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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선물을 주다 (20.01.09)

by GrapeVine.Kim 2020. 2. 20.

선물을 주다

얼마 전, 나는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었다. 삼0 갤럭0 탭 A 10.1. 2019년에 출시 되어 성능도 지금 쓰기에 괜찮고 무게도 가벼운 모델이다. 이미 태블릿이 한 대 있었으나, 구형 모델로 반응 속도가 떨어지고 화면도 작아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던 터였다. 노트북이 없지는 않았지만, 노트북과 태블릿 피시는 크기나 무게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자고로 언제나 무언가를 적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비슷한 것이 있어서 가방 속에는 항상 태블릿 피씨와 키보드를 넣고 다녔다. 노트북을 매번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태블릿 한 대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이 역시 덜 부담스럽다. 주문했던 물건이 들어있는 택배 상자가 현관 문 앞에 놓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 심장의 박동이 평소보다 10퍼센트는 빨라졌었던 것 같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손도 씻지 않고 포장을 풀어헤쳤다. 새 태블릿이 손에 들어오자 왠지 모를 만족감이 느껴졌다. 역시, 새 물건이 주는 힘이란...사람이란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한 존재라는 생각을 스치듯 했지만 이내 앱을 깔고 세팅을 하는 것에 집중하는 내게 잠깐의 깨달음 비스무리한 것은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무언가를 적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면 기존의 물건으로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대단한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메모장 하나를 열어서 적고 싶은 것을 적으면 되는 정도라면 말이다. 어쩌면 주위에 있는 메모지나 펜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항상 휴대하고 있는 핸드폰도 기록하는데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내게 선물을 주었다. 선물을 주고 싶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소속된 날은 2018년 1월 1일이었다. 신정을 보내고 1월 2일, 딱 새해가 시작되면서 첫 출근을 했기에 아마 잊기 어려운 날이 될 듯 싶다. 그날은 초조함과 긴장감이 가득했다. 직장 상사로 소개를 받은 분과 함께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기존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누구 누구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같은 인사말을 몇 번씩이고 반복해도 내게 들려오는 대답은 다 새롭기만 했다. 소개 받은 사람들의 이름들은 머릿 속을 잠시 동안만 머문 뒤 스쳐갔고, 모두 미소를 띄고 있으나 서로 약간의 경계심도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었다.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나는 이 곳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배워야했다. 어디에 있던지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모르고 있다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쉽다. 직장에서 나의 역할을 알고 감당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그 때까지 나는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혹은 챙겨줬어도) 겉도는 존재였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일을 시작하게 되는 일은 몇번을 경험해도 힘든 일이다. 새로 사람을 사귀는 것을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내게는 특히 더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무서워하고 힘들어하는 나지만, 나는 이제까지 일을 그만두고 새로 시작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왔다.

군에 입대했을 때, 나는 어쩌다가 취사병이 되었다. 식당일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고,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내가 군에서 취사병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뒤부터 300명 이상분의 식사를 하루 세끼 씩, 매일 만들어야만 했다. 식재료를 보관하거나 다듬는 법, 대형 주방에서 사용하는 조리 도구들의 사용법, 칼을 쓸 때의 주의점, 양념의 종류, 음식을 조리할 때 어떤 재료부터 조리를 해야하는지, 멸치 볶음은 어떻게 하는지, 된장 찌개는 어떻게 끓이는지, 조리 후에 청소 하는 법… 매일이 새로운 배움이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나 익숙해질 무렵, 무거운 김치 박스를 옮기다 허리를 다쳤다. 쉽게 회복하지 못하자 군의 간부들은 내게 PX병으로 일하도록 지시했다. 제대까지 남은 1년 동안 내게는 PX에서의 새로운 생활과 업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운 좋게도 졸업을 하기 전에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비영리단체와 협업하는 모금 기업이었다. 모금이란, 모금을 위해 필요한 것은, 모금을 하려는 단체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역사는, 팀의 특성은 같은 것들을 숙지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적응 할 때쯤에, 일을 하며 좋은 점도 있었지만, 내가 하기를 기대했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섰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기에 당연히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합사회복지관에 들어가서야 내 자리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내 생활이 되어갔다. 그러나 역시 공부했던 것과 실제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직장은 차이가 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또다시 일하는 법을 배워갔다. 문서 작성 법, 상담법, 복지관이 지역에서 하고 있는 일들, 나의 역할, 우리 조직의 특성들. 언제나 그렇듯 배울 것은 많았다. 그러나 복지사로의 삶은, 내게 너무 버거웠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달리 없다는 것도, 문서를 만들고 문서를 또 만들고 문서를 다시 만드는 것도. 매일 같이 이어진 야근과 휴일에도 진행되는 프로그램들로. 나는 결국 8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복지관을 뛰쳐나오게 되었다.

다음 시도는 자영업이었다. 사회복지 기관에서의 생활에 두려움을 느꼈던 나의 도피처였다. 물론 내가 사장이었던 것은 아니고, 자영업을 하고 있는 아는 형님의 업체에서 카페일과 과일 장사 같은 일을 하게 됐다. 커피를 내리는 법, 원두 로스팅하는 법, 이런 저런 음료와 메뉴를 만드는 법, 매장 관리, 포스 기기 등록법, 가격 매기는 법, 장사 수완 등…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다. 새벽녘 가락시장의 분위기도 알게 됐고, 자영업이 직장생활보다 쉬운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직장 생활은 주어진 일을 하며 버티면 월급이 나왔다. 그러나 자영업은 달랐다. 어떻게든 수익을 내지 못하면, 하루에 8시간을 일하던 10시간을 일하던 12시간을 일하던 돌아오는 것이 없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와의 결혼을 생각할수록, 내 통장에 있는 잔고를 떠올릴 수록 나는 매일 매일 무언가에 쫓기며 불안했다. 결국 나는 직장생활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일을 한지 11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종합복지관에서의 8개월로 몇 년동안 해왔던 공부와 진로를 내려놓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 아닐까 고민하던 나는 다시 복지사로, 노숙인들을 돌보는 기관에 취업을 했다. 그곳에서도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배우고 익히고 변화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1년 3개월의 시간이 흐르자, 그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는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다시 퇴사를 할 때, 앞으로의 삶이 걱정이 되었지만, 사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이제 무얼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것보다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해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그런 나에 대해 실망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손으로 삶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지를 떠올릴 때마다 좌절감이 들었다. 매일을, 몇 년을, 수십년을 같은 곳에서 일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위대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초라한 나의 모습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렇게 살아왔던 내가 현재의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지금 직장에서 주어진 나의 역할을 하고 있고,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 출근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별 일이 아닐 수도 있으나, 나의 인생에서는 지금까지 없던 초유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사람들마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일들의 무게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결코 같을 수 없는 별개의 인생을 산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르고, 부모의 상황이 다르고, 가정의 경제 사정도 다르고, 주변 환경도 다르고...무엇도 같은 것은 없다. 각자 다른 상황에서 맞이하게 되는 무언가가, 그것이 동일한 무언가라고 할지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게 쉬웠던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고, 반대로 별것 아닌 것이 내게는 심각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인생을 두고 객관적인 비교를 하는 것은 가능할까? 다른 여정을 거쳐 형성된 삶들을 두고 무엇이 훌륭하다거나 가치 없다고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걸까? 결국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동일한 조건,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내일의 나인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 하루를 잘 버텨준 오늘의 내가, 새해를 맞이하고 있는 2020년의 내가 이전의 나보다 잘했다고, 멋지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성장한 내게 선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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