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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7.06.20 디아블로
  6. 2017.06.16 죽을 뻔한 경험1
  7. 2017.06.16 화장실
  8. 2017.06.16 유인
  9. 2017.06.12 나는 왜 여기에
  10. 2017.06.11 동갑내기 집

어부지리

6월 30일, 민주노총 산하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총파업을 내걸고 광화문에서 집회를 한다. 이들은 비정규직 철폐와 노조를 할 권리 보장 그리고 최저 임금 1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응원을, 또 한 쪽에서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시끌벅쩍 외치는 소리 저편에서는 조용하게 또 맹렬하게 사활을 건 양쪽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6월 29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제 6차 전원회의가 열렸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자 위원들은 최저 시급 1만원을 요구했고, 사용자 위원들은 6,625원(기존 대비 2.4% 인상)을 제시했는데 양쪽이 내 놓은 시급의 차이는 3,375원이었다. 이번 회의는 기존 시급의 약 절반이나 되는 최저 시급 차이를 두고도, 업종별 최저 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등 인식의 큰 차이를 보였다. 결국 최저시급은 법정시한을 넘겨 결정되지 못한 상태가 되었고, 많은 이들을 애타게 혹은 두렵게 하고 있다.

최저 임금에 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건설적이고 사회통합적인 관점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인다. 최저임금은 오히려 서로 빼앗고 빼앗기지 않기 위한 투쟁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최저 임금으로 생계 유지도 빠듯한 노동자와 최저 임금 인상으로 인해 사업 운영에 큰 부담을 느끼는 사업자들 간의 갈등이 점 점 더 심화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정당하다. 2016년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가율은 전년 대비 0.6% 증가에 그쳤다. 물가를 고려하면 실질 소득은 오히려 0.4% 감소되었다. 가계소득이 아닌 노동자의 임금 인상율만 따져봐도 문제가 있다. 지난 5년간의 경제 성장률 대비 실질 임금상승률을 계산하면, 평균적으로 GDP가 2.82% 증가할 때, 실질임금은 2.4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성장한만큼 임금이 상승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은 노동에 대한 가치 절하에 대해 박탈감을 느낀다.

반면, 사업자 혹은 영세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임금 지급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사업이 망할 것이라고, 그로인해 한국의 경제가 파탄날 것이라고 반발한다. 사업자가 느끼는 부담도 타당성이 있다. 2015년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창업한 개인사업자는 106만8000명이고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73만 9000명이라고 한다. 자영업자 3명 중 1명만 생존한다는 것이다. 사업장을 운영하며 직원에게 임금을 지불하면 남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사업주의 호소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사업주와 임금 노동자는 그래서 서로의 생존 문제를 걸고 다투고 있다. 어느 입장이건 한발짝도 뒤로 물러설 수 없다고 외치며 끝나지 않는 평행선 위에 올라서 있다. 평행선은 접점을 찾지 못한다. 거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 사업주와 임금 노동자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가능케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사업장이 없이 임금 노동자도 없고, 임금 노동자 없이 사업도 없다. 결국 모두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 배를 탄 것이다.

사실 사업주와 노동자가 겪하게 싸울수록 좋아할 만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임대업자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 월세 그리고 상가 임대료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집 값은 계속 오르고, 주거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 때문에 많은 가정의 가계 소득 중 대출 상환과 이자 상환비율이 높다. 사업주는 사업장의 공간을 임대하기 위해 임대료를 지불한다. 임대료는 어느새 오르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원자재비 및 직원의 임금을 줄이고자 노력한다. 노동자도 사업주도 서로의 파이를 넓히기 위해 싸우고 애쓰지만, 임대업자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파이 비율을 넓혀간다. 노동자와 사업주가 서로를 적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할 수록 임대업자는 그림자 속에 가려진다.

정말 문제가 뭘까. 정말 최저임금때문에 사업이 망하는가. 사업이 망하는 이유가 노동자의 임금 인상 문제 때문만인가. 경기가 어려운 이유는 임금 문제가 아니고도 많다. 임대료의 문제라던지, 관련 법의 문제라던지, 부정부패라던지 말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임금(소득)이 줄면 사회 경제는 침체된다. 구매할 사람이 없는데 물건을 팔면 무엇을 할 것인가. 오히려 평균적인 임금이 인상되면 내수 시장이 살아나고 경기가 살아난다. 임대업자도 마찬가지다. 비싼 임대료로 많은 사업장이 망하면 누구에게 임대를 할 것인가. 결국 우리 모두 한 배를 탔다.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합의가 조만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거리 밖으로 나와 목이 터져라 임금을 높여 주라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들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한 가정과 직원들의 생계를 짊어진 사업주들의 고뇌를 함께 고민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우리가 결국 한국이라는 한 사회 속에서 서로 공존하고 공멸하는 자들임을 깨닫게 되면 좋겠다.

번외.
(최저임금제도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위해 1894년 뉴질랜드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최저 임금은 다양한 국가에서 시행하게 되었는데, 한국은 헌법 제 32조 1항에서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함을 정해두었다. 헌법에서까지 최저의 임금을 정해둔 이유가 무엇일까. 방만한 자유시장 경제는 인간의, 인간 다운 삶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하기 위해선 적정 수준의 정부 개입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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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170627 묵상
빌립보서 3:1-11

