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7.08.31 그런 친구 있지 않았어?
  2. 2017.08.29 3,900원의 인성
  3. 2017.08.29 행복한 말
  4. 2017.08.29 노키즈 존에 관한 단상
  5. 2017.08.29 옳고 그름
  6. 2017.08.11 사람은 좌 우로 나뉘지 않는다.
  7. 2017.08.04 운동화와 오천원
  8. 2017.08.03 무화과
  9. 2017.08.03 힘과 선

그런 친구 있지 않았어?


눈을 감고 샤워를 하거나, 예능 방송을 보면서 배꼽 잡고 웃거나, 식당에서 고기 한점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너무 질겨서 삼키지 못할 타이밍에 가끔 생각나는 사람말이야. 생각이 나면 가슴 한 편이 바늘로 찔리는 것 같기도하고 손가락 끝에 튀어나온 손톱으로 닿을랑 말랑 간지렵히는 것 같기도한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말이야.


중학교 2학년 때 였나. 아니, 1학년 때 였나.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초코 다이제도, 그냥 생 다이제도, 비틀즈였나 그런 사탕도 나눠먹었었지.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먼저 누구한테 다가가기가 어려웠는데, 그 친구는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어. 쉬는 시간이 되면 내 자리 근처로 오거나 다른 친구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지. 이상하게도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하기도 했었지. 화장실은 사실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긴 하네. 그래도 그 친구가 먼저 다가와줘서 난 금새 그 친구랑 친해질 수 있었어.


그러다 그 친구의 집을 알게 되었지. 그 친구는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었어. 놀다보면 반드시 몇 시까진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 친구는 그이야기를 하는 것에 개의치 않아했어. 그냥 나 여기 살아. 너는 어디 사니? 이렇게 사는 곳을 쉽게 말하고 물어보는 친구였어. 나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지.


가끔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어. 뭐 대단하지도 않고, 좋을 것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와서 편하게 놀다가 가곤 했던것 같아.


그러다 어느날, 친구가 나를 모른척하기 시작했어. 안녕. 하고 인사를하면 오~ 라거나 여~ 라는 추임새를 붙여줘야하는데 한번 스윽-보고 지나가버리는 녀석의 반응에 난 크게 당황했지. 그 때부터 그 친구는 쉬는 시간에 내 자리에 오지도, 다른 친구의 자리로 날 데려가지도 않았어.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았고. 과자가 있으면 혼자 먹었지. 쉬는 시간에 과자를 못 얻어먹는건 상관 없는데, 그 때는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어. 이유를 물어봤어야했는데, 차가운 그 녀석의 얼굴 표정 앞에서 이유를 물어볼 용기가 잘 나지 않았지. 이가 하나 빠진 것 같고, 손가락 하나가 부러진 것 같은 허전함과 불안감에 집에 혼자 있을 때 눈물이 나기도 했어.


한 3개월쯤 지났으려나? 그 친구가 나에게 버디 버디 메시지를 보내왔지. ‘미안해, 네가 너무 부러웠어’라는 짧은 메시지에 나는 바보같이 ‘괜찮아’라는 답장을 보내버리고 말았어.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메시지로 짧게 미안해라고밖에 말하지 않은 그 친구에게 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간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말해야했는데 난 왜인지 그러지 못했어. 뭐가 부러웠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어. 나도 참 생각이 없던거지. 그냥 그 때는 신이 났어. 아, 내가 이 친구랑 다음날부터 다시 인사를 할 수 있구나, 과자를 같이 나눠먹을 수 있구나하는 기대감에 너무 신이 났어.


다음날부터 다시 그 친구와 반갑게 인사를 했어. 우린 다시 친구가 될 거라고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내 안에 자란 괴로움과 슬픔은 뿌리가 남아있었고, 그 친구의 질투심도 여전히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지. 금새 관계는 냉랭한 관계로 돌아서버렸고, 이젠 나도 그 친구를 보고 싶지 않았어.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그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 되었어. 1학기가 끝나가기 전, 그 친구는 교단 앞에 서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어.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어. 이제 이사를 갈 것 같아. 잘 지내. 나는 그 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 때 알았어. 그러나 그 때조차도 나는 그 친구에게 다시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어.


