삶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의 삶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어린 시절,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왠만한 사람보다는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콧대도 높았고, 눈도 높았다. 실패라는 경험이 별로 없었다. 잘 못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실재로는 아니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의 작음을 볼 때마다 힘들었다. 부족한 것이 보일 때마다 괴로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고,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경험하고 지금에 이르르니,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이랑 별 차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의 좌절 앞에서 오히려 자신감이 떨어졌다. 외적으로 내세울 것 없는 지금의 인생이 초라해 보일 때도 있었다.


나에게 삶의 의미는 보이는 것에 달려 있을까? 성공에 달려 있을까? 성공이 뭘까? 진정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혼자서 살아보겠다고 이것도 저것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기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것. 단순히 먹는 문제와 입는 문제, 자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급급하기 보다, 내가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 의미 있는 것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 것.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들이 어쩌면 지금의 삶을 선택한 나와 화해해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살아가며 세상과 나에 대해서 정리가 된다는 것과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고 정리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매우 큰 선물이자 마땅한 인생의 길이지 않을까. 담담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 풀이하는 유시민 씨의 글에서 평온이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에서 서술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유시민 씨의 것일 뿐, 나의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삶은 무엇인가와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를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나를 다독이며 나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GrapeVine.Kim



 친구가 별로 없었던 어린 시절, 내겐 학교가 끝나고서 갈 곳은 집 밖에 없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보지도, 친구네 집에 놀러가 밥을 얻어먹은 적도 내겐 생소한 일이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종종 같은 반에 속하게 된 아이들이 서로의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묻는다. 


놀 곳이 없던 그 때에는 새로운 친구의 집에 놀러가는 것이 친해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묻는 것이 두려웠다.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술에 취해서 할 일 없이 담배만 피워대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를 데려오지도, 또 놀러가지도 않았고 혼자 집으로 향했다.



집에선 항상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다. 몇 년을 맡아온 익숙해질법한 냄새였지만, 어린 내겐 너무나 독하고 싫은 냄새였다. 굴러다니는 녹색 술병과 지저분하게 떨어져있는 담뱃재와 꽁초들을 앞두고 폐인처럼 누워있던 아버지가 너무나 싫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밤만 되면 전쟁을 했다. 하루를 살기 위해서 종일 힘들게 밖에서 일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는 지친 몸으로 집에 왔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이었다. 두 사람은 자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욕설과 폭력을 숨기지 않았다. 매일 이어져오는 그 전쟁 속에서 어린 나와 동생은 무서워 떨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나에게 꿈은 평범한 생활이었다. 가족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여력이 있는 다정한 어머니. 매일 재미있진 않지만 쉴 수 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가족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뭐가 되고 싶다거나 뭘 하고 싶다거나 하는 질문에 나는 그저 그런 소박한 이야기로 안정을 기대했다.



매일 이어지는 전쟁과 같은 시간- 집 밖에 갈 곳이 없는 나에게 집은 전쟁터였고, 친구도 없던 나에게 마음 붙일 곳이란 없었다. 함께 살아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함께 살아감은 아픔이고 고통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누구도 없다고 여긴 나는 마음을 닫고 오로지 자신만을 보호하기에 급급한 사람이 되어갔다. 때론 서러움에 오열하고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지만 그런 마음도 어느새 차갑게 굳어버려 깊숙한 곳에 묻히고 말았다.



가족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내게 그 시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준 상처로 가득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무엇으로 그 시간을 이겨내고 살았을까. 이겨냈다는 표현보다 버티어냈다는 표현이 맞겠지 싶다.



당시 내게는 함께 그 시간을 버티어줄 버팀목 같은 사람이 곁에 없었다. 이제는 필요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던 나는 사실 내 작은 손을 놓지 않고 꼭 붙들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 같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슬픔에 잠들었던 그 밤들...누군가를 기다리며 나는 혼자라는 생각으로 채워졌던 깊은 외로움의 순간들. 책속에서 발견한 타인의 아픔 속에서 그 때를 기억하게 되는 오늘은 그 외로움과 슬픔을 잠시 꺼내어 본다.



비록 그 때 내게는 없었지만, 방황과 상처의 시기를 함께 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조금은 덜 아프고 덜 무섭고 덜 힘들지 않았을까. 가슴과 머리에 있는 멍울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대학시절 만난 공동체 지체들은 아픔을 만져주는 손길이었고, 넘어져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듬직한 팔이었다. 상처를 간직한 채 손을 놓지 않았던 그들의 사랑이 닫힌 마음을 열고 함께함과 사랑을 알게 해주었다. 참 다행이다.



받은 것 보다 줄 수 없는 나의 작음에 여전히 부끄럽지만, 비록 상처가 남아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다 해도, 힘든 누군가에게 있어서 그 손을 꼭 붙들어줄 작은 손이 되어주며 살리라 다짐해본다.


또 누군가가 내밀어 줄 그 손을 꼭 붙들며 살기를, 그렇게 함께 지지하며 기댈 곳이 되어주며 살아가기를 소망해본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떤 완벽한 사람이 번쩍 안아 원하는 곳으로 옮겨 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 만나기가 또 쉽지 않습니다. 우리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서로에게 작은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작가 김려령의 말 중에서




- 2012. 08.22의 기록

Posted by GrapeVine.Kim


멍청이들을 위한 나라는 있다.


