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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150815, 청량리

by GrapeVine.Kim 2015. 8. 15.

엄마는 내가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청량리에 살았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스물아홉살이 되어 처음 들었던 사실이다.

서른해에 가까운 이십여년이 흐르고, 어머니는 청량리와는 먼 곳에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시다가, 청량리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졌던 것은 변함이 없으나, 운이 좋았던 걸까, 세상이 좋아진 걸까.

아무 것도 남을만한게 없는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면 그것도 괜찮을 것이었다.

7층, 우리가 살아봤던 가장 높은 지대에서 엄마는 창문을 열면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며 좋아하셨다.

오늘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엄마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셔서 5천원 짜리 진간장을 사오시며 간장이 참 비싸다고 불만을 드러내셨다.

몇개월을 맛을 낼 간장 한 병에 5천원. 제법 훌륭한 가격이라고 나는 되받아쳤다.

엄마는 허허 웃으며 그렇긴 하지 하고 부엌에서 동분서주를 하신다.

닭도리탕(닭 볶음탕)이 먹고 싶은데, 혼자선 먹기 힘들다며 지난 밤 나를 불렀다. 밖에선 먹을 수 없는 우리집 특유의 묽은 닭도리탕을 오랜만에 맛보았다.

닭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색 육수가 눈에 튀었는지, 눈가가 화끈거렸다.

닭 뼈가 담긴 대접을 뒤로하고 나는 자취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채 7층 담벼락에 서서 내가 내려가는 길을 잠시 지켜보다 들어갔다.

엄마가 청량리에서 자식들을 데리고 처음 살았을 그 나이에 나는 남가좌동에서 자취를 하며 산다.

자식도 없이, 확신도 없이.

나도, 한 30년 세월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자식 같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닭고기라고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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