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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무화과

by GrapeVine.Kim 2017. 8. 3.
 어머님이 태어나 자랐던 전라남도 무안의 하늘에는 구름이 없었다. 파란색 하늘 빛은 태양에서 덮쳐오는 열기에 익었는지 누런 빛깔을 품었다. 9월 정도 되었을까. 가을이 간다는 기별만 넣은채 아직 오지 않았고, 여름은 언제 맛이 갈지 모른채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무안 집은 가로로 긴 시골집이었다. 중앙에는 마루가 있었고, 마루의 양 옆으로 사랑방과 창고방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루 뒤에는 안방이 있었는데, 더위 때문이었는지 구멍나고 삐죽 빼죽 문살 밖으로 튀어나온 창호지로 덮인 양쪽 여닫이 문이 항상 활짝 열려있었다. 안방 안쪽으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바깥으로 통하는 작은 홑문이 있었다. 홑문도 마찬가지로 열려있기 부지기수였다.

 몇 살이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런 어린 시절이었다. 무안 시골집은 흙냄새가 났고, 마루는 걸을 때마다 발 밑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갈라진 나무결이 다 보이던 처마 아래 제비가 집을 지어놨다. 제 새끼를 위해 하루 종일 애쓰는 제비가 귀엽기보다 무서웠다. 지금에서야 즐길만한 것이 되었지만, 그때는 썩 불쾌한 것들 뿐이었다. 마당을 건너 경운기가 세워진 대문 옆을 지나면 바로 차가 다니는 흙길 도로가, 그 너머에는 개똥 참외며, 문드러지고 있는 수박 들이 널부러진 밭들 뿐이었다. 참 볼 것도 없고, 놀 것도 없는 시골이 뭐가 좋다는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더위로 지쳐 집으로 돌아가보니, 마루 안에 안방이, 안방 안에 홑문이, 홑문 안에 나무 한 구루가 보였다. 고요한 시골에서 유독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삐걱 뻐걱, 툭 툭 툭- 재빠르게 방으로 향해 들어가 홑문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나무는 내 키의 스무배쯤 되어보였고, 초록과 연두가 큰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바람결에 나뭇잎사귀 스치는 소리가 났고, 겨우 마음이 편해졌다.

"아따, 무화과 먹고 잡냐?"

 시골집을 지키던 외숙모가 마루를 지나다 나를 보고 물었다.

"무화가가 뭐에요?"

"앞에 있는게 무화과 나무여-"

 나무 가지 끝에 주먹만한 초록 열매가 달려있었다.

"저거 맛있어요?"

"꿀맛이제- 쪼메 있어봐라"

 외숙모는 바구니 가득 무화과를 가져오셨다. 그 과일은 주먹만한 크기에 초록색에 자주색이 섞여있었다. 사과랑 배, 수박, 참외, 기껏해야 귤이나 낑깡 따위가 과일의 끝인줄 알았는데, 생전 처음보는 과수였다. 외숙모는 시커먼 녹이 군데 군데 슬어있던 빨간 손잡이의 과도로 무화과의 절반을 쪼갰다. 분홍빛 속살에 이상한 씨앗 같은 것이 촘촘히 박혀있는 그 과일은 결코 먹음직 스럽지 않았다.

"으...으아...이거 왜 이래요?"

"뭐시 어떤다고. 무우 봐라."

 주저 주저 하다가, 겨우 한 입 배어무니 바나나 같은 부드러운 식감에, 달콤한 맛, 톡톡 무언가 씹히는 것이 일품이었다.

"우와! 진짜 맛있어요!"

 한 바구니의 무화과를 먹어치운 나는 며칠동안이나 외숙모에게 무화과를 달라고 떼를 썼다. 외숙모는 잘 먹는다고 좋아하시면서 무화과를 준비해주셨다. 무화과 나무는 무안 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안되는 좋은 기억 중 하나다.

 그 때는 무화과가 귀한 음식이었는지 몰랐다. 서울에 돌아와서는 무화과를 잘 본적이 없다. 잘 팔지 않기도 하고, 가끔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부모님이 가격이 비싸 잘 사주지 않으셨다. 애초에 무화과는 다른 과일보다 일찍 상하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잘 보기 어렵다고 한다. 유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서울에서 마른 무화과 정도만 볼 수 있었다고.

 길 가다 작은 빵집에 들어갔다. 빵 집에서는 특이하게 무화과 식빵을 팔고 있었다. 한 입 크게 베어무니  마른 무화과에서 꾸덕 꾸덕한 꿀이 나온다. 시골에서는 그렇게 흔했던 생 무화과 맛이 그리워 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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