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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피자와 과자

by GrapeVine.Kim 2017. 7. 5.

피자와 과자



 이태리식 피자는 오븐이 아닌 화덕에서 구워낸다. 보통 피자를 굽는 화덕의 온도는 400도에서 450도이다. 문이 열린 화덕 앞에 서면 보통 집에서 느낄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새어 나와 팔과 얼굴 등을 화끈거리게 한다. 400도에서 450도에 들어간 피자 반죽은 1분 30초 정도면 다 익어버린다. 보통 미국식 피자가 구워지는데 10분 정도가 소요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꽤 빠른 속도로 구워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태리식 피자에는 미국식 피자처럼 많은 토핑이 올라갈 수 없다. 미국식 피자는 풍성하게 토핑을 올려도 익을 시간이 충분하지만, 이태리식 피자는 1분 30초라는 시간이 많은 토핑을 익히기에는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피자를 굽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10초의 차이가 피자 도우를 태울 수도, 덜 익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태리 피자는 인스턴트 중의 인스턴트라고 할 수도 있겠다.



 피자를 굽는 화덕에서 과자를 굽기도 한다. 그리시니라는 이태리식 막대빵은 흡사 과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식감을 가지고 있다. 얕은 불에 오랫동안 구워내, 반죽 안에 있던 수분이 천천히 날아가기 때문에 도우가 바삭하게 변화한다. 이 과자는 피자와는 다르게 화덕 온도를 150도에서 200도 정도로 맞춘다. 저온에서 굽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짧게는 30분에서 불 온도에 따라 1시간 정도가 소요되기도 한다.



 피자는 1분 30초, 과자는 1시간이 필요하다. 꽤나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피자를 반복해서 만들다 보면 1분 30초라는 시간에 음식이 완성되는 것이 익숙해진다. 금새 풋내 나는 밀가루 반죽이 구수한 음식으로 바뀐다. 그러다 과자를 굽게 되면 1시간이 꽤나 지루하게 느껴지게 된다. 과자 몇 조각을 만드는데 1시간이나 필요하다니, 그 시간이면 피자를 몇 판이나 구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과자는 수지가 참 안 맞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조급한 마음에 화덕 불 온도를 조금 높여본다. 화덕 안에서 하얀색에서 노릇한 색으로 변해가고 있던 반죽들이 금새 갈색 기운을 띈다. 1시간이 걸릴 예정이었던 과자들이 15분도 안되어 완성이 된다. 평소보다 조금 어두 침침한 색이 되었지만 그럴듯해 보인다. 과자 한 조각을 손으로 들어 입 앞으로 가져온다. 뜨거운 기운이 느껴져 입으로 바람을 부니 김이 좀 빠지는 듯 하다. 적당히 온도가 내려갔다 싶어서 따뜻한 과자를 한입 베어본다. 물컹. 바삭해야 할 과자에서 물컹한 식감이 느껴진다. 급하게 구워져서 반죽 안에 있던 수분이 미처 다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다. 조급하게 만들었더니 과자도, 빵도 아닌 요상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어떤 것이 만들어져야 할 때에는 적절한 온도와 시간이 필요하다. 온도가 낮거나 높아도, 시간이 더해져도 덜해져도 미완이고 헛수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껴왔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혼자 놀기를 좋아했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했다. 시간이 지나 대학교에 다니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피할 수 없게 되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았지만, 관계는 혼자서 습득하거나 책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잘 되지 않고 실패해오고 있다(물론 어릴 때부터 교우관계가 좋았다고 해도 관계에 있어서 실패할 수 있겠지만). 그런 와중에 인간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여기 저기에서 들리는 것도 참 많다. 친구가 무언지, 우정이 무언지, 맺고 끊을 때가 언제인지, 어디까지 책임을 지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내어줘야 하는지. 여러 사람들이 각자가 깨달은 바를 풀어놓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안에 인간관계에 대한 추상적인 모습이 만들어진다. 인간관계는 이러해야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인간관계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으면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좋은 가이드 라인이 되기도 한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좋은 지침이 된다. 그러나 때론 관념이 기대를 만든다. 우리 관계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기대는 곧 타인에 대해, 나에 대해 실망감을 품게 한다. 그 사람은 나와의 관계에서 왜 그것 밖에 못하는 건지, 난 또 왜 이것 밖에 안 되는 건지 생각하면 곧 열이 뻗친다. 그럼 그 관계는 조만간 파탄이 날 것이다.



 피자와 과자를 만들면서 인간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반죽을 피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로 짧은 시간이, 과자로 만들기 위해선 낮은 온도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도, 연인이 되기 위해서도,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등 인간 관계마다 필요한 열기와 시간이 다른 것은 아닐까. 반죽이 처음부터 피자나 과자가 아니었던 것처럼, 누군가와의 날 것의 관계가 바로 우정 관계나 부모 관계 같은 특별한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반죽(날 것의 관계)은 여러 가지 노력이 가해져 결과물(특별한 관계)이 된다. 관계에 어떠한 기준을 세워두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맺고자 하는 관계에 맞는 열기와 시간을 들여서 그 관계를 조금씩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들인 노력과 상대방이 들인 노력이 합쳐져 그 관계는 피자가 될 수도, 과자가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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