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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87

무화과 어머님이 태어나 자랐던 전라남도 무안의 하늘에는 구름이 없었다. 파란색 하늘 빛은 태양에서 덮쳐오는 열기에 익었는지 누런 빛깔을 품었다. 9월 정도 되었을까. 가을이 간다는 기별만 넣은채 아직 오지 않았고, 여름은 언제 맛이 갈지 모른채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무안 집은 가로로 긴 시골집이었다. 중앙에는 마루가 있었고, 마루의 양 옆으로 사랑방과 창고방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루 뒤에는 안방이 있었는데, 더위 때문이었는지 구멍나고 삐죽 빼죽 문살 밖으로 튀어나온 창호지로 덮인 양쪽 여닫이 문이 항상 활짝 열려있었다. 안방 안쪽으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바깥으로 통하는 작은 홑문이 있었다. 홑문도 마찬가지로 열려있기 부지기수였다. 몇 살이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런 어린 시절이었다. 무안 시골집.. 2017. 8. 3.
힘과 선 힘과 선 노숙인 요양 시설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하던 때의 일이다. 시설에는 많은 노숙인들이 지내고 있었는데, 우리 팀이 담당하고 있는 노숙인만 200여명이 넘었다. 정부에서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시설 생활자들과 한 달에 한 번 이상 상담을 진행하도록 정해두었다. 쉽지 않았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들에 대해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기구한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길거리에서 헤매고, 죽을뻔한 위기를 겪으며 한참을 돌아 돌아 제 자리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에게도 평범함이란 없었다. 노숙인들은 가족이 없을 것이라고 으레 생각하고 있었다.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상황은 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도 없이, 형제도 없이, 아내(성인.. 2017. 8. 3.
고름 고름 며칠 전부터 왼쪽 엄지발가락이 아팠다. 최근 들어 활동량이 늘어나서인지, 아니면 신발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양쪽 엄지발가락에 손톱만한 크기의 굳은살이 베겼다. 그 중 왼쪽 엄지 발가락은 굳은살과 그 주변을 살짝 건드려지기만해도 애리고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올라왔다. 걸을 때도, 씻을 때도, 쉴 때도 아픈 엄지 발가락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면 그냥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버티는 중이었다. 어제 저녁 잠에 들기 전에도 아픈 엄지발가락이 신경 쓰여 왼쪽 손가락으로 이리 저리 만져보게 됐다(손도, 발도 깨끗히 씻은 상태였다). 굳은 살을 건드릴 때만 아프던게 그 주변을 만져도 고통이 느껴졌다. 썩은 치아가 은근하게 욱씬거리며 다른 생각에 집중할 수 없게하는 것 처럼, 발가락이.. 2017. 7. 8.
이유 아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임을 밝혀 둡니다. #1 자정으로부터 1 시간 정도가 흘렀다. 잠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내일을 생각해선 어서 자야만 한다. 아뿔사, 갑자기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갈까 말까 고민이 들었다. 자리 잡고 누웠을 때 요기가 들면 참 난감하다. 그 짧은 거리를 가는 것이 왜이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침대 바깥 쪽에 남편이 누워있다. 남편은 날이 더운지 웃통을 벗고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얼른 자. 늦었잖아." "으...응...잘게..." "어허. 핸드폰 내려놓고, 같이 자자.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침대 바깥 쪽에 누워 있는 남편의 몸을 조심스레 넘어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럴 땐 내가 침대 바깥 쪽에서 자고 싶은데, 바닥에 떨어져도.. 2017.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