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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150811, 젠장맞을

by GrapeVine.Kim 2015. 8. 11.

 오전 10시, 잠에서 깨면 창 밖에서 햇빛이 밝게 들어오고 있다. 태양은 쨍하고 비치고 있으나, 그 빛이 오히려 내 폐를 짖누르는 것 같다. 한 여름의 열대야로 이불 따위 덥지 않았음에도 밤 사이 입고 있던 속옷이며 단촐한 옷들이 땀에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한 듯 찝찝하다. 휘청이며 절뚝거리며, 욕실로 들어가 찬물에 말라버린 땀들을 씻겨버리지 않고서는 무언가를 시작할 수가 없다. 물을 끼얹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대충 옷가지들을 챙겨 입는다. 3층이지만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싸우나같은 느낌을 주는 집에서 한 여름의 열기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에어콘이라도 작동하는 인근의 카페로 피신하기 위해 주섬 주섬 짐들을 챙겨 나왔다.

 글쎄, 거리는 한산하다. 그러나 거리에는 할머니 손을 잡고 아장 아장 걷는 꼬맹이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을 들으며 어딘가로 향하는 대학생, 작은 단말기를 손에 쥐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비정규직 조사원 등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어쩌면 대학생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 내가 여기 있는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겠지 하고 자기 위안을 삼아본다. 그러나 실상은 누군가는 자기의 역할과 자기의 자리가 있을 시간에, 해야할 일과 가야하는 곳이 없는 나는 마치 존재해서는 안될 것이 존재하는냥 불쾌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다름 아닌 나에게. 사실 다른 이들은 내 존재에 대한 그 어떤 깊은 사유도 하길 귀찮아할 것이 뻔했다. 

 느릿하게 걷는다. 신호등이 깜빡거려도 뛰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귓 속에서 울리고 있는 한 보컬의 노랫말을 곱씹으면서. 낮에도 도로위에 자동차들이 많았다. 버스 좌석을 절반 정도 매운 승객들, 택시를 탄 젊은이, 무슨 일들을 하는지 궁금한 자가용 속 사람들...저 사람들은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는거지 하고 생각해본다. 알지 못함이 주는 부러움으로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더위에 밀려 카페에 들어선다.

 방학 기간이라 그런지, 내가 좋아하는 명지대학교 앞 카페는 자리가 많았다. 그 중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하루 종일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리에 콘센트는 필수 였다. 평소 같았으면 학생들과 콘센트 자리를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방학 시기가 나는 좋았다. 가장 싼 음료인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고 노트북을 연다.

 일을 찾기 시작한지 4개월이 되고 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왔건만, 마음처럼 일이 쉽게 구해지지는 않았다. 수 개월을 쉬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여러 군데 나의 이력서를 내 보지만, 얼굴을 보자고 하는 곳이 별로 없었다. 운 좋게 면접을 보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들러리 역할을 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나를 불러주는 곳은 없는걸까? 나는 이 사회에서 쓸모 없는 사람인가? 이런 질문들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자신감이랄까 그런 것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내가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같은 것들 말이다. 이쯤 되면 내가 일을 구하기 위해 제대로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한 불신감도 들기 시작한다. 쉬는 것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내가 일을 하고 싶기는 한건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래저래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게 된다. 참 힘이 없는 때인 것 같다.

 요즘은 고용센터에서 '취업성공패키지'라는 과정을 신청하여 상담을 받고 있다.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만,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지 결국 자립은 내 힘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잘 찾아오지 않을 이 자유의 시기를 누리라고도 하고, 일은 어느 때고 하게 되니 잘 쉬라고 하기도 한다.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으나, 그 말이 지금의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이 고통스럽다, 내 존재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 사실 이 것의 책임은 나에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졸업 이후에 3 군데 정도에서 짧게 일을 해보았다. 여러가지 일을 하며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았다. 그저 누가 쓰다 버리는 부품과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삶과 일 중 하나만 선택해야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꽤나 괜찮은 일자리를 박차고 나왔었다. 이 후 다른 곳에서 일을 하면서 이전의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기피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캠페이너가 되어보기도 했다가, 사회복지사가 되어보기도 했다가, 카페 매니져가 되기도 한...나도 참 많이 헤매고 산다. 그리고 지금도 헤매고 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을 선택했으니, 돌 뿌리와 나뭇 가지, 웅덩이를 디디다 넘어지는 것은 딸려오는 옵션 같은 것이겠다. 그래, 내 책임이다.

 지금 겪는 이 고통을 회피할 수 있을까? 그렇다. 우선, 내 탓을 안하고 다른 사람(혹은 환경) 탓을 할 수 있다. 그 사람만 없었다면, 그 상황만 없었다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한 사람은 나였고, 그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가볍게 여기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래, 그럴수도 있겠다. 먹고, 마시고, 영화를 보고, 친구를 만나고, 잠을 자고...물론 이러한 것들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움을 회피하는 것은 이 시간이 내게 주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 시간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배워야만 한다. 그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수업료로 지불한체 수업을 수강하지 않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지금 겪는 이 고통이 나에게 자산이 될까? 그렇다. 이제까지의 고통들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것과 같이(비록 그것이 멀리 돌아오는 길이었을 지언정) 말이다.

 사실, 나 자신에 대해서 모르겠다. " 잘 할 수 있어요?" 라고 누가 묻는다면, "...(침묵),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나는 답변할 수 밖에 없겠다.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과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운것을 배운대로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진심이므로 나는 저렇게는 말 할 수 있다.

 이 시간 나는 충분히 고독과, 초라한 나의 모습과, 괴로움과 외로움을 맛보겠다. 그것이 삶에 대한 나의 태도와 생각을 바꿀 것이고, 새롭게 발견하게 된 길을 걸을 수 있는 양분이 되어줄거라 믿는다. 다만, 이 존재를 흔드는 시간에 잡아먹히지 않기를 바래본다. 무슨 일을 하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임을 기억하고 싶다. 내 고통이 큼으로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해도 된다는 속삭임을 무시할 수 있기를.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살아 있기에 가치 있고, 가치 있기에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