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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힘과 선

by GrapeVine.Kim 2017. 8. 3.
힘과 선

 노숙인 요양 시설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하던 때의 일이다. 시설에는 많은 노숙인들이 지내고 있었는데, 우리 팀이 담당하고 있는 노숙인만 200여명이 넘었다. 정부에서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시설 생활자들과 한 달에 한 번 이상 상담을 진행하도록 정해두었다. 쉽지 않았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들에 대해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기구한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길거리에서 헤매고, 죽을뻔한 위기를 겪으며 한참을 돌아 돌아 제 자리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에게도 평범함이란 없었다.

 노숙인들은 가족이 없을 것이라고 으레 생각하고 있었다.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상황은 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도 없이, 형제도 없이, 아내(성인 남성을 위한 시설이었다.)나 자식이 없어 도움의 손길을 바라지 못할 터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두 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가끔 휴가를 나가면(한 달에 한번 휴가를 나갈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아내 얼굴을 보러 가거나 자식들을 만나러 간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형이나 누나, 동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면회를 오기도 했다. 지병과 고령으로 인해 돌아가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기초연금이나 장애연금 등을 사용하지 않아 통장에 꽤 고액이 모여있는 분들도 가끔 있었다. 사망자가 발생하면 무연고자가 아니고서야 사망 사실을 알리고 시신 인수, 유품과 재산을 전달하기 위해 유가족에게 연락을 한다. 어떤 이들은 면회 한번을 오지 않다가 남겨진 재산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시설에 방문한다. 얼른 돈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돈을 찾아가기도 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노숙인의 보호자가 얄밉고 악해보였다.

 상담을 하면서 가족이 보고 싶다고, 아내와 자식이 자신을 버렸다고 흐느끼며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들썩거리는 어깨와 쓰읍- 쓰읍- 코 넘기는 소리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공감해주고 어깨를 다독이는 것 정도 밖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밖에서 살고 있다는 그의 가족들이 더 야속하게 느껴졌었다.

 속상한 마음에 이럴 수가 있냐고 동료 복지사에게 하소연을 했다. 동료 복지사는 이야기를 듣더니.

“아- 그 사람이요? 지금에야 나이 먹고 힘 빠져서 그렇지, 옛날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매일 술독에 빠져 살고, 아내하고 자식한테 폭력을 휘두르며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조금 더 건강했을 때는 우리도 저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욕하고, 싸우고, 사람들 때리고…에휴…하물며 그 가족들은…어땠을지…”

 상담할 때 보였던 연약한 모습과 검붉은 얼굴로 물건을 깨부수는 모습이 잘 겹쳐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가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 그는 아내와 자식의 몸을 학대하고, 그 마음을 푸르댕댕하게 물들이는 것으로 모자라 갈기 갈기 찢어놓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내와 자식이 그를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나는 쉬이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연약했지만, 누군가에게 악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 곳에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 혹은 시설에 있는 노숙인을 집으로 데려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노숙인들은 충분히 약한 사람들이었지만, 약함이 그들의 선함을 말해주거나 그 가족들의 악함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았다. 그 곳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힘이 있음과 없음을 곧 선함과 악함으로 연결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다. 어렵다. 사람의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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