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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9.15 170915
  3. 2017.09.08 그대가 손을 뻗었을 때
  4. 2017.09.03 등이 굽었다
  5. 2017.08.31 그런 친구 있지 않았어?
  6. 2017.08.29 3,900원의 인성
  7. 2017.08.29 행복한 말
  8. 2017.08.29 노키즈 존에 관한 단상
  9. 2017.08.29 옳고 그름
  10. 2017.08.11 사람은 좌 우로 나뉘지 않는다.

170918 묵상노트 / 로마서 12:17-21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어젯 밤, 아내와 함께 동네 길을 걸었다.


“속으로 참을 줄만 알았던 나는 당신에게서 표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반대로 당신은 참고 인내하고 받아주는 것을 배우고 있나요?”


오늘은 한 동네에 사는 미선 이모를 카페에서 만났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니. 품어주는 것이지. 그렇게 지내다보면, 그 사람의 좋은 장점들이 보인단다. 장점들이 더 많이 보이면, 상대의 단점 따위는 가리워지지.”


갑작스럽게 나에게로 다가오는 말들이 비슷한 맥락을 가진 것 처럼 보였다. 비슷한 말들이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리니, 나에게 필요했던 이야기구나 싶었다. 나는 주장할 뿐, 참아주지는 못했던가. 사람 사는 사이에서 부딪치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했던 것이었나보다.

내 주변에 원수라 부를 이가 있었던가. 사실은 친구, 가족, 형제와 자매가 아니었겠는가. 원수조차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 하나님이신데, 하물며 내 형제와 자매는 어찌 대해야하겠는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에 반성을 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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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악플에 대처하는 법, 그것은 악플에 리플을 하지 않는 것이다. 철저한 무관심, 그것이 집요한 관심과 가학적 들춰냄을 무력하게만들고, 와해시켜 버린다. 일단 반응을 보이면 악플을 단 사람은 한 마리의 상처 입은 식량을 탐하는 하이에나와 같이 주변을 서성이다가 약점을 물어버리곤 놓치 않는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이었나. 사람은 하나의 식물과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물과 볕이 사라진 곳에 말라버린 생명이 남겨진 것 처럼, 관심을 받지 못한 인간은 결국 그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고독한 그림자에 가리워지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선한 의지로, 혹은 선한 의지가 자신에게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한다. 너, 어떠니. 잘 지내니. 그건 왜그래. 그건 어떠니. 이것은 누군가에겐 한 줄기의 빛이요, 한 줌의 소금이 된다.

그러나 생명을 향한 선한 의지임에도, 때론 그 의지가 의도와는 다르게 될 때가 있지는 않은가. 타인에 대해 알고 싶은 나의 의지가 충분하여도 누군가의 모습을 다 알 수가 있는가. 다 이해할 수 있는가. 타인의 마음과 삶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약간의 관심만으로 충분한가. 그것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할 요건을 알아내는 것과는 다른 문제가 된다. 목 마름을 위해 필요한 것을 아는 것과 목 마름을 채우는 것의 차이다. 너를 더 알고 싶다. 너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이렇게 말할 때, 상대가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응당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의 슬픔을 어찌 다 말 하리오, 나 조차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을 어찌 표현하리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슬픔을 내게도 나눠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너 어쩌려고 그러하느냐. 나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소. 그래서 그 이런 일은 무엇이고 저런 일은 무엇이냐. 그건 은밀한 것이고, 아무에게나 알릴 수는 없는 일이오. 그렇다면 너는 참말로 잘 못하고 있다. 왜요. 너는 우리를 이해시키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게 시간이나 죽이고 있지 않느냐. 나는 설명할 수 없단 말이오. 이 고통을 다 말할 수 없단 말이오.

