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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by GrapeVine.Kim 2020. 3. 13.

채사장님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는 중이었다. 채사장님은 한 때 죽을 수도 있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다행히 불상사를 피했지만, 이후 그는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마주한 그는 결국 사라지고 잊혀질 삶에 허무함을 느꼈던 것 같다. 무엇을 애써 이룬다고 무엇하랴, 있었는지도 모르게 될 것을, 내가 죽음으로써 아무 의미도 없어질 것을. 그러나 죽음은 그에게 또 다른 사실을 알려주었다. 필멸자들에게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피하려하는 사람들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정해진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채사장님은 인생을 의미있게 마무리하고자 존재의 이유, 목적, 의미를 더 추구하게 된 듯 하다.

그의 많은 생각과 인생을 대하는 성찰,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흥미로웠다. 책을 읽는 중에 혼자서 하기 어려운 진지한 고민들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연스럽게 그럼 나는 인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삶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는가, 존재의 의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나는 바다 위 작은 뗏목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았다. 완전한 직선의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와, 바람도, 파도도, 어떤 출렁거림도 없는 고요 속에서 그저 떠 있기만한 뗏목, 그리고 목적지를 알 수 없어 누워서 하늘만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었다. 삶의 마지막에 지금까지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 모습은 무얼까. 표류하다가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가라앉아 버리고, 결국 흔적도 남기지 못할 인생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한 때 인생이 너무 괴롭게만 느껴졌다. 삶에게, 나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으나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고, 당장 앞에 있는 삶과 나를 외면한채 잡히지도 않을 이상을 붙잡으려고 허우적 거리는 때였다. 몸부림은 치는데 가라앉기만 하고, 숨은 차올라 호흡하려 할 수록 폐에는 물이 들어와 죽을 것 같았다. 한계에 다다르자 이상 따위는 사라지고 당장 살아 있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 때서야 나는 실체하는 존재를 디디고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비록 존재가 초라해도 괜찮았다. 살아있으니까.

인생의 목표가 재설정되었다. 고통이 싫었다. 괴롭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잘, 살고 싶었다. 인정도 받고, 안정감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삶. 일부러 힘든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얼마나 큰 자유를 주었는지 모른다. 어느새 삶은 살아봄직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힘들게 발버둥치지 않고 누워서 떠 다니면 되는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표류하다가 마쳐지는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즐겁게, 재미있게, 편하게 잠시 동안 존재했다는 것이면 충분할까. 나는, 그러기 위해 태어났던가. 그럼, 이 삶을 왜 더 지속해야하는가. 행복할 때 끝 마쳐버린다면 되는건가. 무언가가...잘 못된 것이 아닐까. 고통을 피하는 삶, 혼자 편안한 삶이 만들어 내는 인생이 아름답거나 의미있거나 할 수 없었다. 그저 허무. 존재 후 사라져버려도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나의 인생은 어디로 가야만 할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 세계의 한 부분을 구성했던 나의 시간과 공간과 존재를 생각하면 나는 조금은 달라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왜 살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다시 껴안아야할지도 몰랐다. 그러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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