1. 끝으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 나에게는 번거롭지도 않고, 여러분에게는 안전합니다.
2.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3.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우리들이야말로,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는 육신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신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5. 나는 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6.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우리의, 나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내게 있어서 신앙이란 무엇일까. 삶을 바라보는 시선, 삶을 읽어내는 해석, 삶을 살아가는 방법...신앙이란 그렇게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은 무엇으로 향하는가. 세상은 생존을, 힘을, 즐거움을, 우위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칭송받고 아름답다 칭해지는 것이다. 또한 폄하되고 누추하다 칭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판단할 때, 자신의 삶을 판단할 때 그러한 세상의 시선, 해석, 방법을 이용하여 구분한다.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당시 유대인 가운데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세상의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와 동시에 그것을 자신에게 있어 오물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기준의 반전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의 기준은 거기서 가치의 전환을 맞이하고 그리스도를 쫓는 자는 그리스도의 인정을, 그리스도의 기쁨을, 그리스도를 따라감을 그 자리에 둔다. 삶에서 신앙은 응당 그러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

나를 바라볼 때 보잘 것 없는 나의 모습에 실망하고 괴로울 때가 있다. 이런 평가 잣대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그 안에 내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고 쫒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은 한켠으로 밀려난다. 그리스도 신앙이 삶이 무엇이어야하는지 말하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신앙을 버리던지, 허상을 버리던지 나는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고, 고난에 용기있게 참여하고, 그분처럼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것이 결국 부활에 이르는 길임을, 우리가 칭송하고 바라봐야 하는 삶임을 마음 속에 새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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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김용훈



초록 동빛이 내려오는 어스름
어둠이 무서운 전구 빛 위로
별들이 많이도 떳다.

멀리서 보면 까만 도화지 위에 하얀 점이라도 찍힌듯
누가 모래알이라도 흩어버렸는가.
참 개성도 없다.

사실 그들은 피부색도, 몸 무게도, 생김새도,
빠르기도, 위치도, 집 크기도,
친구도, 부모도, 자식도 모두 다르다.

가만히 점 하나 올려다 보고 있자니,
별 하나가 별 하나를 향해 돌진한다.
수줍은 별은 이끌리다가 격정적으로 하나가 되고
서로의 무게를 견디다 뜨거운 먼지가 된다.

별 하나는 인생이 무언지 고민하듯
같은 자리를 뱅 뱅 돌기만 하고 있다.

별 하나는 자신을 뜨겁게 태우고 있다.
절대영도의 고독 가운데 버려진
별들을 위한 초신성(超神聖).

관찰은 이해를, 이해는 판단을 낳는다.
그러나 수억 광년을 지나온 빛 너머에
그는 거기에 없었다.

도시의 네온사인이 별 빛을 쫓는다.
어둠이 두려운 자들은
셀 수 없는 별들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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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고입에 관한 소견.

 문재인 정부가 특목고 및 자사고를 일반고등학교로 전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특목고와 자사고들은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학부모며 이미 졸업을 한 동문들마저 시위 조를 조직하려고 하는 등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왜 전환에 반대하는 걸까. 그것은 우리사회가 여전히 학벌주의 사회이고, 특목고 및 자사고가 SKY를 포함한 명문대로 진입하기 좋은 넓은 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2016년 SKY대학 입학생 중 특목고 및 자사고 출신 비율이 전체의 36.8%라고 발표했다고 한다(출처 : 특목·자사고, SKY 입학생 36.8% 차지…고교 서열화 가속, 한겨레, 2017.6.20, 김미향 기자). 전체 입시생을 고려했을 때 결코 낮은 비율은 아니다. 특목고 및 자사고의 명문대 진입률이 높은 것이 무엇이 문제되는 걸까. 그것은 학력으로 인한 차별의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특목고 및 자사고는 일반 고등학교보다 입학생 선발 시기가 이르다. 고등학교 입시생들 중 특목고 및 자사고 입학생들이 먼저 정해지고 이후 일반 고등학교로의 입학이 정해진다. 학생들은 대학 입시를 치루기 전에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한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좋은 학교를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질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의 입시가 학생 개인의 노력으로 결정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201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과학고나 영재고를 지원하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의 35%가 사교육에 월 100만원을 지출하고 있었고, 이는 일반고 지망 학생의 6~7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한다. 또 사교육 참여 비율은 일반고 지망생이 66.6%인데 비해, 자사고나 외국어고, 국제고 등은 평균 80%이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출처 : 특목고 지망생 사교육 비율, 일반고 지망생의 7배, 한겨레, 2015.9.21, 엄지원 기자). 사교육 비율 및 사교육 금액 등의 차이는 결국 가정의 경제 상황에 따른다. 경제력에 따라 사교육 참여 여부와 그 정도가 정해지고, 이는 학생의 성적 향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는 절대적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는 아니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을 추구한다. 누구나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자유로운 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청년들은 사회로 진입 하기 전 교육에서부터 자유와 기회의 불평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 불평등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진학으로, 사회 진출로 연결되어 우리 사회의 계급 구분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사회 속 학연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학벌의 힘도 발견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이번 정책에 대한 특목고 및 자사고 관계자들과 관련 학부모, 졸업생들의 반대의 목소리는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조금 더 좋은 사회가 무엇일까.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무엇일까. 경제력이 학력으로, 학력이 경제력으로  서로 순환되어 사회적 권력이 되물림 되고, 경제에서도 사회적 권력에서도 이탈된 사람들이 소외를 되물림하는 사회는 결코 아닐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문재인 정부의 특목고 및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계획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학벌 주의와 차별 문제를 바로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고등학생들은 대학 입시 앞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을 것이고, 대학 졸업 이후 취업 지원서의 출신 학교란을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긍정적인 변화의 첫 걸음이 될 수는 있다. 이러한 흐름은 대학의 서열 문제와 학벌로 인한 차별, 그리고 빈부의 되물림 문제의 꼬리를 조금씩 밟아가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직 요원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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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




"여보, 우리 시골에 내려가서 살까?"

"왜?"

"그냥. 조용하고 좋잖아?"

"가서 뭐 해먹고 살게?"

