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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그런 친구 있지 않았어?

by GrapeVine.Kim 2017. 8. 31.

그런 친구 있지 않았어?


눈을 감고 샤워를 하거나, 예능 방송을 보면서 배꼽 잡고 웃거나, 식당에서 고기 한점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너무 질겨서 삼키지 못할 타이밍에 가끔 생각나는 사람말이야. 생각이 나면 가슴 한 편이 바늘로 찔리는 것 같기도하고 손가락 끝에 튀어나온 손톱으로 닿을랑 말랑 간지렵히는 것 같기도한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말이야.


중학교 2학년 때 였나. 아니, 1학년 때 였나.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초코 다이제도, 그냥 생 다이제도, 비틀즈였나 그런 사탕도 나눠먹었었지.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먼저 누구한테 다가가기가 어려웠는데, 그 친구는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어. 쉬는 시간이 되면 내 자리 근처로 오거나 다른 친구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지. 이상하게도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하기도 했었지. 화장실은 사실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긴 하네. 그래도 그 친구가 먼저 다가와줘서 난 금새 그 친구랑 친해질 수 있었어.


그러다 그 친구의 집을 알게 되었지. 그 친구는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었어. 놀다보면 반드시 몇 시까진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 친구는 그이야기를 하는 것에 개의치 않아했어. 그냥 나 여기 살아. 너는 어디 사니? 이렇게 사는 곳을 쉽게 말하고 물어보는 친구였어. 나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지.


가끔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어. 뭐 대단하지도 않고, 좋을 것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와서 편하게 놀다가 가곤 했던것 같아.


그러다 어느날, 친구가 나를 모른척하기 시작했어. 안녕. 하고 인사를하면 오~ 라거나 여~ 라는 추임새를 붙여줘야하는데 한번 스윽-보고 지나가버리는 녀석의 반응에 난 크게 당황했지. 그 때부터 그 친구는 쉬는 시간에 내 자리에 오지도, 다른 친구의 자리로 날 데려가지도 않았어.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았고. 과자가 있으면 혼자 먹었지. 쉬는 시간에 과자를 못 얻어먹는건 상관 없는데, 그 때는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어. 이유를 물어봤어야했는데, 차가운 그 녀석의 얼굴 표정 앞에서 이유를 물어볼 용기가 잘 나지 않았지. 이가 하나 빠진 것 같고, 손가락 하나가 부러진 것 같은 허전함과 불안감에 집에 혼자 있을 때 눈물이 나기도 했어.


한 3개월쯤 지났으려나? 그 친구가 나에게 버디 버디 메시지를 보내왔지. ‘미안해, 네가 너무 부러웠어’라는 짧은 메시지에 나는 바보같이 ‘괜찮아’라는 답장을 보내버리고 말았어.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메시지로 짧게 미안해라고밖에 말하지 않은 그 친구에게 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간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말해야했는데 난 왜인지 그러지 못했어. 뭐가 부러웠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어. 나도 참 생각이 없던거지. 그냥 그 때는 신이 났어. 아, 내가 이 친구랑 다음날부터 다시 인사를 할 수 있구나, 과자를 같이 나눠먹을 수 있구나하는 기대감에 너무 신이 났어.


다음날부터 다시 그 친구와 반갑게 인사를 했어. 우린 다시 친구가 될 거라고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내 안에 자란 괴로움과 슬픔은 뿌리가 남아있었고, 그 친구의 질투심도 여전히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지. 금새 관계는 냉랭한 관계로 돌아서버렸고, 이젠 나도 그 친구를 보고 싶지 않았어.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그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 되었어. 1학기가 끝나가기 전, 그 친구는 교단 앞에 서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어.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어. 이제 이사를 갈 것 같아. 잘 지내. 나는 그 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 때 알았어. 그러나 그 때조차도 나는 그 친구에게 다시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어.


친구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나온날에 나는 그 친구 주변을 서성였어. 미안하다고, 잘 지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애 주변에서 그 애한테까지 다섯 발자국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거리가 너무 멀었어. 입도 무거워서 떨어지지 않았어. 마지막 종소리가 울릴 때 까지 나는 그 다섯 걸음을 좁히지 못했어.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데, 왠지 뒤를 돌아보고 싶어졌어. 뒤에는 그 친구가 혼자 터벅 터벅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어. 속으로 어떻게하지, 말할까, 이제와서 뭘이라는 생각이 뒤죽박죽 떠올랐어.


그 애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그 미안하다는 말을 15년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고 있지. 그 때, 말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됐는데, 그 말 한마디면 15년이 조금 더 즐거웠을텐데.


만약 그 친구를 어딘가에서 만나면 먼저 다가가서 말하고 싶어.


“잘 지냈니? 나는 가끔 너를 생각했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앞으로의 너의 삶이 행복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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