친구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나온날에 나는 그 친구 주변을 서성였어. 미안하다고, 잘 지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애 주변에서 그 애한테까지 다섯 발자국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거리가 너무 멀었어. 입도 무거워서 떨어지지 않았어. 마지막 종소리가 울릴 때 까지 나는 그 다섯 걸음을 좁히지 못했어.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데, 왠지 뒤를 돌아보고 싶어졌어. 뒤에는 그 친구가 혼자 터벅 터벅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어. 속으로 어떻게하지, 말할까, 이제와서 뭘이라는 생각이 뒤죽박죽 떠올랐어.


그 애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그 미안하다는 말을 15년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고 있지. 그 때, 말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됐는데, 그 말 한마디면 15년이 조금 더 즐거웠을텐데.


만약 그 친구를 어딘가에서 만나면 먼저 다가가서 말하고 싶어.


“잘 지냈니? 나는 가끔 너를 생각했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앞으로의 너의 삶이 행복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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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0원의 인성

 때는 맹추위의 계절, 작은 송곳들이 바람에 실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날라 와서 피부에 1mm씩 박히고, 흐르는 혈액의 온도로 피부에 빠알간 잔상만을 남기고 녹아버리는 때였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가 녹고, 녹은 눈 위에 다시 눈이 내렸다가 녹는 잔망스러운 날이었다. 이열치열 아니, 이냉치냉이라 했던가 우리 부부는 여름보다 겨울에 XX킨 라빈스 31에 더 잘 갔었다. 한 때는 아이스크림을 이틀에 한통씩 사먹었던 것 같다. 질척이는 눈을 조심스레 피해 베스킨 라빈스 XX의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베스X X빈스 31입니다. 혹시...스피커 있나요?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은 스피커가 다 떨어졌습니다. 네...안녕히 계세요. 짤랑. 짤랑. 우리 부부는 평소에도 아이스크림을 잘 사다먹었지만 그날은 특별히 다른 목적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사면 3,900원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주는 이벤트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12월 31일, 즉 2016년의 마지막 날인 31일이었는데, 베스킨 라XX 31은 31일이 되면 평소보다 크게 할인율을 높였다. 어떤 매장에 가도 사람은 넘쳤고, 블루투스 스피커는 동이 나있었다. 걸어서 한번, 버스를 타고 한번, 다시 걸어서 한번, 두드리면 열린다는 문들은 열리긴 했는데 목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동 주변에서 꽤 큰 매장을 발견했고, 그 곳을 마지막으로 생각하자고 결의하며 찾아갔다. 역시 손님은 많았고, 아이, 어른, 연인,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생들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안녕하시냐는 인사말에서 베어나왔다. 밖은 추웠고, 줄은 길었는데, 긴 줄을 기다렸다가 스피커를 받지 못하면 정말 짜증이 날 것 같다는 느낌이 위태로운 위기감을 자아냈다. 심호흡을 하며 줄을 서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내 앞으로 스윽-, 아이스크림에 헤어드라이기를 가져다 데면 스르륵- 녹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들어왔다. 딱 봐도 심상치 않고,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 같은 인상으로 인해...난 비겁하게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에는 LED 등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너무나 강력한 LED 빛이 흡사 먹구름 속에서 한줄기 빛이 통과하는 것처럼 나에게 내려와 나를 불쌍하게 여겨주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 아주머니로 인하여 내 앞에서 물건이 끊기는 비극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커져갔다. 불안감은 그 아주머니를 향한 분노감으로 바뀌었고, 나는 아주머니를 내 큰 눈의 1/3만 연채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줄어들 때마다 느껴지는 그 긴장감은 슈팅게임을 할 때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인 듯 싶었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아르바이트 생은 뭐가 필요하냐고 풀린 눈으로 물어보았고, 나는 아이스크림과 스피커를 원한다고 간결하고 분명하게 표현했다. 아르바이트생은 한숨을 쉬기 위함인지, 물건을 꺼내기 위함인지 분간이 되지 않게 허리를 구부려 2초 정도를 머물다가 올라왔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드...드디어 들어왔다. 돌아다녀서 생긴 피로가 가시는 것 같은 시원함이 들었는데, 그것이 아이스크림의 냉기로 인함인지 스피커로 인함인지 잘 몰랐다. 물건을 받아 문을 열고 나오는데, 나의 앞에 끼어들었던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의 절반만을 뜬채 아주머니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면, 그 스피커는 꽤 좋았지만, 책상 한구석에 먼지를 쓰고 있을 뿐 잘 쓰지는 않는다. 나는 뭘 하려고 그렇게 돌아다닌걸까. 무엇 때문에 그녀를 그렇게 미워했을까. 혼자 분해하고 열내고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성이 3,900원 짜리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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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만나서 다행이에요. 행복합니다.