"시골에서 밭이나 일구지 뭐. 돈 많이 안쓰고 살면 그런데로 살 수 있을껄?"

"과연...?"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시골에 작은 부지를 사고, 거기다가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사는 것을 상상해본다. 서울에서 살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서울에서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대부분 돈이지만) 다른 곳에 쓰면서 살면 어떨까? 시골에 가면 거리를 걷다가 각종 가게에서 들려오던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겠지. 집 앞 도로변에서 밤 12시가 되면 굉음을 내던 오토바이 폭주족의 낮은 자존감의 증거를 듣지 않아도 되겠지(그들은 밤중에 왜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걸까). 매달 나오는 공과금과 빚으로부터 해방 될 수 있을까. 낡은 집에서 살기 위해 유지하던 돈으로 시골의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참치캔 먹을 일 없이 텃밭에서 바로 딴 싱싱한 상추나 고추를 먹을 수 있겠지.

그런데 가서 진짜 뭐 해먹고 살까. 밭일만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밭일은 할 수 있을까. 뭘로 돈 벌지. 서울보다야 아낄 수 있다지만, 정말 필요한 만큼의 돈은 벌수 있을까. 필요한 만큼의 돈이란 얼마일까. 이런 저런 상념들이 떠오른다.

생각이 깊어지면서 최소한의 필요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시골에 살면 지금처럼 패션 유행에 대해 민감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철마다 옷을 살 필요가 없으니 자주 옷을 구입하지는 않을 것 같다. 먹을 것은 밭에서 기르고 논에서 나오니 어느 정도 해결될지도 모른다. 주택은 서울에서 주거지를 구하는 것과 시골에서 집을 마련하는 것이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 의식주만 고려하면 시골에서 생활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일은 아닌 듯만 싶다.

자연스레 앞으로 필요할 것에서 지금 내가 소유한 것들로 시선이 옮겨진다. 결혼을 하며 혼수를 이유로 새로 마련한 것들이 많았다. 아내에게 간곡하게 부탁해 평소 가지고 싶던 콘솔 오락기를 구입했다. 오락을 밖에서도 해야한다는 주장에 휴대용 오락기도 추가했다. 같이 운동을 하자고 자전거를 사자고 했다. 일반적인 자전거로는 성이 차지 않아 다른 곳에서는 잘 보지 못할 자전거를 두대나 샀다. TV도, 에어컨도, 냉장고도, 카메라도, 선풍기도, 오븐도, 전기렌지도...새로 장만한 것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것 같다. 새로운 물건은 이후에도 계속 추가 되었다. 옷도 철마다 늘었고, 신발은 둘데가 부족할 지경이 됐다. 노트북은 두대요, 폰은 세대가 있다. 최소한의 필요에 대해 따져보다 보니 내가 가진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소 나는 검소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여겨왔다. 그러나 객관적인 실상은 내가 어마 어마하게 사치스럽다는 것이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일이 너무 힘들고 회사를 때려 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차를 사라는 말이었다. 차를 사면 다달이 할부금을 갚아야 하고, 할부금을 갚기 위해 일을 그만 둘 수 없게 되고 오히려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뜬금 없는 말 같지만, 따지고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물건을 사면 돈을 내야한다. 물건을 사고자 한다면 돈을 벌어야 한다. 내가 사치스러운 사람이고 앞으로도 계속 과소비를 하고자 한다면, 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현금을 계속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럼 아마도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울은 소비하는 자의, 소비하고 싶은 자의 도시이다.

시골에 내려가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소망해보지만, 나의 생활은 정 반대의 삶을 추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TV와 라디오, 신문,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는 우리가 인지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소비하라고 속삭인다. 나는 그 속삭임에 유혹되어 사는 것을 반복한다. 소비는 나를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어 나의 자유를 빼앗는다. 미디어는 소비가 자유를 불러올 것이라고 광고하지만, 사실 노예를 만들고있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오늘도 한참 네이버 쇼핑 페이지를 구경하다 힘겹게 닫기 버튼을 눌렀다. 이어서 바로 페이스북을 구경하다가 새로운 상품 광고가 나를 또 유혹한다. "이거 사고 싶지? 신상이야...ㅋㅋㅋ" 광고를 향하는 엄지 손가락을 재빨리 거둬들여 주먹을 쥐고 외친다. "아니다. 이 악마야."