때로는 무관심이 필요한 것도 사람이라. 소금 물을 만들기 위해 물에 소금을 넣고, 소금을 얻기 위해 다시 볕을 쬐는 것처럼 되지는 않는 것이 사람이라. 관심과 무관심의 경계를 만드는 것이 지혜의 한 길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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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그대가 손을 뻗었을 때


나 그대의 손을 붙들지 않으리라


마른 목에 건네는 생수 한병을 마시지 않으리라


나 칼을 들어 그대를 찌르노라


튀어오르는 피로 타는 목을 축이리라


그대의 사랑은 그림자가 되는 것이요


그대의 선행은 달콤함이니


나는 피로써 바다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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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등이 굽었다.



“앉을 때 뱃살이 접히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의 몸이 자유하리라.”


“식탐이 많은 사람은 해가 있다. 그들이 나중에 먹을 것을 이미 다 먹었다.”

  • 김용훈


어린 시절, 살이 찌고 배가 많이 나왔었다. 지난 번에도 잠시 말했지만, 어린 나이에는 또래 친구들로부터 살 찌고, 배 나온 것이 큰 흠결이 되고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것이 큰 약점이나 되는 듯이 놀림의 이유가 되었다. 돼지야, 뚱뚱아. 놀림은 화와 더불어 수치심을 불러왔다. 분명 놀리는 애가 못난 것인데, 수치심을 느끼는 내 몸뚱아리가 부끄러워졌던 것은 왜였는지. 창피한 감정은 숨기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퉁-하고 튀어 나온 배를 숨기고 싶었다. 갑자기 살을 뺄 수는 없지만, 갑작스럽게 배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을 결국 찾아냈다. 배를 최대한 집어 넣는 것이다.


그때는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줄로만 알았다. 숨기면 숨겨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배를 안으로 집어 넣으니 자연스레 등을 구부리게 되었다. 등이 구부러지면서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움츠러은 어깨는 앞으로 고꾸라지는 목과, 숙여진 얼굴로 연결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앞으로 구부린 10대 초반의 아이란. 수치심을 감추기 위한 몸부림은 수치심 그 자체로 드러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모두 숨겨진 줄로만, 문제가 해결된 줄로만 알았다.


“애, 너는 왜 이렇게 허리가 굽었니? 어깨좀 펴라.”


“어머, 어머, 왜이래, 안펴지네? 자세가 왜 그래?”


오랜 시간이 지나자 허리가 꼿꼿하게 잘 펴지지 않았다. 목은 앞으로 뻗은 거북목이 되어 있다. 무엇이 그렇게 떳떳하지 못했던 건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던건지, 나는 스스로에게 벌을 내렸나싶다.


자세가 좋지 않아서인지, 허리 통증이나 어깨, 목의 통증이 느껴질 때가 많다. 통증이 느껴지면 자세를 바로 하려고 노력해보는데, 오랫동안 굳은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이제 나는 조금 커서, 뱃살을 숨기려고 집어넣어도 숨겨지지 않을 뿐더러 곧바로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이제는 목을 높이 들고, 어깨를 펴고, 허리의 자연스런 굴곡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한다. 살찐 30대로써 자연스레 뱃살이 통-하고 튀어나온다. 배 좀 봐라. 애, 이거 어쩌냐. 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애써 숨기지 않는다. 그저 나 배가 나왔으니 볼테면 봐라 하고 배를 내민다. 다만, 더 적게 먹고, 더 움직이려고 노력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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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친구 있지 않았어?


눈을 감고 샤워를 하거나, 예능 방송을 보면서 배꼽 잡고 웃거나, 식당에서 고기 한점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너무 질겨서 삼키지 못할 타이밍에 가끔 생각나는 사람말이야. 생각이 나면 가슴 한 편이 바늘로 찔리는 것 같기도하고 손가락 끝에 튀어나온 손톱으로 닿을랑 말랑 간지렵히는 것 같기도한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말이야.


