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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탓 (20.01.23)

by GrapeVine.Kim 2020. 2. 20.

오늘은 내근을 하는 일정이었다. 2년 전 구정을 앞두고 차 사고가 났었던 기억으로 인해 명절 전날 근무에 부담감이 항상 있었는데, 내근이라면 큰 사건 없이 무난하게 지나갈 하루가 될 것이므로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책상에 앉자, 오늘 외근 예정이던 동료 선생님이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다. 사정이 있으니 오늘 외근을 바꿔달라는 요청이었다. 명절 전날 발생했던 사고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런 징크스 같은 걸로 내 삶을 더 무겁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업무로 인해 차를 몰고 녹번동으로 갔다. 들어가야할 주차장 진출입로에 한 노인이 하얀색 레이를 주차하고선 짐을 실고 있었다. 우회전을 통해 접근하도록 되어있는 진출입로는 차가 한 대 들어가거나 나가도록 설계되어있다고 생각하기에 적당한 넓이였으나 두 대가 지나가기엔 아슬아슬했다. 나는 그 노인에게 차가 들어가야하니 비켜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노인은 차를 치울 생각이 없었는지 손을 앞뒤로 흔들며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불안했지만 노인이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기에 인상을 구기며 진입을 시도했다. 지금 까지 수 십번은, 몇 백번은 들어갔다 나왔을 길이었기에 조심성이 덜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사가 지어져 계단으로 마감된 진출입로 옆면에 우측 후륜 타이어가 접촉했다. 괜찮으리라 생각했으나 주차 후에 확인한 타이어는 3cm가량 찢겨 있었다. 두 달 전에 교체한 타이어였다. 계단은 이전부터 진입 차량들이 자주 접촉되는 부분이어서 손상되어 있었고 날카로운 부분도 있었다.
화가 솟구쳐 올랐다. 마음 속에선 온 갖 욕지거리들이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그 노인은 상황을 모르는지 차에 짐을 실으며 자기 일에 바빠보였다. 나는 한숨과 울분이 섞인 애매한 소리만을 내며 찢어진 타이어의 사진을 찍었다. 회사 차이기에 회사에 보고가 올라가야했다. 수리며 경비 처리며, 경위서를 쓰고 사과를 하고 또 사고냐는 눈빛을 받고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상황 속에서 느끼게 될 여러 감정들도.
그 노인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인이 자주 동일한 곳에 차를 대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차가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갔었던 지난 경험들도 있었다. 오늘도 그랬어야 했다. 그 노인이 팔을 흔들어 들어오라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노인이 하필 그 때 그 자리에 있어서 사고가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 때문이었다.
오늘 외근을 바꿔주지 않았다면 없을 사고이진 않았을까. 괜히 대신 나갔다가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자 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내근하는 날인데...사고 날 일 없었는데...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고 였다는 생각이 들 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화가 났다.

그러나 내가 정말 화가났던 것은, 억울했던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내가 잘 못해서, 부주의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나의 탓이자 책임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과 책임을 돌리고 싶었는데, 사실 그 화살이 향할 곳은 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부족해서, 억울해하지도 화를 내지도 못하는 상황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내가 아는 난, 누군가 확실히 과실이 있었더라면 마음이 조금은 더 너그러웠을 것 같다. 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내일이면 며칠간 명절인데, 기분이 좋지 않은 명절이 될 것 같다. 어쩌겠는가. 회사에 복귀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야지...어쩌겠는가, 열심히 또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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