시골 생각은 다음에나 해야할 것 같다. 아니, 한참은 지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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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죽을 뻔한 경험 1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을 때였나. 군 입대를 앞두고 어딘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당시 휴학하고 있는 친구들이 얼마 없어서 같은 입장이던 교회 여자 친구 두 명과 함께 여행 계획을 짰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 충청남도 태안에 쭈꾸미 축제가 봄마다 열린다하여 그 곳으로 결정했다.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 고생스럽게 도착했다. 항구로부터 이어진 길을 따라 횟집과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쭈꾸미탕 한 그릇과 소주 한병을 먹으니 더 이상 즐길 거리가 없었다. 일본 만화에 보면 축제라고 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 신기한 옷을 입고 춤도 추고 다양한 먹거리도 파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그런 장면들을 떠올리며 가서인지 첫인상부터 별로 흥이 날 거리들이 없어 실망감이 들었다. 친구들과 나는 허망하여 이왕 바닷가에 왔으니 낚시나 해보자며 의기투합을 했다. 근처에서 낚시 도구를 파는 곳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갑작스런 낚시 한번을 하기 위해 낚시대를 살 수는 없어서, 낚시 줄이 돌돌 말려져 손으로 줄을 풀 수 있게 만든 작은 손 낚시대를 구입했다. 그 낚시대는 미끼를 멀리 던지는 것이 어려운 구조였다. 부둣가에 서서 힘껏 미끼를 던졌으나 팔 힘만으로는 얼마 못가 미끼가 바닷 속으로 떨어졌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물고기는 소식이 없었다. 무언가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부둣가 아래에 쌓여진 테트라포트(방파제) 위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테트라포트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윗 부분까지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다. 테트라포트는 구조상 사이 사이엔 큰 구멍들이 있었고, 커다란 구멍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고 있었다. 빛이 잘 닿지 않는 것인지, 틈새로 비치는 바닷물 색은 어두운 색이었다. 별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테트라포트 위에 서서 미끼를 끼워 둔 찌를 힘껏 던졌다. 1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발목까지 덮치는 파도가 쳤다. 온 몸에 짜릿하게 긴장감이 돌며 힘을 주었다. 견디나 싶었다가 들이치는 파도가 끝나고 나가는 파도가 시작되었다. 이끼로 미끄러웠던 바닥 표면이 문제였는지, 오래된 운동화의 밑창이 문제였는지 알 겨를도 없이 다리가 쓸려나갔다. 툭, 툭, 첨벙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당시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기에 공포심이 들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해서 수영을 할 줄 알았어도 테트라포트 다리 사이에 생긴 작은 공간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시커먼 물이 가슴팍에서 머물다가 목까지 올라오길 반복했다. 아직 숨이 가쁠 일이 없건만 숨이 가빠졌다. 부둣가 위에서 친구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긴장으로 팔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물 속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 조개나 고동 따위로 뒤 덮여진 테트라포트 표면을 필사적으로 붙들었고, 팔이나 허벅지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이 지났을까. 기어오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겨우 올라올 수 있었다. 부둣가 위에 올라와서 친구들은 나를 걱정해주었지만, 당시 내 걱정거리는 바닷물에 빠진 PDA 폰과 그날 입을 옷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우리는 그날 밤,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하하 호호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서 신문 기사를 훑어보다가 방파제 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매년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방파제 위에 올라갔다가 실족하여 사망한다는 내용이었다. 방파제의 무게가 워낙 많이 나가기도 하고, 떨어지면서 머리, 팔, 다리 등에 충격을 받아 위험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괜찮겠지 싶어서 방파제 등에 올라가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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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공중 화장실에 들어서면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있다. 화장실 변기의 뚜껑이 닫혀져 있으면 생각하기 싫은 장면이 떠오른다. 아닐거야. 괜찮을거야. 설마...우리 모두 문화 시민이잖아…? 마음을 진정시키며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을 덴다. 그러나 슬픈 예감은 왜 빗나가지 않는 걸까. 뚜겅을 올리자 흰색 커버 위에 형용하고 싶지 않은 누런 방울들이 올라가 있다. 젠장. 또냐.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소변기가 옆에 있는데 왜들 이러는거냐구. 그러나 어쩌면 이 사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처신해준 앞사람에게 감사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앉았는데...느껴질 때가 있으니까...철썩...하아...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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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

 

A신문사 사무실 안에는 키보드 소리와 전화벨소리, 핸드폰의 진동소리, 말소리 등이 한데 섞여 소란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평소에도 전국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로 정신이 없었지만, 이틀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분위기는 평소와 비교할 없었다. C시에서 이틀 초등 1학년 여학생이 괴한으로부터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피해자가 혼자 하교하는 시간에 한적한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흉기로 피해자를 공격했다. 피해자는 심장에 상처를 입고 자리에서 즉사했다. 용의자는 피해자를 죽이고서 도망치지 않고 자리에서 그냥 서있었다. 그렇게 자리에 있기를 10 정도가 지나서 골목을 지나던 행인이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용의자는 즉시 경찰에 체포되었다. 용의자는 체포 당시에도 어떤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체포 이후 이틀이 지나도록 어떤 발표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인터넷은 용의자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시민사회와 언론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경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회부 부장은 부내 기자들에게 사무실에 앉아서 정리만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 경찰이든, 주변인이든 조사하여 다른 신문사에서는 접할 없는 특종을 따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러나 와중에도 유독 움직임도 소음도 없는 사람이 있었다. 문화부 소속이었던 강한수 기자는 이달의 책을 선정하느라 사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간 도서를 탐색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저기 전화를 하다가 잠시 커피를 마시러 나가던 사회부 부장은 강기자의 책상 옆을 지나가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으나 강한수는 어쩔수 없지 않느냐는 말을 부장의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때였다.

 

딴따따라란. 딴따따라란. 강한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A신문사 강한수 기자입니다.”

 

“B경찰서 한복수 경사입니다. 강한수 기자님 맞으십니까?”

 

강한수는 문화부 기자로써 경찰서 출입을 일이 별로 없었다. 다른 기자들과 다르게 아는 경찰이나 관계자가 적었다. 그는 경찰서에서 자신에게 연락을 했는지 궁금증을 품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무슨일이신지요?”

 

혹시, 이틀 전에 일어났던 초등생 살해 사건을 알고 계십니까?”

 

언론에서 계속 사건을 다루고 있으니 모를일은 없지요.”

 

그렇다면 사건의 용의자에 대해서 알고 계신게 있습니까?”

 

용의자나 사건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경찰이 아무런 발표도 하고 있지 않은데, 저희가 용의자에 대해 있겠습니까?”

 

제가 묻는 것은 용의자를 개인적으로 알고 계시냐는 말입니다.”

용의자에 대한 내용과 사건에 관한 개략적인 내용도 경찰은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를 아냐니. 강한수는 질문 자체를 이해할 없었다.

 

“...아니, 그게 무슨…”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 B서로 와주셔야겠습니다.”

 

아니, 저는 A신문사 문화부 기자일 뿐입니다. 필요하다면 사회부 기자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강한수 기자님 당신이 오셔야 합니다.”

 

아니...그게 무슨…”

 

저희가 따로 A신문사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서둘러서 주십시오.”