중학교 2학년 때 였나. 아니, 1학년 때 였나.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초코 다이제도, 그냥 생 다이제도, 비틀즈였나 그런 사탕도 나눠먹었었지.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먼저 누구한테 다가가기가 어려웠는데, 그 친구는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어. 쉬는 시간이 되면 내 자리 근처로 오거나 다른 친구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지. 이상하게도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하기도 했었지. 화장실은 사실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긴 하네. 그래도 그 친구가 먼저 다가와줘서 난 금새 그 친구랑 친해질 수 있었어.


그러다 그 친구의 집을 알게 되었지. 그 친구는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었어. 놀다보면 반드시 몇 시까진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 친구는 그이야기를 하는 것에 개의치 않아했어. 그냥 나 여기 살아. 너는 어디 사니? 이렇게 사는 곳을 쉽게 말하고 물어보는 친구였어. 나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지.


가끔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어. 뭐 대단하지도 않고, 좋을 것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와서 편하게 놀다가 가곤 했던것 같아.


그러다 어느날, 친구가 나를 모른척하기 시작했어. 안녕. 하고 인사를하면 오~ 라거나 여~ 라는 추임새를 붙여줘야하는데 한번 스윽-보고 지나가버리는 녀석의 반응에 난 크게 당황했지. 그 때부터 그 친구는 쉬는 시간에 내 자리에 오지도, 다른 친구의 자리로 날 데려가지도 않았어.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았고. 과자가 있으면 혼자 먹었지. 쉬는 시간에 과자를 못 얻어먹는건 상관 없는데, 그 때는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어. 이유를 물어봤어야했는데, 차가운 그 녀석의 얼굴 표정 앞에서 이유를 물어볼 용기가 잘 나지 않았지. 이가 하나 빠진 것 같고, 손가락 하나가 부러진 것 같은 허전함과 불안감에 집에 혼자 있을 때 눈물이 나기도 했어.


한 3개월쯤 지났으려나? 그 친구가 나에게 버디 버디 메시지를 보내왔지. ‘미안해, 네가 너무 부러웠어’라는 짧은 메시지에 나는 바보같이 ‘괜찮아’라는 답장을 보내버리고 말았어.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메시지로 짧게 미안해라고밖에 말하지 않은 그 친구에게 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간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말해야했는데 난 왜인지 그러지 못했어. 뭐가 부러웠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어. 나도 참 생각이 없던거지. 그냥 그 때는 신이 났어. 아, 내가 이 친구랑 다음날부터 다시 인사를 할 수 있구나, 과자를 같이 나눠먹을 수 있구나하는 기대감에 너무 신이 났어.


다음날부터 다시 그 친구와 반갑게 인사를 했어. 우린 다시 친구가 될 거라고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내 안에 자란 괴로움과 슬픔은 뿌리가 남아있었고, 그 친구의 질투심도 여전히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지. 금새 관계는 냉랭한 관계로 돌아서버렸고, 이젠 나도 그 친구를 보고 싶지 않았어.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그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 되었어. 1학기가 끝나가기 전, 그 친구는 교단 앞에 서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어.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어. 이제 이사를 갈 것 같아. 잘 지내. 나는 그 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 때 알았어. 그러나 그 때조차도 나는 그 친구에게 다시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어.


친구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나온날에 나는 그 친구 주변을 서성였어. 미안하다고, 잘 지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애 주변에서 그 애한테까지 다섯 발자국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거리가 너무 멀었어. 입도 무거워서 떨어지지 않았어. 마지막 종소리가 울릴 때 까지 나는 그 다섯 걸음을 좁히지 못했어.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데, 왠지 뒤를 돌아보고 싶어졌어. 뒤에는 그 친구가 혼자 터벅 터벅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어. 속으로 어떻게하지, 말할까, 이제와서 뭘이라는 생각이 뒤죽박죽 떠올랐어.


그 애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그 미안하다는 말을 15년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고 있지. 그 때, 말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됐는데, 그 말 한마디면 15년이 조금 더 즐거웠을텐데.


만약 그 친구를 어딘가에서 만나면 먼저 다가가서 말하고 싶어.