자신의 행복으로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말.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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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이 확산되고 있다.

어린 아이를 동반한 몇 몇 부모로 인해 가게 및 다른 손님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연령의 아이는 매장에 출입을 금지시킨다.

이러한 조치는 어느 정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식탁 위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간다던지, 다 쓴 기저귀를 그릇 안에 넣고 간다던지, 아이 용 음식을 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한다던가 요구가 들어지지 않으면 화를 내는 등 무례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의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행동이고,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어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이를 동반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도록 하는 노키즈존 영업은 가게 주인들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서비스업을 했던 경험을 되돌아 봤을 때, 이른바 갑질 혹은 진상짓을 했던 사람들은 아이 엄마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아이 엄마들의 무례한 행동도 경험했지만, 청소년, 대학생, 직장인, 아저씨, 아줌마 등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진상은 성별과 나이에 제한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 있는 갑질 문화와 진상 문화는(?) 사람들 속에 있는 심리적 기제를 자세하게 파헤치고 바꿔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처가 한 부류를 정해 'NO'를 외치고 배제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된다. 그건 일종의 '차별'행위이다. 아이 엄마라고 해서 모두 갑질을 하거나 진상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업을 했을 때 매우 매너가 좋고 친절했던 아이와 엄마들도 많았다.

아저씨도, 아줌마도, 학생도, 청소년도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그들도 모두 입장을 금지할 것인가? 묻고 싶다. 왜 아이와 엄마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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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

사람은 자신의 삶을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삶은 옳다고 여기는 사상과 생각을 따라 추구되어진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여기 너무 명확한 문장이 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이것은 옳은 문장일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10년경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문장이었다. 지금에서야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주장이지만, 400년 전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틀린 이야기였을 뿐이다. 옳고 그름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지금 우리가 아는 지식이 훗날 그릇된 사실로 바뀔 수 있다.

옳고 그름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동성혼'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비합법적이다. 동성간의 결혼은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혼인 여건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법적 지위와 함께 동성 결혼이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 스웨덴,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우루과이, 프랑스, 브라질,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공화국, 룩셈부르크, 멕시코, 미국, 콜롬비아, 핀란드, 중국, 몰타 등의 국가에선 동성혼이 이미 합법화되었다. 합법화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그 사회의 구성원 중 많은 사람이 동성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 곳에서 동성혼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묻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그러하므로 옳고 그름은 개인과 개인에게서 다를 수 있다. 시간과 지역, 환경은 각 개인을 타인과 구분되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지는 옳은 것과 모두에게서 배제시켜야하는 그른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긴다. 인식은 행동을, 행동은 평가를, 평가는 갈등을 일으킨다. 옳다고 여기는 것이 삶의 구체성을 형성한다. 삶의 구체성은 겉으로 드러나고, 타인의 평가의 대상이 된다. 옳은 것이 각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타인의 무지함에 치를 떨거나,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 행동을 시작한다.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등은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 명확함이란 신이 아닌 인간의 시간과 공간의 유한성으로는 구분하지 못한다. 사실 혹은 진실을 특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는가. 바로 '믿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과 다르다. 유리는 고체인가. 유리는 흔히 고체로 생각될 수 있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액체에 가까울 수 있다. 유리는 과냉각된 액체에 가까운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리를 고체라고 '믿는다'. 절대적인 진실이 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믿음'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가. 그러나 그 믿음은 각자에게 사실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구축한다. 동일한 현상을 보고 신앙인으로 살 것인가 과학도로 살 것인가를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서로를 대함에 있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많은 갈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있다. 내 믿음은 나를 완고하게 만들고, 타인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도록 한다. 그렇다고 내 믿음을 버릴 수는 없다. 그 믿음이 나를 나로 만들었으니까말이다. 그러나 타인도 그의 믿음으로 살고 있으며 그것을 버릴 수 없다. 나의 믿음을 인정해달라고 투쟁하지만, 그도 인정을 위해 싸우고 있다. 갈등하지 않고는 나를 지킬 수 없고, 타인의 '믿음'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나의 작음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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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좌 우로 나뉘지 않는다.