 

전화가 끊겼다. 당황스러웠다. 초보 기자 시절에야 경찰서를 몇번 갔었다지만, 문화부 소속 기자가 되고선 경찰서에 가본 적이 없었다. 물론 회사 회식자리에서 추태를 부리던 선배 기자에게 일침을 가했다가 주먹다짐을 벌여 경찰서에 적이 있지만, 뿐이었다. 갑자기 문화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강기자! 잠깐 와봐!”

 

, 부장님.”

 

지금 B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잠깐 갔다 오지. 급하게 부르는 같던데 바로 출발하도록해.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문화부인 강기자를 찾는거야? 사회부 부장 눈치도 보이고, 이거 영역 침해라고.”

 

그게...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이었다. 강한수는 사건에 대해 아는게 없었다.

 

아무튼 다른 신문사 기자는 안부른 같으니, 우리 단독이야. 뭐좀 챙겨와봐. 그래야 사회부에도 말이 있지.”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강한수는 차를 몰고 B서로 향했다. 강한수는 B 앞에 도착할 즈음 차를 끌고 것에 후회감이 들었다. B 앞에는 각족 언론사가 취재를 위해 모여있었고, 유족들과 시민단체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확성기 소리는 유족들의 눈물 소리가 섞여들어 우울감을 불러왔다. 도저히 차를 공간이 없다고 판단한 강한수는 30분이나 걸려 다섯 블록이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 왔다. 많은 인파 사이를 비집고 경찰서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현관 앞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이 강한수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한복수 경사님 계십니까?”

 

, 강기자님이시군요. 오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 그런데 저를 찾으셨습니까?”

 

강한수는 기자로써의 사명보다 궁금증이 강하게 들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드려야할지....용의자를 조사하려면 강한수 기자님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요? 용의자가 지인이라도 됩니까?”

 

그건 오히려 저희가 묻고 싶군요. 용의자는 누굽니까? 정말 용의자를 모릅니까?”

 

저는 용의자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경찰에서 기본적인 정보도 공개를 안하고 있을텐데요.”

 

저희도 정보 공개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 밖에서 난리를 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 미치겠다고요. 정말 남의 속도 모르고.”

 

지금 말은 경찰에서도 정보를 공개하고 싶은데 수가 없다는 말인가요?”

강한수는 밖의 말에 약간의 당혹감이 들었다.

 

용의자의 신분 조회가 안됩니다. 지문이 선명하게 찍히는데 조회가 안돼요. 출생신고가 안된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용의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어요. 살해 동기조차요. 그런데 그가 체포되고 유일하게 하는 말이 있어요.”

 

그럴수가 있나요…? 그런데 말이 뭐죠?”

 

바로 강한수 기자를 데려와라 입니다.”

 

“...?!”

 

강한수는 당혹감으로 말을 수가 없었다. 용의자는 자신의 지인일까.

 

지금 2취조실에 있습니다. 저도 강기자님을 용의자가 찾는지 궁금하군요. 용의자가 강기자님 아니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니, 가서 용의자에 대해 파악을 부탁드립니다.”

 

강한수는 한복수와 함께 2취조실로 들어갔다. 취조실은 어두웠다. 사각형으로 생긴 가운데 철제 책상 하나가 있었고, 위로 노란색 빛을 내뿜는 전구가 하나 켜져 있었다. 전구 아래로 용의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의 절반은 드러나고, 절반은 어둠에 뭍혀있었다. 용의자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얼굴에 드리워진 음영과 옅은 미소가 어우러지자 공포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용의자의 외모는 객관적으로 미남형에 속했다. 강한수와 한복수는 용의자에 맞은편에 앉았다.

 

, 네가 말한 강한수 기자님이다. 너의 요구를 들어줬으니, 이제 입을 열테지? 말해, 이름이며 살해 동기며, 살해 방법이며 죄다!”

 

“.......”

 

10 정도 정적이 흘렀다. 한복수는 손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소리가 나게 치며 소리쳤다.

 

! 새끼야! 요구를 들어줬는데 아무말도 안하는거야! 지금 장난해!”

 

그때 용의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강한수랑 이야기를 한다고 했지 당신이랑 이야기를 하겠다고 적이 없는데?”

 

? 여기가 놀이턴줄 알아? 미친놈이네! 이거! 네가 짓을 했는줄 알기나 !”

 

한복수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철제 책상을 오른 손으로 내리쳤다. 소리의 크기가 그의 분노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경사님, 제가 한번 이야기해보죠...잠시 밖으로 나가주시겠습니까?”

 

강한수는 자신이 처음 보는 청년에 대해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용의자는 나를 어떻게 아는걸까,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걸까하는 질문이 용의자가 벌인 사건의 끔찍함보다 신경이 쓰였다.

 

에이씨. 강기자님, 저희는 바로 밖에 있으니, 무슨 생기면 바로 불러주십시요.”

 

한복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끼이익 거리는 취조실 문의 소리가 소름이 끼쳤다.

 

, 이제 말해보실까? 먼저 자네 나를 아나?”

 

“....”

 

1 정도가 지났지만 용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여기엔 혼자만 있네. 나는 A신문사 강한수 기자라고 하는데, 자네가 찾는 사람이 내가 아닌가?”

 

당신이 맞지. 단지 저거.”

 

용의자가 가리킨 방향에는 붉은 LED등이 1초에 한번씩 점멸하고 있었다. 취조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CCTV였다.

 

“CCTV? 저게 있으면 나랑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CCTV 끄길 바라나? ...잠시만, 잠시 나갔다 오겠네...”

 

강한수는 취조실 밖으로 나와 한복수 경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한복수는 분에 찼는지 애꿎은 시멘트 벽을 발로 찼다.

