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 노트

170213 묵상노트

by GrapeVine.Kim 2017. 2. 13.

170213 묵상노트

 

요한복음 11:17-27

( 11:17, 새번역) 예수께서 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 속에 있은 지가 벌써 나흘이나 되었다.

( 11:18, 새번역)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오 리가 조금 넘는 가까운 곳인데, / ㉢그, '십오 스타디아'. 3킬로미터

( 11:19, 새번역) 많은 유대 사람이 그 오라버니의 일로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 있었다.

( 11:20, 새번역)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었다.

( 11:21, 새번역)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 11:22, 새번역) 그러나 이제라도, 나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 11:23, 새번역)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 11:24, 새번역)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 11:25, 새번역)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 11:26, 새번역)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 11:27, 새번역)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어 그리스도와 히브리어 메시아는 둘 다 '기름 부음 받은 이'를 뜻함

 

 기독교는 부활에 대해 믿는다. 죽음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가 죽지 않았다거나 부활하지 못하였다는 설들이 가지지 못할 힘을 그리스도교에 주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부활하였기에 우리도 그와 같이 부활 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부활을 믿는가. 소망을 믿는가. 이 질문은 결국 그리스도교를 제대로 믿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과 다를 바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외치는 이들이 부활에 관하여, 죽음에 관한 초월을 부정한다면 이는 다시 한번 자신의 신앙을 살펴봐야 할 이유가 된다. 죽음과 부활, 내세에 대한 믿음은 현재 우리가 겪게 될 시련을 이길 힘을 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우리를 위해 살기 보다는 예수를 위해, 신을 위해, 타인을 위해 우리의 것을 내어 놓고 우리를 던지며 살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본문을 보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예수가 이미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을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마르다에게 다른 이야기를 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에 관한 고백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일까. 예수는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지 확인하기까지 한다. 그는 왜 그렇게 말하였을까.

 

유명한 이 이야기의 결과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나사로는 살아났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처럼 내세에서의 부활이 아닌, 그 당시의 현실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이 당시의 마르다는 예수의 부활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던 상태였다. 그녀가 고백했던 이후의 부활은 그녀의 삶 속에서 무게감을 가진 실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지 사흘이나 지난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는 예수의 말을 들었다. 믿음의 관한 고백과 개념은 예수의 말과 예수가 이후 행한 일로 그녀의 삶 속에 실체가 된다. 이 일로 그녀는 예수가 생명이며, 불가능을 가능케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사로의 부활을 경험한 그녀는 살아가면서 그 일을 잊을 수 있었을까? 그녀는 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을 기억하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는 이후의 삶을 위해 지금의 삶을 헌신하겠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이런 인식 속에서 나는 현재의 삶을 고통으로, 죽음으로 여길 때도 많다. 사는 것이 괴롭고 힘들지만, 이후의 삶을 위해 이겨나가는 것, 삶은 그렇게 쓰고 고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여기에서의 부활과 생명을 이야기한다.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를 믿는 자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삶을 바라보는 것과 괴리감이 있다.

 

 지금 이 자리에, 오늘 이 시간에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고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예수. 오늘의 말씀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 삶 속에 생명이 있다. 삶의 고통과 괴로움, 살아갈 구멍을 찾지 못하여 죽어가고 있다고 여기는 이 시대 속에서 생명이 되시는 예수를 경험하며 살기를 소망해본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을 믿사오니, 생명 없는 이 시대에, 소망 없는 이 시대에, 우리가 당신의 생명으로, 당신의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묵상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215 묵상노트  (0) 2017.02.15
170214 묵상노트  (0) 2017.02.14
170210, 묵상  (0) 2017.02.10
170209, 묵상노트  (0) 2017.02.09
161206 / 묵상노트 / 한계  (0) 2016.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