 

 분열의 시대다. 개인이 겪고 있는 자아의 분열,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 간 분열, 노동과 자본의 분열, 정규와 비정규의 분열, 정상과 비정상의 분열이루 다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 말했다. 분열 없는 이가 누구랴. 분열 없는 사회가 있으랴. 맞다. 모두가 다르고, 같지 않다. 신이 아닌 인간은 완전한 자아의 완성을 할 수 없다. 계속 자라갈 뿐이다. 사회 구성원이 추구하는 것이 모두 다르기에 사회적 갈등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서로 다름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억지로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사회적 병폐다. 단지 서로 다른 것을 잘 조율하고자 하는 노력과 방법을 개발할 뿐이다. 때문에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나에게 중요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한 가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좌파와 우파에 대한 구분이다. 정치가 살아나고 있다. 정치 문화와 정치 사회가 건강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치에 대해 죽었던 사람들의 관심이 이렇게 높았던 때가 있었을까(물론 관심을 갖는 이는 항상 있었겠다). 높아진 정치 의식으로 인해서인지, 어느새 우리에게는 정치 성향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잣대가 생겨버렸다. 저 사람은 좌파야, 저 사람은 우파야 하고 말이다. 순화해서 그렇지, 저 빨갱이 자식 혹은 저런 박사모 같은 놈 등등 서로를 그렇게 비방하며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좌파와 우파에 대한 구분은 서로 다름에 대해 존중함으로써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을 방해하는 양상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좌파와 우파라는 것이 매우 모호한 구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를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간 갈등으로 오인하곤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성 세대 중에서도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젊은 세대 중에서 우파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꽤 있다.

 

좌파냐 우파냐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지하는 정당으로 그 사람의 정치 성향을 판단할 수 있을까. 한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 정당의 정책에 대해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한 정당에서 펴는 정책은 한 가지가 아니다. 많은 정책 속에서 모든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정당을 지지하지만 그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다. 만약 100가지의 정책이 있다면 어떤 지지자는 98개 정책을 지지하고, 어떤 지지자는 56개의 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 그 둘은 좌파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가? 모든 지지자는 개개인의 정치 성향을 갖는다.

 

 좌파냐 우파냐는 진보냐 보수냐라는 언어로 치환할 수 있다. 진보는 무엇인가. 진보는 현재의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변화를 찾는 것이다. 반대로 보수는 현재의 상황이 바뀌어선 안되기에 변화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하다면 단순할 수 있지만, 현실은 더욱 복잡하다. 모든 사람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고, 변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변화는 진보라 부르고, 어떤 변화는 보수라 부를 것인가. 어떤 가치의 수호를 보수와 진보로 구분할 것 인가. 나는 거기에 모호함을 느낀다. 때문에 누군가를 진보 혹은 보수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진보가 무엇이고 보수가 무엇이냐고.

 

물론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지 못할 것은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지향한다. 진보는 이것에 무언가를 변화시키고 추가할 것인가를 더 많이 말하고, 보수는 변화를 참을 수 없어한다(그러나 실상 또 이렇게 나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노선에 대해 더 세분하여 구분하는 용어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시대, 사회 속에서 너는(나는) 진보냐() 보수냐()’ 는 말이 여전히 서로를 이분법적으로 갈라놓는데 쓰여지고 있다. 절대적으로 그 두 가지를 나누어서 어떤 한 사람을 그 중 한 쪽으로 몰아갈 수 없는데도 말이다. 정치적 구분은 우리를 서로 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람을 좌, 혹은 우 둘 중에 하나만 남기도록 하고 있다.