 

아이씨! 저자식이 지금 누굴 놀리는거야!”

 

경사님...진정하시고...일단 용의자가 원하는데로 해주면 어떨까요…?”

 

그게 쉬운게 아니에요. 저희는 기록을 남겨야한다고요.”

 

그럼...제가 녹음기를 써서 대화 내용을 녹음해보겠습니다. 그걸로는 안될까요?”

 

녹음기요? 하아...잠시만요. 상관이랑 이야기좀 해볼게요.”

 

한복수 경사는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사무실 안쪽에서 소리가 났고, 한복수가 땀을 흘리며 돌아왔다.

 

제가 어떻게든 했습니다...녹음 해주시구요. 부탁드립니다.”

 

...한번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강한수는 다시 취조실 안으로 들어갔다. 용의자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반쯤만 얼굴을 내밀고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점멸되던 붉은 LED 더이상 반응이 없었고, 어둠속에 동화되어 있었다.

 

, 자네 요구는 들어준 같다만. 이제 대화를 해볼까? 우선 나를 불렀지?”

 

그냥. 당신이 보고 싶었거든.”

 

강한수는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당혹스러움이 들었다.

 

단지 뿐인가?”

 

.”

 

내가 보고싶었지?”

 

말했잖아. 그냥이라고

 

“...할말이 없어지는군. 다른 할말은?”

 

글쎄. 다른 질문은?”

 

용의자의 요구를 들어주면 술술 정보가 나올 알았다. 그러나 대화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럼 기본적인 것부터 질문하지. 자네 이름은 뭐지?”

 

그거 말고 다른 질문.”

 

자기 이름도 알려줄 마음이 없다니. 생각보다 무례한 친구인걸? 사람을 불러놓고 말이야. 내가 질문하면 되지?”

 

글쎄, 내가 벌인 사건에 대한건 어때?”

 

좋아. 자네는 여학생을 살해한게 맞나?”

 

내가 그랬지.”

 

용의자에 표정엔 어떤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여전히 미소를 띄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죽이고서 웃고 있다니. 강한수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과 함께 약간의 한기를 느꼈다.

 

죽였지?”

 

내가 질문 하나만 하지.”

 

용의자는 대뜸 질문을 던졌다.

 

댐과 아래에 마을이 있다고 치지. 댐이 무너지면 마을 사람들은 죽어. 위에 남성이 있고, 그는 댐을 폭파하려고 하지. 그런데 장소에 당신이 있어. 경찰에 신고할 시간도 없고, 그를 설득할 수도 없어. 당신 선택은?”

 

너무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강한수는 용의자가 자신을 놀리는 중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물론 막아야겠지.”

 

어떻게?”

 

글쎄...육탄전이라도 벌여야하나?”

 

그는 칼을 꺼내들었고,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지. 어쩔셈이지?

 

강한수는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문화부 기자가 것도 사회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도망치면 죽는거고..., 싸워야 하려나…? 나만 죽으면 혼자 도망가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벌어질테니, 어떻게든 폭파범을 제압해야겠지.”

 

제압하는 과정에서 폭파범이 떨어져 죽거나 하면 어쩔텐가?”

 

최대한 안그래야겠지만...아무런 희생이 생기지 않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 그래도 마을과 많은 사람은 구할 있으니 정상참작은 될지도 모르겠군.”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용의자는 표정이 조금 밝아진 같았다.

 

그런데 이야기가 사건과 무슨 상관이지?”

 

상관이 있지.”

 

도통 모르겠는데.”

 

마을을 구했거든. 아니, 모두를 구했지.”

 

강한수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아. 지금 나를 가지고 장난하는건가? 나는 자네 때문에 경찰서에 와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 장난을 하려고 나를 부른 것은 아닐테지?”

 

장난이라니. 내가 그래야 하지? 누구보다도 진지하지. 진지하지 않으면 없는걸 했고.”

 

어린아이를 살해한 것을 말하는 건가?”

 

,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강한수는 앞에 앉아있는 용의자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없는 어린아이를 살해하고 모두를 구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갑자기 살해당한 아이가 불쌍해지면서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는 같았다.

 

아이를 죽였어. 그것도 초등학생 1학년을!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지? 아이가 누구를 헤쳤지? 아이가 지나가는 꽃을 밟았다고 하더라도 세상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죄를 짓는 사람이 많다고! 그런데 ? 사람을 구해? 미쳤어? 정신이 아니군!”

 

진정해. 멀쩡해. 제정신이라고. 궁금하지 않나? 내가 아이를 죽였는지. 당신에게만은 말하도록 하지. 내가 그랬는지. 전에 진정하라고.”

 

강한수는 피로감을 느꼈다. 자신이 이런 대화를 해야하는지 도통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묻지. 농담하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해줬으면 좋겠군. 아이를 죽였지? 부모에 대한 원한인가?”

 

아니, 부모에 대해 오히려 좋게 생각하지. 아이의 아버지는 대학 교수더군. 유명한 물리학자였지? 어머니도 공무원인걸로 아는데, 나쁠거야 없겠지. 단지 아이만 생각했어.”

 

왜지? 아이가 했다고 죽인거야?”

 

폭파범을 죽인 거야. 아이가 폭파범이지.”

 

무슨 소리인지 도통 수가 없군. 아이가 폭파범이라고?”

 

아이는 30 뒤에 과학자가 .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물리학자가 되지. 그녀는 블랙홀을 인공적으로 만드는데 성공해. 지금 시대에도 그건 가능하지만, 그녀는 그걸 손쉽게 만들고, 다루기 쉽게 하는데 성공했지. 생각해봐. 인간이 중력에너지를 자유롭게 있게 된거야. 인류는 찬사를 보냈지만, 그건 비극의 시작이었지.”

