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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2015년 3월, 하나의 칼럼, 푸른 하늘을 꿈꾸며

by GrapeVine.Kim 2015. 5. 14.

푸른 하늘을 꿈꾸며

야자가 끝나 어둔 밤 길을 걸으며 하교 하던 입시 준비생 시절부터 나는 밤하늘이 아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집에 가는 삶을 기대했다. 그 때는 대학에 가면 다 해결되리라 믿었다. 피곤하고 지친 우리의 일상에 한 줄기 빛이라도 비추어서 모든 부정함 들이 씻겨 내려가리라는 소중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대학생의 일상은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빙그레 바나나 우유 한 통을 손에 들고 그 노랗고 작은 관 사이를 흐르는 한 줄기 우유를 왔다 갔다 조절 하는 정도의 자유를 쥐고 있었을 뿐이었을까. 시간은 뒤에서 눈을 부릅뜬 체 나의 행실을 살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 바람과 가로등만이 아무래도 떠나지 않는 길동무였다. 밤샘 과제와 이름만 달리한 똑같은 시험 앞에서, 나는 푸른 하늘을 훗날에 기약하였다.

 

직장에 나가야 할 나이가 되어, 사회 생활이 시작되었다. 정신 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그 나름의 의미들이 함께 하였지만, 직장생활이란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과도와 과중. 끊이지 않는 야근과, 계약서에는 없었던 주말 반납, 5살 난 딸아이 얼굴을 한동안 본적이 없는 직장 선배, 법전으로도 보장되지 못한 노동자의 현실 앞에서 끙끙거리며 하루를 살아가는 주변 동료들이 대견스럽기보단 안타까웠다. 아니, 안타까웠던 것은 행복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나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일과 개인의 삶은 과연 양립하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나를 괴롭혔다. 삶의 모든 것을 일에 주기 싫었던 나는 삶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에서 시달린 기억이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남았다. 마음의 방황기에 감사하게도 용용팜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일을 하도록 제안을 받았다. 변할리 없는 현실 앞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시기였고, 여유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인력 부족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일의 특성상 혼자 있는 시간들이 꽤나 많았다. 그토록 갈망하던 시간적 여유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을까.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렇지만은 않았나 보다. 막상 시간이 주어지고 나서야, 의미 있는 삶이 되기 위해선 여유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깨닫고 나서야 다시금 내게 의미 있는 것들이 마음 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오르자 덜컥 겁이 났다. 다시 이전의 여유 없고, 삶을 돌아볼 여력 없는 숨막히는 나날들이 시작될 것이 두려웠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은 변명만 하는 그들을 에덴으로부터 떠나게 하시면서,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죄가 있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의 모든 열매를 자유롭게 주심으로 먹을 것을 위해 살아가지 않도록 하셨으나, 죄 있은 이후에 인간은 죽기까지 수고를 해야 했다. 나는 개인을 위한 삶의 시간과 노동의 시간이 적절히 균형 잡혀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죄에 물든 세상 가운데 살고 있기에, 내가 가진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께서는 죄 있는 세상에 성육신하여 그 세상의 고통을 그대로 겪으시며 사셨다. 지금 예수가 사신다면, 고된 노동자들의 삶 속에 살아계실 것이다. 아니, 그는 이미 당대의 노동자, 목수였지만. 예수의 삶 앞에서 나는 그저 도망하고자 하였음을 본다. 예수의 삶 앞에서 다시금 회개하고 죄로 인한 부조리한 세상 가운데로 들어가기로 마음 먹는다. 푸른 하늘을 꿈 꾸면서 밤의 세상을 거닐어보기로 결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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