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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울타리를 넘어, 리뷰

멍청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 - '남쪽으로 튀어' 리뷰

by GrapeVine.Kim 2014. 12. 18.


멍청이들을 위한 나라는 있다.


- 영화 ‘남쪽으로 튀어’ Review


  


멍청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지인의 결혼식에 갈 때는 흰 봉투에 지폐를 홀수로 맞추어 가고, 장례식에 갈 때는 지폐를 짝수로 맞추어 가야 한다. 명절, 조카들을 보면 몇 만원 용돈을 쥐어줘야 하고, 사무실 휴지통을 비울 때는 서열이 높은 과장보다 서열이 낮은 신입 사원이 움직여야 한다. 이 밖에도 우리가 살면서 지켜가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멍청이는 우리가 당연히 알고 지켜야 할 것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필자는 멍청이다.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상식과 같은 것들을 잘 모를 때가 있다. 이해할 수 없어 반문을 던지면 질타를 받기 일쑤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는 것들을 다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는 멍청이로 낙인찍힐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정했는지도 모르는 것들에 둘러싸여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 빠져나가는 국영방송 TV수신료, 세금, 누가 만드는지 모르는 학교 급식, 정치인들이 만드는 국가 정책...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요구받는다. 당연하게 세금을 지불하고, 당연하게 명령에 복종하고, 누군가 주도한 변화를 수용하며 산다. 때로는 법이, 때로는 상식이, 때로는 문화가 그렇다.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저 수용과 복종이 필요할 뿐이다. 답답하지 않은가? 정해진 조건에서, 정해진 공간에서만 헤엄치는 어항 속 물고기 같지 않은가?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어항 밖을 나가면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이니 어항 안에서 살아가라는 거인의 목소리뿐이라 하겠다.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거대한 눈동자를 느낄 수 있는가?


  


최해갑(김윤석 역)은 대한민국이 가장 골머리 썩는 남자다. 젊은 시절 사회 운동을 하던 그는 TV수신료를 걷으러 온 공무원을 문전박대하고 TV를 창밖으로 던져 수신료를 낼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국민 연금을 강제하는 국민연금공단에 찾아가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세금을 내야한다는 이야기에 불끈하여 대한민국 국민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으니 이제 대한민국 국민 안한다고 으름장을 내고 돌아오기도 한다. 독립영화 감독인 그는 주민등록증으로 국민을 감시하려는 국가에 맞서서 영화를 만들고는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리기까지 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에게 국가는 국정원 직원까지 붙여 감시를 하곤 한다. 


그런 그의 생각은 일상에도 녹아있다. 나라(백승환 역)가 동네 불량배들과 싸워 집을 나갔을 때도, 여타 부모와 같지 않은 면모를 보여준다. 걱정도, 불같은 화도 없이 잘 갔다 오라고만 한다. 다만 자신이 책임을 지기만 하면 된다고 덧붙일 뿐.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부모가 어떻게 그것 밖에 안 되느냐고 비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는 최해갑이지만, 사실 최해갑만큼 괜찮은 사람도 이 시대에 드물듯 하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급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에 교장을 찾아가 으름장을 놓는다거나, 딸이 자취하는 집에 찾아가 딸이 잘 지내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후배의 안위를 위해 싸움도 마다 않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불편한 사실들에 맞서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진다. 




결국 변변한 직업도 없이 집과 가게를 잃은 최해갑과 식구들은, 과거 자신의 고향인 섬이 국유지가 되어 기업에 팔리고, 호텔이 들어서 주민들이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남해의 고향 섬으로 돌아간다. 최해갑은 그곳에서 혈혈단신으로 섬을 팔아 돈을 벌려는 국가와 사업자들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섬 개발은 법적으로 적법한 사업이었다. 섬 개발은 국가와 거대 기업이 진행하고 있던 일이다. 그들은 공권력과 자본과 용역들의 힘으로 사업을 밀어붙인다. 아무도 맞설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건 아무리 잘못됐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설사 그 실체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자본가와 정치인의 사업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최해갑은 아무도 이야기 하려하지 않은 일,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에 나선다. 할 말은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이 사회의 꼴통이 된다.


  


멍청이가, 꼴통이 되면 외톨이가 될까? 최해갑의 이웃들, 가족들이 끝까지 그와 함께하며 기뻐한 것은 왜였을까. 최해갑의 아내와 자녀들은 언제나 그와 함께 했다. 그리고 최해갑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살기도 했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 싸움에 선다. 응원과 함께 하는 사람들,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마음, 도움의 손길 등. 최해갑이 마지막까지 멍청이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응원한 아내와 자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낮은 곳으로, 더 정직한 삶으로, 더 본질적인 것으로, 십자가로 살아가려하는, 정말 세상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우리가 이 길을 걷기 위해선 그래서 함께 걷는 동행자들이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뭐, 결국 최해갑과 아내 안봉희(오연수 역)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입장이 되어서 남쪽으로 튀었다. 멍청한 사람들을 위한 나라를 찾으러. 이런 멍청이들. 우리도 그런 멍청이가 되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부를 위해 살아가야함에 의문을 던지고, 합법적이라는 이유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빼앗는 시대에 의문을 던지고, 먹고 살길이 막히더라도 제대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그래도 함께 하는 공동체 지체들이 있기에 겁을 내지 말고서. 남쪽으로 튀며 살아보자. 어딘가, 언젠가 멍청이들을 위한 나라가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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