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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그림자 상처

by GrapeVine.Kim 2020. 6. 19.

나를 향한 싸늘한 눈빛을 잊기가 어렵다.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그 날카로운 눈빛만은 다시 불꽃처럼 떠올라 이쪽을 바라본다.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혹은 호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어찌하여 이다지 파괴력을 갖는다는 말인가. 찰나의 표정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다지도 위축되게 하는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내가 미움을 받아야한다는 말인가. 어떤 이유로 비호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이유를 찾아보려고 생각을 곱씹고 곱씹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는 내 마음에 베인 상처를 손톱으로 파고 파서 곯아버리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미워하면 안되는 이유는 뭔가. 호감을 갖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또 뭔가. 없다. 내가 환심을 사려고 노력을 했던가. 그의 존재를 인정해주었던가. 그의 삶을 긍정해주었는가. 기껏해야 사회적 능력과 그로 인해서 나에게 끼칠 수 있는 위해의 정도를 약간이나마 쳐주는 정도였을 뿐인데, 어떤 긍정적인 반응을 원한단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내가 반대의 입장에 서있었다면 분명히 상대방에게 미쳤다고 할만 하다.

그렇다고 대상이 중요한 사람인가 따지면 전혀 아니다. 인생에서 거쳐가는 수 많은 인간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콕 찝어 생각을 해봐도 그 의미를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냐를 따져도, 지나가다 발에 채이는 돌맹이 하나만도 못한 것을 나는 안다.

내게 의미 없는 사람이 잠시 내비친 냉소에 이다지도 상처를 받는 연약한 마음이 부끄럽다. 실체 없는 상처를 스스로 건드려서 기어코 덧이 나게 만드는 우둔함이 부끄럽다. 파괴력 없음이 자명한 그림자가 무게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홀로그램에 얻어 맏은 얼굴에 멍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설득력 있는 추론은 그림자 뒤에 숨어 펀치를 날리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모레알갱이가 바람에 날려와 스쳐지나가면, 그 기회를 잡아서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 가면을 쓰고 나이프를 긎고, 신음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미친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면에서 비관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스스로를 만족해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혐오하기 위해 타인의 그림자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사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대리인을 세운 것일뿐이다. 그 의미 없는 눈동자가 상처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멀어질 수 없고 가장 의미있을 수 밖에 없는 자아로인해 피를 흘리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서야 설명이 되는 기이한 현상을 두고 어디선가 당신도 참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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