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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백수 그리고 존재의 가치

by GrapeVine.Kim 2015. 8. 15.

 백수. 자고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하였던가. 일 하지 않는 기간이 본의 아니게 꽤나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내 뱃 속으로는 인류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많은 음식들이 지나갔을 뿐. 요즘은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는 시기이다. 뭐랄까. 아무런 성과도, 결과물도 내지 않는 생활이 주는...무가치함이랄까. 무언가 잘 할 수 있다는 느낌과 스스로가 가치 있다는 느낌이 주는 인생의 힘이 부족한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나를 향해 "너는 참 쓸데가 없구나." 하고선 독설을 퍼부은 것은 아니었다. 흘러간 시간 속에서 장판 위에 등을 붙이고 누워 꺼진 형광들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느끼는 혐오감에 가까울 것이다. 이 느낌은. 그렇다. 나는 나에게 무가치함을 부여한다.

 누워서 생각했다. 이 무가치함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가치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나를 어떠할 때 가치 있게 여겨줄 것인가. 내가 일을 잘 하고 있을 때 나는 나를 가치 있게 여겨줄까? 내가 돈을 잘 벌고 있을 때 가치 있게 여겨 줄 것인가? 안정적인 직장에서 타인의 인정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을 때 나는 가치롭다고 생각할까...?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러한 상태에 있지 않은 나는 가치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인가.

 가치 있다는 말은,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표한하지는 않는다.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까.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에서 무언가가 중요하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그것은 어쩌면 지향점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 내가 바라는 것들에 나는 가치를 부여하고, 가치 있는 것을 하는 내게 또한 가치를 부여하겠지...지향점이든, 목표든, 목적지든 무엇이 됐던지간에...그것은 내게...

 돈이었을까. 안정성이었을까. 다른 사람의 인정이었을까.

  그렇게 생각이 번지자...나는 내 인생을 지금까지 속여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를 향해 달려왔던가. 돈과 명예와 안정을 쫓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고 싶었는데, 나는 다르지 않았구나. 그래서 이걸로 된걸까....

 나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고, 안정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이제까지의 생각으로는 내게 그들은 가치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 그렇다. 나는 가진 자들을 떠받들고, 권력자들 앞에 무릎 꿇는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된걸까...

 그러나 그건 아니다. 이런 결론은 지금의 내 삶을 전체로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 돈을 쫓아 삶을 버리기를 거부하였고, 권력과 관계 없이 인간은 동등하다고 믿는다. 'To be, not to have',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라 존재 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신앙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 삶의 지향점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니던가. 그것은 물질의 많고 적음, 다른 사람들의 인정의 유무, 안정적인 직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복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우리가, 죽음 가운데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겸손함과 하나님 만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시인하는 것이다.

 답은 하나다. 내 지향점이 틀렸던지, 내 반응이 틀렸던지.

 나는 내 지향점이 틀리지 않았음을 선언한다. 나는 지향점을 속인 것이 아니라, 지향점에 따른 반응을 속인 것이다. 나는 꽤 괜찮은 직업과 안정성, 명예와 권력도 가지지 못한, 그저 백수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무가치함을 부여할 이유가 되는가? 나는 다시금 존재의 가치를 주장하련다. 자신에게 향한 절망의 거짓말에 제대로 된 답변을 들려주련다. 그래, 꿈틀대며 지금을 살아가는 나는, 나이기에 가치롭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을 응원할 수 없는 수 많은 백수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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