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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용납해야하는 이유

by GrapeVine.Kim 2014. 12. 17.

 타인과의 삶은 힘들다. 관계란 우리에게 홀로 있지 않아도 되는 안정과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는 감사한 것이지만 또한 맞물리지 않음으로 인한 긴장감과 상처를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계는 깊던지 얕던지 관계 없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수반하는 양면성이 있다. 


 이후에 더 깊이 설명할 기회가 있겠으나, 나는 현재 타인들과의 함께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집은 나의 집이 아닌 우리의 집이고, 사적 공간은 공적 공간이 된다. 대학 3학년 정도부터였을까. 그 때로부터 계속된 이런 생활 방식은 이제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게 되었지만, 몇 년이 지나도 느끼는 것은 같다.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


 어른이 되었지만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몇 몇을 제외하면) 우리가 생각한 것 만큼 내면을 충분히 자라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으로 토라지고, 자신이 정한 규칙에 부합하는 작은 요구가 들어졌을 때 마음이 풀리곤 하는, 우리는 여전히 작은 이에 불과하다는 것. 누군가과 함께 지낼 때 이러한 것은 더욱 밝히 들어나곤 한다. 때때로 그런 자신을 발견할 때 인정하고 싶지 않아 더 큰 화를 낼 때도 있다. 혹은 정당하게 분노해야 할 때도 있지만. 


 얼마 전에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올랐다. 작은 일이라면 작은 일이었으나, 내겐 충분히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유 있는 분함이었기에 감정을 잠재우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의 무신경함, 누군가의 무책임, 누군가의 사랑 없음, 누군가 무관심.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가 기대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감정에는 화와 더불어 실망함, 짜증, 괴로움, 우울함 등의 많은 감정이 녹아있었다. 아, 마음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떨쳐버리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사랑이 아닌 미워함이라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분노는 행동으로 옮기든 옮기지 않든 나를 헤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이 없다고 치부하고 무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마침 겨울, 찬 바람이 내 달아오른 머리를 식혀주리라 기대하며. 걷는 것은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왜 그들을 품어야 하는가. 나는 왜 그들을 용납해야하는가. 용납은 힘들다. 그리고 그리 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 싫다.


 그러나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아야만 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좋은 사람인가. 좋기도 하고, 괜찮기도 하다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 슬픔을 주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괴로움이자 분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나인체로 받아들여진다.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나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한 존재로서 그냥 받아들여진다.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그냥 나로써 괜찮다는 것이다(물론 그것을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방관하고 무관심하지 않다면). 나는 그렇게 누군가로부터의 용납을 받으며 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


 용납 받음. 그것이 내가 다른 이를 용납해야하는 이유다. 그렇게 내가 타인을, 타인이 나를 존재로 확인하는 길이다. 


 실망감이 가득하다. 사람들에게서, 내게서. 아직 이것은 충분하지도 않고, 다 이루어지지도 않는 것이니까. 기대와 앎은 아직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이미 이루어진 것들로부터 또 다른 길을 만들어가야 겠다.


 나는 내가(우리가) 스스로를 용납하고, 타인으로부터 용납받음으로써 타인을 용납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겨울 바람은 나의 이마 곁에 자신의 숨결을 남겨두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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