“잘 지냈니? 나는 가끔 너를 생각했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앞으로의 너의 삶이 행복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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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0원의 인성

 때는 맹추위의 계절, 작은 송곳들이 바람에 실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날라 와서 피부에 1mm씩 박히고, 흐르는 혈액의 온도로 피부에 빠알간 잔상만을 남기고 녹아버리는 때였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가 녹고, 녹은 눈 위에 다시 눈이 내렸다가 녹는 잔망스러운 날이었다. 이열치열 아니, 이냉치냉이라 했던가 우리 부부는 여름보다 겨울에 XX킨 라빈스 31에 더 잘 갔었다. 한 때는 아이스크림을 이틀에 한통씩 사먹었던 것 같다. 질척이는 눈을 조심스레 피해 베스킨 라빈스 XX의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베스X X빈스 31입니다. 혹시...스피커 있나요?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은 스피커가 다 떨어졌습니다. 네...안녕히 계세요. 짤랑. 짤랑. 우리 부부는 평소에도 아이스크림을 잘 사다먹었지만 그날은 특별히 다른 목적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사면 3,900원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주는 이벤트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12월 31일, 즉 2016년의 마지막 날인 31일이었는데, 베스킨 라XX 31은 31일이 되면 평소보다 크게 할인율을 높였다. 어떤 매장에 가도 사람은 넘쳤고, 블루투스 스피커는 동이 나있었다. 걸어서 한번, 버스를 타고 한번, 다시 걸어서 한번, 두드리면 열린다는 문들은 열리긴 했는데 목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동 주변에서 꽤 큰 매장을 발견했고, 그 곳을 마지막으로 생각하자고 결의하며 찾아갔다. 역시 손님은 많았고, 아이, 어른, 연인,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생들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안녕하시냐는 인사말에서 베어나왔다. 밖은 추웠고, 줄은 길었는데, 긴 줄을 기다렸다가 스피커를 받지 못하면 정말 짜증이 날 것 같다는 느낌이 위태로운 위기감을 자아냈다. 심호흡을 하며 줄을 서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내 앞으로 스윽-, 아이스크림에 헤어드라이기를 가져다 데면 스르륵- 녹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들어왔다. 딱 봐도 심상치 않고,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 같은 인상으로 인해...난 비겁하게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에는 LED 등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너무나 강력한 LED 빛이 흡사 먹구름 속에서 한줄기 빛이 통과하는 것처럼 나에게 내려와 나를 불쌍하게 여겨주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 아주머니로 인하여 내 앞에서 물건이 끊기는 비극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커져갔다. 불안감은 그 아주머니를 향한 분노감으로 바뀌었고, 나는 아주머니를 내 큰 눈의 1/3만 연채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줄어들 때마다 느껴지는 그 긴장감은 슈팅게임을 할 때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인 듯 싶었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아르바이트 생은 뭐가 필요하냐고 풀린 눈으로 물어보았고, 나는 아이스크림과 스피커를 원한다고 간결하고 분명하게 표현했다. 아르바이트생은 한숨을 쉬기 위함인지, 물건을 꺼내기 위함인지 분간이 되지 않게 허리를 구부려 2초 정도를 머물다가 올라왔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드...드디어 들어왔다. 돌아다녀서 생긴 피로가 가시는 것 같은 시원함이 들었는데, 그것이 아이스크림의 냉기로 인함인지 스피커로 인함인지 잘 몰랐다. 물건을 받아 문을 열고 나오는데, 나의 앞에 끼어들었던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의 절반만을 뜬채 아주머니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면, 그 스피커는 꽤 좋았지만, 책상 한구석에 먼지를 쓰고 있을 뿐 잘 쓰지는 않는다. 나는 뭘 하려고 그렇게 돌아다닌걸까. 무엇 때문에 그녀를 그렇게 미워했을까. 혼자 분해하고 열내고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성이 3,900원 짜리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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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당신과 만나서 다행이에요. 행복합니다.

자신의 행복으로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말.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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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이 확산되고 있다.