 

내 눈에는 사람을 절반으로 나누어서 왼쪽으로만 걷는 사람들, 오른편으로만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일 때가 있다. 한쪽 발과 한쪽 손으로, 한쪽 눈으로 한쪽 귀로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그러면 죽는다. 사람은 좌로도 우로도 나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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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와 오천원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운동화 한 켤레를 매일 신었다. 운동화는 걷고, 뛰는 고단한 인생으로 노쇠하였고, 할머니의 쪼그라진 피부처럼 여기 저기 잔 주름이 많았다. 본디 흰색이었을 것인데, 신 바닥은 흙 먼지를 뒤집어 써 누우런 황토색으로 덮였고, 몸통 부분은 검은색인지 회색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색으로 바래버렸다.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이라도 되면 토요일까지 일을 나가는 엄마는 퇴근하고서 꾀질꾀질한 운동화를 화장실로 가지고 가 세숫대야에 넣고 물에 푸욱 담가뒀다. 세숫대야 물은 금새 꾸정물로 변했고, 운동화도 꾸정꾸정하게 변했다. 엄마는 푹 익어버린 운동화를 꺼내 바닥에다 처억- 처억- 몇 번을 패대기 치고선 솔로 팍-- 운동화의 쉬어빠진 껍질을 긁어냈다. 그럼에도 운동화는 제 모습을 점점 잃어버리기만 했다.

 

 장마라도 시작될라치면, 아이고, 마를 틈이 없는 운동화에서 꼬락내가-, 거기서 발을 빼보면 발꼬락에서 꼬릉내가- 심하게 났다. 엄마는 하이고- 냄새- 하고 혼을 내셨다. 화장실에서 발을 씻는 것 말고 내가 무얼 할 수 있었겠는가.

 

 어느 날 사단이 났다. 걷다가 발 바닥이 가벼운 느낌이 들어 한 쪽 발을 뒤집어 보니 신 밑 창이 심하게 닳아빠져 있었다. 특히 엄지발가락에 힘이 많이 들어갔는가, 엄지 쪽은 구멍이 난 것 같았다. 밤이 되어 회사에서 퇴근한 엄마를 보자마자 신발을 사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운동화를 한 번 들어보시더니 시장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새 운동화를 살 생각에 신이나 엄마 뒤를 쪼르륵 따라 나섰다.

 

 시장에 신발들을 우르르 모아두고 팔고 있는 인적 드문 가게가 있었다. 가게 주인은 피부도 감았고, 주름도 많은 아저씨였다. 노란 백열구 빛이 아저씨 피부를 밝히기는커녕 더 어둡게 강조하고 있었다. 엄마는 신발들을 주욱- 보더니 디자인만 조금 다른 하얀색 운동화를 집어 들으셨다.

 

마음에 들어?”

 

개성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어, 좋아 이렇게 대답해버렸다.

 

아저씨, 이 운동화 얼마에요?”

 

 이만 오천원만 주쇼잉~”

 

 엄마는 검은색 장지갑을 열어 지폐를 꺼내려다가 말했다.

 

, 아저씨 어쩌죠. 제가 지금 이만원만 가지고 있는데이만원만 드리면 안될까요?”

 

아이고~ 시간도 늦었는데, 뭐 그러시당가요~”

 

그러나 나는 보고 있었다. 엄마의 검은색 장지갑에서, 노란색 백열구 빛에 비치고 있던 황색 지폐 종이를. 나는 엄마가 착각한다고 생각했다.

 

엄마, 여기 오천원 있잖아.”

 

 순간 엄마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아니, 얘가 왜이래~ 돈이 어디있다고 라며 반응했고, 앞에서 내 이야기를 다 들었을 아저씨도 표정이 굳어갔다.

 

아니, 있는데 왜 안 줘!”

 

~! 그냥 저리 가 있어!”

