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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나는 비흡연자 (18.08.24)

by GrapeVine.Kim 2020. 2. 20.

나는 비흡연자란 말이오!

나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흡연을 해본 적이 없다. 매번 방 안에서 담배를 태우던 아버지가 내뿜는 매캐한 냄새가 싫었다. 연기는 방 안 형광등의 빛을 더욱 산란시켜, 안그래도 어두운 반지하 방을 더 암울하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이사오면서 집주인에게 부탁하고 얻어낸 새하얀 벽지는 금새 누렇게 변했다. 가래침과 뒤섞여있는 꽁초, 꽁초에서 새어나오는 악취, 마치 고름처럼 보이는 재떨이를 채운 썩은 물. 집 안에서 유일하게 흡연을 하던 아버지는 꽤나 골초였던 것인지, 집 안에서도 줄기차게 담배를 피워댔다. 담배냄새가 난다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를 의미했고, 아버지의 존재가 두려웠던 나에게 담배 냄새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중학교 때였나, 집에 혼자 있게 되었는데 창틀에 새 담배 한개피가 떨어져 있었다. 이걸 한번 해보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다. 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의 채취가 내게도 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한번도 흡연을 하지 않은 나에게 그 때의 선택이란 꽤나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살면서 딱 한번, 흡연자가 된 적이 있다. 담배를 피운 적 없다면서 흡연자가 되었다는게 당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난 정말 한번도 피어본 적 없는데.

때는 2009년, 5월이었다. 102보충대라고 들어보았는가. 국가의 부름을 받은 나는 학교 선배가 밀어준 빡빡머리를 하고선 102보충대로 입대를 하게 되었다. 사회와 격리된 곳에서 이제는 사회인도 아니요, 그렇다고 군인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지금 돌아보면 개그 콘서트 같았다고 기억된다. 군복은 어떻게 입는 건지, 군화는 어떻게 신는건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일 수 있겠는가. 군기의 '군'자도 몰라 어리둥절한 입영대상자들이었지만, 붉은 모자를 쓴 터미네이터를 닮은 조교가 등장하여 호통을 치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붉은 모자 조교가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엎드려! 라는 한 마디에 스무명쯤 되는 성인 남자가 한번에 땅을 기고 있으면, 자동으로 내 몸도 흙밭을 구르게 되었다.

막 입대하게 되면, 이런 저런 소지품을 내놓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담배 같은 것이 있다. 물론 나는 가져가지도 않았지만, 흡연자들은 뺏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몇 갑씩 가지고 들어온 듯 했다. 조교는 담배를 압수하고, 흡연하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흡연자들은 단번에 금연을 못하겠던지 담배를 어떻게든 숨겨서 지켰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흡연장소는 어디였을까. 바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라도 생기면 흡연자들이 화장실로 우르르 몰려가, 좀 전까지 알지도 못했을 사람들과 함께 연기를 뿜었다. 담배 냄새가 싫었던 나는 화장실을 가는게 무척이나 꺼려졌는데, 수십명의 남성이 뿜어내는 연기가 화장실 내에 자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도 인간이지 않은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결국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있을 때였다.

동작 그만! 모두 밖으로 나온다. 실시!

조교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닫혀있는 변기칸의 문을 하나씩 두드려댔다.

쿵쿵

야이자식들아! 안나와!

끼익-

나가서 엎드려!

쿵쿵

넌 뭐야! 안나와!

끼익-

나가서 엎드려!

조교는 한 칸씩 한 칸씩,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왔다.

쿵쿵

아이씨, 죽을래? 빨리 안나오냐?

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볼일을 보는 중이라고 문 밖에서 온 힘으로 노크를 하는 조교에게 이야기해보았지만, 그는 당장 나오라고 소리치기만 했다. 서둘러서 밖으로 나와 조교에게 나는 지금까지 담배를 펴 본적이 없으며, 지금도 정직하게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온 것 뿐이다라고 설명을 했다. 조교는 미심적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나는 정말 담배를 펴 본적도 없기에 당당하게 그의 얼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손바닥 냄새를 한번 스윽 맡더니, 소리쳤다.

나가서 엎드려!

아니, 저는...아닙니다. 억울합니다.

엎드려 새꺄!

허둥지둥 바깥으로 나온 나는 복도에 일렬로 엎드려 있는 흡연자들과 함께 같은 자세를 취했다. 조교는 너희 같은 놈들이 어쩌고 저쩌고, 군인이 어쩌고 저쩌고 말하며 얼차려를 주었다. 입고 있는 나의 옷에서 잔뜩 담배 냄새가 베어나왔다. 얼차려가 힘들기보다 억울함으로 인해 한 방울의 눈물이 차가운 시멘트 복도에 떨어졌다. 그 때의 그 억울함이란. 내가 조교였어도 나를 오해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 조교가 밉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날 그 곳에서 나는 흡연자였다.

심증과 그럴듯한 정황들, 그리고 다수의 사례로 축적된 경험은 무언가를 판단하기 쉽게 한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바로 진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진실에 가깝지만 아직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 것들일 뿐이다. 그날 화장실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로 몸에 냄새가 베었지만, 정말로 흡연을 하지 않았던 나 처럼. 억울한 사람은 앞으로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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