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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라이프 트래커(18.02.06)

by GrapeVine.Kim 2020. 2. 20.

최근 몇 년동안 손목에 라이프 트래커를 차고 다닌다. 하루에 몇 걸음을 걸었는지, 언제 뛰어다녔는지, 잠은 언제 자고 일어나는지가 핸드폰에 기록되고 있다. 그게 왜 궁금하냐고, 그걸 알아서 뭐할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사실 알 필요는 없다. 알아서 뭘하는가. 나도 별로 할말이 없어서 시간 확인용이나 전화나 메시지 알람용이라고 둘러댄다.

그냥 궁금해서 어플을 열어보았는데, 조금 놀랐다. 기기에 기록된 걸은 거리가 4,500km 정도 였던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400km정도라고 치면 나는 서울과 부산을 걸어서 몇 번을 왕복한 것일까.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비록 몇 년동안 축적된 나의 걸음수겠지만, 내가 그렇게나 많이 걸었던가.

이런 라이프트래킹 기기들은 출시된지 아직 몇 년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30대인 내가 살아오면서 걸어온 거리는 사실 이 기록의 몇 배에서 몇 십배에 달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천, 수만 km를 걸어오고 있는 셈이다.

수만 km를 걸어온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걷는 것만 생각하면 끔찍하다. 얼마나 멀 것인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발이 무르고, 관절은 닳고, 무릎이 덜렁거리고, 피골이 상접할 나의 육신은 나에게 얼마나 더 큰 고통을 맛보여줄 것인가. 그러나 사실 그렇게 괴롭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조금씩 걸어서 지금에 이르렀듯이 앞으로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걸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여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여정을 이룰 것이다.

상심이 크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가. 욕심 많고 고집쎈 사람들이 우리의 정의와 평화를 얼마나 농락하는가. 여기저기 헤집어지고 구멍난 우리의 마음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생각할수록 사실을 마주하기 겁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하루가, 우리의 지금이 조금 전진한다면 그것이 모여 상상할 수 없는 큰 변화를 만들지 않겠는가. 그렇게 조금 생각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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