 

 나는 급속도로 기분이 상해갔다. 엄마는 돈을 덜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저 돈을 더 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배우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거짓말 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가르쳤고, 나는 엄마가 나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집에 오면서도 계속 뾰루정한 표정으로 엄마를 봤고, 엄마한테 신발 사주셔서 감사하다고, 잘 신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는 엄마가 정말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었다. 엄마에게 화를 내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때가 와서 그럴까, 그 때의 엄마 상황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돼서 그럴까.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집에 돈을 가져오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빚과 폭언과 폭력을 한껏 던져버리곤 했다. 엄마는 혼자서 일을 하며 나와 동생을, 우리 집을 책임져왔다. 그 검은색 장지갑에 들어 있던 오천원 한장은 어쩌면 그날 저녁 나와 동생이 먹을 반찬을 살 돈이었을지, 다음날 학교에 들고 갈 준비물을 사야했을 돈이었을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엄마에게 그 오천원은 너무나 무거운 돈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발 장을 열어보면, 이제는 신발이 몇 켤레나 있다. 그 때, 신었던 쭈그렁텅텅, 흙먼지 뒤집어쓴 운동화 같은 것은 집에 없다. 그러나 왠지 그 신발이 잘 안 잊어질 것 같다. 엄마가 그 운동화에 대한 기억을 이미 다 잊어버렸을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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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어머님이 태어나 자랐던 전라남도 무안의 하늘에는 구름이 없었다. 파란색 하늘 빛은 태양에서 덮쳐오는 열기에 익었는지 누런 빛깔을 품었다. 9월 정도 되었을까. 가을이 간다는 기별만 넣은채 아직 오지 않았고, 여름은 언제 맛이 갈지 모른채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무안 집은 가로로 긴 시골집이었다. 중앙에는 마루가 있었고, 마루의 양 옆으로 사랑방과 창고방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루 뒤에는 안방이 있었는데, 더위 때문이었는지 구멍나고 삐죽 빼죽 문살 밖으로 튀어나온 창호지로 덮인 양쪽 여닫이 문이 항상 활짝 열려있었다. 안방 안쪽으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바깥으로 통하는 작은 홑문이 있었다. 홑문도 마찬가지로 열려있기 부지기수였다.

 몇 살이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런 어린 시절이었다. 무안 시골집은 흙냄새가 났고, 마루는 걸을 때마다 발 밑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갈라진 나무결이 다 보이던 처마 아래 제비가 집을 지어놨다. 제 새끼를 위해 하루 종일 애쓰는 제비가 귀엽기보다 무서웠다. 지금에서야 즐길만한 것이 되었지만, 그때는 썩 불쾌한 것들 뿐이었다. 마당을 건너 경운기가 세워진 대문 옆을 지나면 바로 차가 다니는 흙길 도로가, 그 너머에는 개똥 참외며, 문드러지고 있는 수박 들이 널부러진 밭들 뿐이었다. 참 볼 것도 없고, 놀 것도 없는 시골이 뭐가 좋다는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더위로 지쳐 집으로 돌아가보니, 마루 안에 안방이, 안방 안에 홑문이, 홑문 안에 나무 한 구루가 보였다. 고요한 시골에서 유독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삐걱 뻐걱, 툭 툭 툭- 재빠르게 방으로 향해 들어가 홑문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나무는 내 키의 스무배쯤 되어보였고, 초록과 연두가 큰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바람결에 나뭇잎사귀 스치는 소리가 났고, 겨우 마음이 편해졌다.

"아따, 무화과 먹고 잡냐?"

 시골집을 지키던 외숙모가 마루를 지나다 나를 보고 물었다.

"무화가가 뭐에요?"

"앞에 있는게 무화과 나무여-"

 나무 가지 끝에 주먹만한 초록 열매가 달려있었다.

"저거 맛있어요?"

"꿀맛이제- 쪼메 있어봐라"

 외숙모는 바구니 가득 무화과를 가져오셨다. 그 과일은 주먹만한 크기에 초록색에 자주색이 섞여있었다. 사과랑 배, 수박, 참외, 기껏해야 귤이나 낑깡 따위가 과일의 끝인줄 알았는데, 생전 처음보는 과수였다. 외숙모는 시커먼 녹이 군데 군데 슬어있던 빨간 손잡이의 과도로 무화과의 절반을 쪼갰다. 분홍빛 속살에 이상한 씨앗 같은 것이 촘촘히 박혀있는 그 과일은 결코 먹음직 스럽지 않았다.

"으...으아...이거 왜 이래요?"

"뭐시 어떤다고. 무우 봐라."

 주저 주저 하다가, 겨우 한 입 배어무니 바나나 같은 부드러운 식감에, 달콤한 맛, 톡톡 무언가 씹히는 것이 일품이었다.