- 영화 ‘남쪽으로 튀어’ Review


  


멍청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지인의 결혼식에 갈 때는 흰 봉투에 지폐를 홀수로 맞추어 가고, 장례식에 갈 때는 지폐를 짝수로 맞추어 가야 한다. 명절, 조카들을 보면 몇 만원 용돈을 쥐어줘야 하고, 사무실 휴지통을 비울 때는 서열이 높은 과장보다 서열이 낮은 신입 사원이 움직여야 한다. 이 밖에도 우리가 살면서 지켜가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멍청이는 우리가 당연히 알고 지켜야 할 것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필자는 멍청이다.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상식과 같은 것들을 잘 모를 때가 있다. 이해할 수 없어 반문을 던지면 질타를 받기 일쑤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는 것들을 다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는 멍청이로 낙인찍힐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정했는지도 모르는 것들에 둘러싸여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 빠져나가는 국영방송 TV수신료, 세금, 누가 만드는지 모르는 학교 급식, 정치인들이 만드는 국가 정책...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요구받는다. 당연하게 세금을 지불하고, 당연하게 명령에 복종하고, 누군가 주도한 변화를 수용하며 산다. 때로는 법이, 때로는 상식이, 때로는 문화가 그렇다.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저 수용과 복종이 필요할 뿐이다. 답답하지 않은가? 정해진 조건에서, 정해진 공간에서만 헤엄치는 어항 속 물고기 같지 않은가?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어항 밖을 나가면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이니 어항 안에서 살아가라는 거인의 목소리뿐이라 하겠다.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거대한 눈동자를 느낄 수 있는가?


  


최해갑(김윤석 역)은 대한민국이 가장 골머리 썩는 남자다. 젊은 시절 사회 운동을 하던 그는 TV수신료를 걷으러 온 공무원을 문전박대하고 TV를 창밖으로 던져 수신료를 낼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국민 연금을 강제하는 국민연금공단에 찾아가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세금을 내야한다는 이야기에 불끈하여 대한민국 국민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으니 이제 대한민국 국민 안한다고 으름장을 내고 돌아오기도 한다. 독립영화 감독인 그는 주민등록증으로 국민을 감시하려는 국가에 맞서서 영화를 만들고는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리기까지 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에게 국가는 국정원 직원까지 붙여 감시를 하곤 한다. 


그런 그의 생각은 일상에도 녹아있다. 나라(백승환 역)가 동네 불량배들과 싸워 집을 나갔을 때도, 여타 부모와 같지 않은 면모를 보여준다. 걱정도, 불같은 화도 없이 잘 갔다 오라고만 한다. 다만 자신이 책임을 지기만 하면 된다고 덧붙일 뿐.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부모가 어떻게 그것 밖에 안 되느냐고 비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는 최해갑이지만, 사실 최해갑만큼 괜찮은 사람도 이 시대에 드물듯 하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급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에 교장을 찾아가 으름장을 놓는다거나, 딸이 자취하는 집에 찾아가 딸이 잘 지내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후배의 안위를 위해 싸움도 마다 않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불편한 사실들에 맞서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진다. 




결국 변변한 직업도 없이 집과 가게를 잃은 최해갑과 식구들은, 과거 자신의 고향인 섬이 국유지가 되어 기업에 팔리고, 호텔이 들어서 주민들이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남해의 고향 섬으로 돌아간다. 최해갑은 그곳에서 혈혈단신으로 섬을 팔아 돈을 벌려는 국가와 사업자들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섬 개발은 법적으로 적법한 사업이었다. 섬 개발은 국가와 거대 기업이 진행하고 있던 일이다. 그들은 공권력과 자본과 용역들의 힘으로 사업을 밀어붙인다. 아무도 맞설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건 아무리 잘못됐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설사 그 실체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자본가와 정치인의 사업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최해갑은 아무도 이야기 하려하지 않은 일,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에 나선다. 할 말은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이 사회의 꼴통이 된다.


  


멍청이가, 꼴통이 되면 외톨이가 될까? 최해갑의 이웃들, 가족들이 끝까지 그와 함께하며 기뻐한 것은 왜였을까. 최해갑의 아내와 자녀들은 언제나 그와 함께 했다. 그리고 최해갑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살기도 했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 싸움에 선다. 응원과 함께 하는 사람들,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마음, 도움의 손길 등. 최해갑이 마지막까지 멍청이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응원한 아내와 자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낮은 곳으로, 더 정직한 삶으로, 더 본질적인 것으로, 십자가로 살아가려하는, 정말 세상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우리가 이 길을 걷기 위해선 그래서 함께 걷는 동행자들이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뭐, 결국 최해갑과 아내 안봉희(오연수 역)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입장이 되어서 남쪽으로 튀었다. 멍청한 사람들을 위한 나라를 찾으러. 이런 멍청이들. 우리도 그런 멍청이가 되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부를 위해 살아가야함에 의문을 던지고, 합법적이라는 이유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빼앗는 시대에 의문을 던지고, 먹고 살길이 막히더라도 제대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그래도 함께 하는 공동체 지체들이 있기에 겁을 내지 말고서. 남쪽으로 튀며 살아보자. 어딘가, 언젠가 멍청이들을 위한 나라가 올 테니. 



Posted by GrapeVin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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