 

강한수는 자리에 나와서 공상 과학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후회되었다. 이번주까지 특집 기사를 써야하는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들어 주겠군. 그냥 미친놈이었구나.”

 

글쎄, 과연 그럴까. 사람들은 착각했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말야. 그러나 그녀의 블랙홀은 2 핵폭탄이 됐어. 강력한 무기는 세계를 전장으로 바꿔놨지. 많은 사람이 죽었고, 돌이킬 없게 되었어.”

 

내가 너의 공상을 진지하게 들어줘야하지? 가겠어.”

 

나는 신원 조회가 안될까?”

 

강한수는 갑자기 약간의 호기심이 느껴졌다.

 

그건 내가 곳에서 태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야.”

 

그게 무슨 말이지?”

 

지금부터 40 후에서 왔거든.”

 

지금...시간여행에 대해 말하는거야? 기가 노릇이군.”

 

이건 사실이야.”

 

강한수는 용의자가 시종일관 짓고 있던 희미한 미소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진지한 표정에 전혀 현실성 없는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순간적으로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35 후에 무기화된 블랙홀로 인해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결과는 대부분의 국가가 사라지고 인류의 절반이 죽어. 그로부터 5 과학자들은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 당신들이 생각하는 타임머신의 개념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야. 임무를 받고 작전에 투입되었어. 바로 블랙홀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인공 블랙홀 자체가 개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인공 블랙홀을 개발한 그녀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녀를 제거함으로써. 그리고 나는 성공했어.”

 

강한수는 앞에 앉은 남자가 과대망상에 빠져있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없군. 그렇다면 타임머신은 어디있지? 다시 돌아가지 않고 여기 이렇게 있는 거지? 이대로라면 사형수가 될걸?”

 

미래는 고정된 것이 아니야. 미래는 항상 변하지. 내가 그녀를 죽인 순간 미래는 바뀌었어. 그녀가 없으면 블랙홀 전쟁도 없지. 전쟁이 없었다면 과학자들이 타임머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을거야. 아이를 죽인 순간 타임머신 자체가 증발해버렸어. 돌아갈 수단이 없어졌지. 애초에 돌아갈 미래조차 변했기 때문에 내게는 곳이 없었지만 말이야.”

 

타임머신이 증발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없어지지 않은 거지? 너도 지금이 변하면 없어져야 하는거 아닌가?”

 

글쎄. 부모가 여전히 나를 낳을 계획인가보지 . 미래에도 존재할 예정일거야.”

 

말을 믿을 같은가?”

 

당신이 믿든 믿든 그건 상관 없어. 지금 매우 기분이 좋거든. 세상을 구했어. 단지 나를 희생해서 말이야. 아까 내가 얘기했던 얘기 아직 기억하고 있지? 폭파범을 죽인 뿐이야. 마을 사람들을 죽일 범죄자를 말이야. 당신도 말했잖아? 정당방위라고.”

 

...믿을 없어... 아이가 미래에 하든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어린애였을 뿐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거야? 나를 지목한거냐고!”

 

이름이 뭔지 물었었지?”

 

강한수는 용의자가 갑자기 이름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이름은 강수목이야.”

 

용의자는 말을 마치며 오른 팔을 자신의 목덜미로 향했다. 그는 목덜미를 덮고 있던 옷을 일부 거둬서 살이 비치도록 하고 옆으로 비스듬히 돌았다. 용의자는 자신의 목덜미를 강한수가 있도록 했다. 목에는 직경 5cm 점이 있었다. 목덜미의 점을 순간 강한수는 싸늘한 기분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덜미로 손을 데고 있었다. 점은 강한수의 목에도 있었다.

 

...뭐야... 뭐야…!”

 

반가웠어. 아버지.”

 

강한수를 아버지라고 부른 용의자는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한수의 뒤로 돌아갔다. 그는 당황한 강한수가 주춤한 사이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그리고 벽을 향해 힘껏 던졌다. 녹음기는 자리에서 박살이 났다.

 

어머니가 아버지 이야길 많이 했지. 한번도 적은 없었는데, 그냥 죽기에는 아쉬워서 말이야. 그래도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없지. 나도 아이를 죽이고 싶진 않았어. 그러나 이해해주면 좋겠군.”

 

강한수는 아무런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박살난 녹음기와 용의자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서 편하게 생활할 있다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유아 살해자를 그냥 두지는 않겠지? 나에겐 편히 죽을 권리 쯤은 있을 같은데. 아버지와 이야기라도 해볼 있어서 다행이군.”

 

용의자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가 힘껏 다물었다. 빠각. 소리가 나고 잠시 용의자의 입에서 흰색 거품이 보였다. 용의자는 순식간에 쓰러져 바닥에서 뒹굴었다. 잠시 멍하게 사태를 바라보던 강한수는 밖으로 뛰쳐나가 한복수 경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용의자는 즉사했다. 용의자의 치아 안에 있던 특수한 독이 터지며 독사했다. 경찰은 강한수에게 어떻게 일인지 물었지만, 강한수는 자신이 어떤 말을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녹음기는 박살났고, 비디오 녹화도 없었다. 그에겐 아무런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틀간의 추가 조사를 마치고야 강한수는 경찰서에서 나올 있었다. 경찰서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경찰은 여전히 제대로 발표를 하지 못했다. 다만 용의자가 음독자살을 했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강한수는 울부짖는 피해자의 부모를 보았다. 그는 괴로움과 슬픔의 중간 쯤에 있을 감정을 느꼈지만, 피해자가 죽었어야 했는지 제대로 고민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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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다중지능이라는 말이 있다. 다중지능은 하워드 가드너가 제시한 지능이론이다. 일반적으로 암기력이 좋거나 계산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지능이 높다고 하나, 암기력, 계산력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능은 다양하다는 것을 뜻한다. 다중지능은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자연친화지능, 실존적지능 등으로 분류된다.