어린 아이를 동반한 몇 몇 부모로 인해 가게 및 다른 손님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연령의 아이는 매장에 출입을 금지시킨다.

이러한 조치는 어느 정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식탁 위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간다던지, 다 쓴 기저귀를 그릇 안에 넣고 간다던지, 아이 용 음식을 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한다던가 요구가 들어지지 않으면 화를 내는 등 무례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의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행동이고,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어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이를 동반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도록 하는 노키즈존 영업은 가게 주인들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서비스업을 했던 경험을 되돌아 봤을 때, 이른바 갑질 혹은 진상짓을 했던 사람들은 아이 엄마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아이 엄마들의 무례한 행동도 경험했지만, 청소년, 대학생, 직장인, 아저씨, 아줌마 등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진상은 성별과 나이에 제한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 있는 갑질 문화와 진상 문화는(?) 사람들 속에 있는 심리적 기제를 자세하게 파헤치고 바꿔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처가 한 부류를 정해 'NO'를 외치고 배제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된다. 그건 일종의 '차별'행위이다. 아이 엄마라고 해서 모두 갑질을 하거나 진상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업을 했을 때 매우 매너가 좋고 친절했던 아이와 엄마들도 많았다.

아저씨도, 아줌마도, 학생도, 청소년도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그들도 모두 입장을 금지할 것인가? 묻고 싶다. 왜 아이와 엄마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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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

사람은 자신의 삶을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삶은 옳다고 여기는 사상과 생각을 따라 추구되어진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여기 너무 명확한 문장이 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이것은 옳은 문장일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10년경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문장이었다. 지금에서야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주장이지만, 400년 전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틀린 이야기였을 뿐이다. 옳고 그름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지금 우리가 아는 지식이 훗날 그릇된 사실로 바뀔 수 있다.

옳고 그름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동성혼'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비합법적이다. 동성간의 결혼은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혼인 여건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법적 지위와 함께 동성 결혼이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 스웨덴,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우루과이, 프랑스, 브라질,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공화국, 룩셈부르크, 멕시코, 미국, 콜롬비아, 핀란드, 중국, 몰타 등의 국가에선 동성혼이 이미 합법화되었다. 합법화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그 사회의 구성원 중 많은 사람이 동성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 곳에서 동성혼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묻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그러하므로 옳고 그름은 개인과 개인에게서 다를 수 있다. 시간과 지역, 환경은 각 개인을 타인과 구분되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지는 옳은 것과 모두에게서 배제시켜야하는 그른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긴다. 인식은 행동을, 행동은 평가를, 평가는 갈등을 일으킨다. 옳다고 여기는 것이 삶의 구체성을 형성한다. 삶의 구체성은 겉으로 드러나고, 타인의 평가의 대상이 된다. 옳은 것이 각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타인의 무지함에 치를 떨거나,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 행동을 시작한다.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등은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 명확함이란 신이 아닌 인간의 시간과 공간의 유한성으로는 구분하지 못한다. 사실 혹은 진실을 특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는가. 바로 '믿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과 다르다. 유리는 고체인가. 유리는 흔히 고체로 생각될 수 있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액체에 가까울 수 있다. 유리는 과냉각된 액체에 가까운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리를 고체라고 '믿는다'. 절대적인 진실이 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믿음'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가. 그러나 그 믿음은 각자에게 사실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구축한다. 동일한 현상을 보고 신앙인으로 살 것인가 과학도로 살 것인가를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서로를 대함에 있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많은 갈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있다. 내 믿음은 나를 완고하게 만들고, 타인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도록 한다. 그렇다고 내 믿음을 버릴 수는 없다. 그 믿음이 나를 나로 만들었으니까말이다. 그러나 타인도 그의 믿음으로 살고 있으며 그것을 버릴 수 없다. 나의 믿음을 인정해달라고 투쟁하지만, 그도 인정을 위해 싸우고 있다. 갈등하지 않고는 나를 지킬 수 없고, 타인의 '믿음'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나의 작음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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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사람은 좌 우로 나뉘지 않는다.

