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대처하는 법, 그것은 악플에 리플을 하지 않는 것이다. 철저한 무관심, 그것이 집요한 관심과 가학적 들춰냄을 무력하게만들고, 와해시켜 버린다. 일단 반응을 보이면 악플을 단 사람은 한 마리의 상처 입은 식량을 탐하는 하이에나와 같이 주변을 서성이다가 약점을 물어버리곤 놓치 않는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이었나. 사람은 하나의 식물과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물과 볕이 사라진 곳에 말라버린 생명이 남겨진 것 처럼, 관심을 받지 못한 인간은 결국 그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고독한 그림자에 가리워지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선한 의지로, 혹은 선한 의지가 자신에게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한다. 너, 어떠니. 잘 지내니. 그건 왜그래. 그건 어떠니. 이것은 누군가에겐 한 줄기의 빛이요, 한 줌의 소금이 된다.

그러나 생명을 향한 선한 의지임에도, 때론 그 의지가 의도와는 다르게 될 때가 있지는 않은가. 타인에 대해 알고 싶은 나의 의지가 충분하여도 누군가의 모습을 다 알 수가 있는가. 다 이해할 수 있는가. 타인의 마음과 삶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약간의 관심만으로 충분한가. 그것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할 요건을 알아내는 것과는 다른 문제가 된다. 목 마름을 위해 필요한 것을 아는 것과 목 마름을 채우는 것의 차이다. 너를 더 알고 싶다. 너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이렇게 말할 때, 상대가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응당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의 슬픔을 어찌 다 말 하리오, 나 조차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을 어찌 표현하리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슬픔을 내게도 나눠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너 어쩌려고 그러하느냐. 나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소. 그래서 그 이런 일은 무엇이고 저런 일은 무엇이냐. 그건 은밀한 것이고, 아무에게나 알릴 수는 없는 일이오. 그렇다면 너는 참말로 잘 못하고 있다. 왜요. 너는 우리를 이해시키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게 시간이나 죽이고 있지 않느냐. 나는 설명할 수 없단 말이오. 이 고통을 다 말할 수 없단 말이오.

때로는 무관심이 필요한 것도 사람이라. 소금 물을 만들기 위해 물에 소금을 넣고, 소금을 얻기 위해 다시 볕을 쬐는 것처럼 되지는 않는 것이 사람이라. 관심과 무관심의 경계를 만드는 것이 지혜의 한 길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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