"우와! 진짜 맛있어요!"

 한 바구니의 무화과를 먹어치운 나는 며칠동안이나 외숙모에게 무화과를 달라고 떼를 썼다. 외숙모는 잘 먹는다고 좋아하시면서 무화과를 준비해주셨다. 무화과 나무는 무안 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안되는 좋은 기억 중 하나다.

 그 때는 무화과가 귀한 음식이었는지 몰랐다. 서울에 돌아와서는 무화과를 잘 본적이 없다. 잘 팔지 않기도 하고, 가끔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부모님이 가격이 비싸 잘 사주지 않으셨다. 애초에 무화과는 다른 과일보다 일찍 상하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잘 보기 어렵다고 한다. 유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서울에서 마른 무화과 정도만 볼 수 있었다고.

 길 가다 작은 빵집에 들어갔다. 빵 집에서는 특이하게 무화과 식빵을 팔고 있었다. 한 입 크게 베어무니  마른 무화과에서 꾸덕 꾸덕한 꿀이 나온다. 시골에서는 그렇게 흔했던 생 무화과 맛이 그리워 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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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선

 노숙인 요양 시설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하던 때의 일이다. 시설에는 많은 노숙인들이 지내고 있었는데, 우리 팀이 담당하고 있는 노숙인만 200여명이 넘었다. 정부에서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시설 생활자들과 한 달에 한 번 이상 상담을 진행하도록 정해두었다. 쉽지 않았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들에 대해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기구한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길거리에서 헤매고, 죽을뻔한 위기를 겪으며 한참을 돌아 돌아 제 자리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에게도 평범함이란 없었다.

 노숙인들은 가족이 없을 것이라고 으레 생각하고 있었다.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상황은 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도 없이, 형제도 없이, 아내(성인 남성을 위한 시설이었다.)나 자식이 없어 도움의 손길을 바라지 못할 터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두 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가끔 휴가를 나가면(한 달에 한번 휴가를 나갈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아내 얼굴을 보러 가거나 자식들을 만나러 간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형이나 누나, 동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면회를 오기도 했다. 지병과 고령으로 인해 돌아가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기초연금이나 장애연금 등을 사용하지 않아 통장에 꽤 고액이 모여있는 분들도 가끔 있었다. 사망자가 발생하면 무연고자가 아니고서야 사망 사실을 알리고 시신 인수, 유품과 재산을 전달하기 위해 유가족에게 연락을 한다. 어떤 이들은 면회 한번을 오지 않다가 남겨진 재산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시설에 방문한다. 얼른 돈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돈을 찾아가기도 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노숙인의 보호자가 얄밉고 악해보였다.

 상담을 하면서 가족이 보고 싶다고, 아내와 자식이 자신을 버렸다고 흐느끼며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들썩거리는 어깨와 쓰읍- 쓰읍- 코 넘기는 소리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공감해주고 어깨를 다독이는 것 정도 밖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밖에서 살고 있다는 그의 가족들이 더 야속하게 느껴졌었다.

 속상한 마음에 이럴 수가 있냐고 동료 복지사에게 하소연을 했다. 동료 복지사는 이야기를 듣더니.

“아- 그 사람이요? 지금에야 나이 먹고 힘 빠져서 그렇지, 옛날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매일 술독에 빠져 살고, 아내하고 자식한테 폭력을 휘두르며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조금 더 건강했을 때는 우리도 저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욕하고, 싸우고, 사람들 때리고…에휴…하물며 그 가족들은…어땠을지…”

 상담할 때 보였던 연약한 모습과 검붉은 얼굴로 물건을 깨부수는 모습이 잘 겹쳐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가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 그는 아내와 자식의 몸을 학대하고, 그 마음을 푸르댕댕하게 물들이는 것으로 모자라 갈기 갈기 찢어놓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내와 자식이 그를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나는 쉬이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연약했지만, 누군가에게 악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 곳에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 혹은 시설에 있는 노숙인을 집으로 데려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노숙인들은 충분히 약한 사람들이었지만, 약함이 그들의 선함을 말해주거나 그 가족들의 악함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았다. 그 곳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힘이 있음과 없음을 곧 선함과 악함으로 연결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다. 어렵다. 사람의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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