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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이유

by GrapeVine.Kim 2017. 7. 7.
아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임을 밝혀 둡니다.

#1
자정으로부터 1 시간 정도가 흘렀다. 잠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내일을 생각해선 어서 자야만 한다. 아뿔사, 갑자기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갈까 말까 고민이 들었다. 자리 잡고 누웠을 때 요기가 들면 참 난감하다. 그 짧은 거리를 가는 것이 왜이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침대 바깥 쪽에 남편이 누워있다. 남편은 날이 더운지 웃통을 벗고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얼른 자. 늦었잖아."

"으...응...잘게..."

"어허. 핸드폰 내려놓고, 같이 자자.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침대 바깥 쪽에 누워 있는 남편의 몸을 조심스레 넘어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럴 땐 내가 침대 바깥 쪽에서 자고 싶은데, 바닥에 떨어져도 자신이 떨어져야 하지 않겠냐는 남편의 고집으로 안쪽이 내 자리가 되어버렸다.

잘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집에 모든 불을 꺼둔 상태였다. 거실 불을 켤까 하다가 방에 켜둔 무드 등의 불 빛이 비치기도 했고, 괜한 전기 낭비인 것 같아서 거실 등 스위치에 손을 데지 않았다. 환기를 위해 조금 열어둔 화장실 문 옆에 손을 뻗어 전등을 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1분 정도가 흘렀을까. 밖으로 나오니 화장실 안을 비추던 주광색 LED 빛에 적응했던 눈이 어둠에 순응을 못하는 듯 했다. 스위치를 눌러 화장실 전구를 끄고 어둠을 바라보고 아직은 깨어있을 남편을 불렀다.

"여보~"

남편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핸드폰에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자 남편이 얄미워졌다. 어둠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갔다. 무드 등의 희미한 주홍 불빛이 방 안을 다 비추고 있었으나 침대 위는 비어있었다. 당연히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한 남편이 자리에 없어서 남편을 다시 찾았다.

"여보?"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은 새벽 1시였다. 남편은 그새 나가기라도 한걸까?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시간을 비운 것은 1분 남짓. 남편은 옷도 제대로 안 입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남편의 핸드폰이 화면이 켜진 상태로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또 게임을 하고 있었나보다. 혹시 베란다에 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눈이 암 적응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인지 사물이 분간되었다. 궂이 전등을 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작은 방도, 부엌 옆에 있는 베란다에도 불 빛은 없었다. 남편이 불도 안켜고 뭘 하고 있는걸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베란다 문은 닫혀 있었다. 베란다 문을 여니 열어둔 외창에서 들어오는 더운 공기와 습기로 불쾌함이 몰려왔다. 잡동사니와 세탁기, 쓰레기 등을 모아둔 베란다에 남편은 당연히 없었다. 다시 남편을 불렀다.

"여보, 어디있어?"

여전히 대답이 없다. 이상했다. 혹시나 싶어 작은 방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문득 불이 꺼진채 열려 있는 작은 방 문이 괘이하게 보였다. 꺼림칙한 마음에 거실 등을 켰다. LED 등불은 스위치를 넣자마다 빛을 뿜었다. 한 발짜국, 방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넓은 집도 아니었기에 한눈에 어디있는지 보였어야 했다.

그 때였다. 열린 방문의 뒷 편에서 검은 형체가 튀어나와 나에게 다가왔다. 문의 그림자에 가려진 형체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순간 과거의 일이 떠올라버렸다.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 자정이 다 되어서 귀가하던 중이었다. 집으로 가는 골목 길은 캄캄했고 늦은 시간이어서 사람이 없었다. 인적이 드물었는데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느사이엔가 앞에 어떤 사내가 걷고 있었다. 그 사내는 걸음 걸이가 느린듯 천천히 움직였다. 위화감이 들었으나 시간이 늦었기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내가 그 사내를 지나칠 즈음, 검은 형체가 내 핸드백을 잡아당겼다. 놀란 나머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사내의 힘이 너무 쌨다.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리가 닿았는지 멀리 불이 켜진 작은 슈퍼마켓에서 아저씨 한분이 나왔다. 사내는 지켜보는 이가 있음을 깨달았는지 백에서 손을 놓고 거리를 두었다. 나는 두려움에 슈퍼마켓으로 달음박질쳤다. 슈퍼 아저씨는 멀뚱히 바라만 볼 뿐이었지만 없는 것 보단 나았다. 달리다 뒤를 돌아봤다. 그 사내는 도망치지 않았다. 나를 지그시 노려보고 있었다. 소름이 목을 휘두르며 몸으로 내려왔다. 슈퍼마켓 아저씨는 늦게나마 상황을 인지했는지 집에 까지 날 데려다 주셨다. 집에 도착하니 다리에 힘이 풀리고 팔이 떨려왔다. 그 와중에 손가락이 아렸다. 백에는 손톱자국들이 여럿 박혀있었다. 가방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나도 모르게 손톱으로 가방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손톱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시에 들었던 공포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다시금 떠오르려했다.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악!"



#2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핸드폰을 꼼지락 거리고 있으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방 벽 한구석에 달린 에어컨에서 찬바람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몸의 왼쪽에선 에어컨 바람이, 오른쪽에선 아내의 체온이 느껴졌다. 기분 좋은 온도였다. 그러다가 아내가 화장실에 갔다. 옆자리에 누워있던 아내의 온기가 없으니 허전했다. 더워서 웃통도 벗고 있었는데, 에어컨 바람만 쐬자니 추운느낌이 들었다. 화장실 앞에 가서 아내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그냥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뭘.). 화장실 앞에 가 아내가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 뒤에 있는 작은 공간에 숨었다. 조금 기다리니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

"...."

"여보~?"

"..."

"여보...?"

"..."

조금 뒤에 거실 등이 켜진다. 아내가 작은 방으로 들어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순간적으로 그림자에서 벗어나 아내의 뒤에서 말했다.

"여기 있다."

"악!"




#3
아내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그것이 우는 것임을 깨달았다. 당혹감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그래 여보...미안해..."

"예전에 소매치기 당할뻔한 기억이 났단 말이야! 무서웠단 말이야! 흐아...흐아..."

아내의 눈물이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내에게 과거에 그런 기억이 있음이 생각났다. 아내가 느꼈을 공포감에 미안함과 괴로움, 나를 향한 어리석음에 대한 질타가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울음을 터트린 아내가 진정될 때 까지 앉아 주는 것 뿐이었다.

"미안해...내가 잘못했어...내가 못났어..."

안방 침대 위로 아내를 데려왔지만, 아내가 진정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걸렸다. 나는 반복적으로 용서를 구할 뿐이었다. 나는 다시는 이런 장난을 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이 글의 제목은...
'남편이 아내에게 등짝 스매쉬를 당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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