 

 분열의 시대다. 개인이 겪고 있는 자아의 분열,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 간 분열, 노동과 자본의 분열, 정규와 비정규의 분열, 정상과 비정상의 분열이루 다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 말했다. 분열 없는 이가 누구랴. 분열 없는 사회가 있으랴. 맞다. 모두가 다르고, 같지 않다. 신이 아닌 인간은 완전한 자아의 완성을 할 수 없다. 계속 자라갈 뿐이다. 사회 구성원이 추구하는 것이 모두 다르기에 사회적 갈등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서로 다름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억지로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사회적 병폐다. 단지 서로 다른 것을 잘 조율하고자 하는 노력과 방법을 개발할 뿐이다. 때문에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나에게 중요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한 가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좌파와 우파에 대한 구분이다. 정치가 살아나고 있다. 정치 문화와 정치 사회가 건강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치에 대해 죽었던 사람들의 관심이 이렇게 높았던 때가 있었을까(물론 관심을 갖는 이는 항상 있었겠다). 높아진 정치 의식으로 인해서인지, 어느새 우리에게는 정치 성향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잣대가 생겨버렸다. 저 사람은 좌파야, 저 사람은 우파야 하고 말이다. 순화해서 그렇지, 저 빨갱이 자식 혹은 저런 박사모 같은 놈 등등 서로를 그렇게 비방하며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좌파와 우파에 대한 구분은 서로 다름에 대해 존중함으로써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을 방해하는 양상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좌파와 우파라는 것이 매우 모호한 구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를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간 갈등으로 오인하곤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성 세대 중에서도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젊은 세대 중에서 우파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꽤 있다.

 

좌파냐 우파냐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지하는 정당으로 그 사람의 정치 성향을 판단할 수 있을까. 한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 정당의 정책에 대해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한 정당에서 펴는 정책은 한 가지가 아니다. 많은 정책 속에서 모든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정당을 지지하지만 그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다. 만약 100가지의 정책이 있다면 어떤 지지자는 98개 정책을 지지하고, 어떤 지지자는 56개의 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 그 둘은 좌파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가? 모든 지지자는 개개인의 정치 성향을 갖는다.

 

 좌파냐 우파냐는 진보냐 보수냐라는 언어로 치환할 수 있다. 진보는 무엇인가. 진보는 현재의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변화를 찾는 것이다. 반대로 보수는 현재의 상황이 바뀌어선 안되기에 변화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하다면 단순할 수 있지만, 현실은 더욱 복잡하다. 모든 사람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고, 변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변화는 진보라 부르고, 어떤 변화는 보수라 부를 것인가. 어떤 가치의 수호를 보수와 진보로 구분할 것 인가. 나는 거기에 모호함을 느낀다. 때문에 누군가를 진보 혹은 보수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진보가 무엇이고 보수가 무엇이냐고.

 

물론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지 못할 것은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지향한다. 진보는 이것에 무언가를 변화시키고 추가할 것인가를 더 많이 말하고, 보수는 변화를 참을 수 없어한다(그러나 실상 또 이렇게 나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노선에 대해 더 세분하여 구분하는 용어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시대, 사회 속에서 너는(나는) 진보냐() 보수냐()’ 는 말이 여전히 서로를 이분법적으로 갈라놓는데 쓰여지고 있다. 절대적으로 그 두 가지를 나누어서 어떤 한 사람을 그 중 한 쪽으로 몰아갈 수 없는데도 말이다. 정치적 구분은 우리를 서로 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람을 좌, 혹은 우 둘 중에 하나만 남기도록 하고 있다.

 

내 눈에는 사람을 절반으로 나누어서 왼쪽으로만 걷는 사람들, 오른편으로만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일 때가 있다. 한쪽 발과 한쪽 손으로, 한쪽 눈으로 한쪽 귀로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그러면 죽는다. 사람은 좌로도 우로도 나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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