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친구 있지 않았어?
눈을 감고 샤워를 하거나, 예능 방송을 보면서 배꼽 잡고 웃거나, 식당에서 고기 한점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너무 질겨서 삼키지 못할 타이밍에 가끔 생각나는 사람말이야. 생각이 나면 가슴 한 편이 바늘로 찔리는 것 같기도하고 손가락 끝에 튀어나온 손톱으로 닿을랑 말랑 간지렵히는 것 같기도한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말이야.
중학교 2학년 때 였나. 아니, 1학년 때 였나.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초코 다이제도, 그냥 생 다이제도, 비틀즈였나 그런 사탕도 나눠먹었었지.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먼저 누구한테 다가가기가 어려웠는데, 그 친구는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어. 쉬는 시간이 되면 내 자리 근처로 오거나 다른 친구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지. 이상하게도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하기도 했었지. 화장실은 사실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긴 하네. 그래도 그 친구가 먼저 다가와줘서 난 금새 그 친구랑 친해질 수 있었어.
그러다 그 친구의 집을 알게 되었지. 그 친구는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었어. 놀다보면 반드시 몇 시까진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 친구는 그이야기를 하는 것에 개의치 않아했어. 그냥 나 여기 살아. 너는 어디 사니? 이렇게 사는 곳을 쉽게 말하고 물어보는 친구였어. 나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지.
가끔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어. 뭐 대단하지도 않고, 좋을 것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와서 편하게 놀다가 가곤 했던것 같아.
그러다 어느날, 친구가 나를 모른척하기 시작했어. 안녕. 하고 인사를하면 오~ 라거나 여~ 라는 추임새를 붙여줘야하는데 한번 스윽-보고 지나가버리는 녀석의 반응에 난 크게 당황했지. 그 때부터 그 친구는 쉬는 시간에 내 자리에 오지도, 다른 친구의 자리로 날 데려가지도 않았어.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았고. 과자가 있으면 혼자 먹었지. 쉬는 시간에 과자를 못 얻어먹는건 상관 없는데, 그 때는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어. 이유를 물어봤어야했는데, 차가운 그 녀석의 얼굴 표정 앞에서 이유를 물어볼 용기가 잘 나지 않았지. 이가 하나 빠진 것 같고, 손가락 하나가 부러진 것 같은 허전함과 불안감에 집에 혼자 있을 때 눈물이 나기도 했어.
한 3개월쯤 지났으려나? 그 친구가 나에게 버디 버디 메시지를 보내왔지. ‘미안해, 네가 너무 부러웠어’라는 짧은 메시지에 나는 바보같이 ‘괜찮아’라는 답장을 보내버리고 말았어.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메시지로 짧게 미안해라고밖에 말하지 않은 그 친구에게 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간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말해야했는데 난 왜인지 그러지 못했어. 뭐가 부러웠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어. 나도 참 생각이 없던거지. 그냥 그 때는 신이 났어. 아, 내가 이 친구랑 다음날부터 다시 인사를 할 수 있구나, 과자를 같이 나눠먹을 수 있구나하는 기대감에 너무 신이 났어.
다음날부터 다시 그 친구와 반갑게 인사를 했어. 우린 다시 친구가 될 거라고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내 안에 자란 괴로움과 슬픔은 뿌리가 남아있었고, 그 친구의 질투심도 여전히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지. 금새 관계는 냉랭한 관계로 돌아서버렸고, 이젠 나도 그 친구를 보고 싶지 않았어.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그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 되었어. 1학기가 끝나가기 전, 그 친구는 교단 앞에 서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어.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어. 이제 이사를 갈 것 같아. 잘 지내. 나는 그 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 때 알았어. 그러나 그 때조차도 나는 그 친구에게 다시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어.
친구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나온날에 나는 그 친구 주변을 서성였어. 미안하다고, 잘 지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애 주변에서 그 애한테까지 다섯 발자국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거리가 너무 멀었어. 입도 무거워서 떨어지지 않았어. 마지막 종소리가 울릴 때 까지 나는 그 다섯 걸음을 좁히지 못했어.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데, 왠지 뒤를 돌아보고 싶어졌어. 뒤에는 그 친구가 혼자 터벅 터벅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어. 속으로 어떻게하지, 말할까, 이제와서 뭘이라는 생각이 뒤죽박죽 떠올랐어.
그 애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그 미안하다는 말을 15년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고 있지. 그 때, 말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됐는데, 그 말 한마디면 15년이 조금 더 즐거웠을텐데.
만약 그 친구를 어딘가에서 만나면 먼저 다가가서 말하고 싶어.
“잘 지냈니? 나는 가끔 너를 생각했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앞으로의 너의 삶이 행복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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