나는 암기를 잘 하거나 수학을 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자신 있어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자기성찰지능이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잘 분석하고 그것을 표현해낸다. 어른이 되어서, 타인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놀란 것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짚어내는데 어려움을 갖는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분석하고 표현하게되면 타인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혼란이 줄어든다. 갈등의 심화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나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기정사실화한 내가 선택한 방어기제가 혼자 노는 것이었다. 혼자 독서하고, 영화를 보며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자신에게로 집중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생각했다. 타인과 주변이 점점 작아졌고, 내면의 세계는 비대해졌다. 잘 하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결국 자신에게 빠져살아왔다는 것이다. 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위태로운가. 감정이 아래로 꺼졌다가 높이 솟아올랐다. 비대해진 감정의 물살은 파도가 되어서 내 생활을 흔들어놓는다. 특히나 자기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파도가 쓰나미로 변해 일대를 초토화시키기 마련이다.

고집쎈 20대를 지나오며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타인과 주변으로 눈을 돌려야함을 겨우 알아갔다.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한만큼 타인을 아는 것과 우리의 상황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내가 중요한만큼 타인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요즘 조금 힘이 들었는지, 한동안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하루 중 있었던 고된 일들을 줄줄이 쏟아놓았다. 그 때 내 기분이 어땠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아내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들어준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음은 행운이다. 오늘 저녁도 하루 중 있었던 여러 일들을 아내 앞에 꺼내어 놓는다. 그러나 어쩐일인지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내게 잠시 앞에 앉아 보란다. 요즘 내가 하루가 멀다하고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 물어본다. 아니 그건 괜찮지만 내면에만, 자기 스스로에게만 과도한 집중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내가 힘든 것처럼 타인도 힘이 든다. 나의 고통처럼 타인이 고통을 겪으며 산다. 하나님은 나의 행복에 집착하시기보다 이 세상을 아우르신다. 나는 오늘 왜 여기에 있었는가. 나는 내일 왜 거기에 있을 것인가.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무엇을 하길 바라실까. 아차, 간과했음을 깨닫는다. 나를 이해하는 힘이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고 내가 해야할 일을 알려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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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rapeVine.Kim

나는 1987년에 태어났다. 우리 집은 1987년에 지어졌다. 올해 31살이 된 나와 우리 집은 동갑내기다. 사람이 태어나서 청년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노인이 된다. 청년의 시기에는 비 바람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나이가 들면 점점 비에 젖는 것조차 위험하게 된다. 집도 막 지어지고선 튼튼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점점 노쇠해진다. 여기저기가 부식이 되고 삭아버린다. 튼튼한 쇠붙이도 아이 손에서 바스러지게 만드는 것이 세월의 힘이다. 옛날에는 집도 100년은 너끈히 간다고 했는데, 현대로 들어서선 사람만큼 사는 집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재개발로 부숴지는 집도 많고, 그냥 혼자 쓰러지는 집도 있다. 나와 같은 나이의 집에 사는 것은 꾀나 부담이 되는 일이다. 점 점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지는데, 보살펴야 하는 식구가 늘어난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집에 살면서 여기저기 손본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샤시도 새로 하고, 전등도 싹 갈고, 바닥도 한번 뜯고, 스페너로 조이고, 갈아주고어쩌면 내 몸보다 더 보살피며 산 건 아닐까도 싶다. 그러다 보니 정도 들고, 애착도 생겼다. 역시 땀이 들어가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듯 싶다.

그러나 아프다는데 어찌 좋게만 여겨질까. “여보, 이거 왜 이럴까……”, “글쎄……고장인가……”. 세면대에서 물이 내려간다던 지, 스위치를 누르면 빛이 나온다던 지 하는 일상적이고 하찮은 일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위대한 발견인지는 그것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될 때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고장이 일상과 평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의 소중함이 찰나의 불편함보다 커 보이긴 힘들다. 불편은 걱정이 되고, 걱정은 불안이 된다. 불안은 우울이 되고, 우울은 괴로움이 된다. 오래된 집에서 산다는 것이 불시에 불안감으로 찾아올 때가 많았다. “또 고장 나면 어쩌지이거 안되면 어쩌지…”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에 이런 불편감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삶의 만족도가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된다.

 함께 사는 아내는 우리 집이 좋다고 한다. 너무 감사한 곳이라고 한다. 하긴 그렇다. 나도 처음 집을 구했을 때,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간사함이란……나야말로 간사함의 산 증인이다.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오래된 집이어서 불편하지는 않아?” 아내는 답했다. “고장 나면 또 고치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하긴 그랬다. 사람이 젊어서 건강하고 나이가 들어서 건강하지 않은가? 젊어서도 아프고,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었다. 집도 마찬가지다. 새로 지은 신축 건물이 고장 나기도 하고, 보수가 필요하기도 한다. 반대로 오래되어도 튼튼한 집도 있다. 살다 보면 그냥 아플 수 있고, 고장 날 수 있다. 아프면 다른 방법이 있는가? 병원 가서 치료해야 한다. 고장 나면 고치면 된다. 삶에는 행복과 괴로움이 모두 있듯, 건강함과 아픔이 같이 있다. 어디서 살던, 어떤 때이건 그렇다. 그럼 안 좋아질 것을 걱정하며 살기보다 좋을 때를 즐기고, 안 좋을 때는 좋게 만들려고 노력하면 된다. 아내는 그런 면에서 지혜롭다. 내가 아내를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안 좋아질 것을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삶을 살면 행복할 수가 없다. 그냥 지금을 즐기고, ‘고장 나면 고치면 되지의 정신으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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