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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동갑내기 집

by GrapeVine.Kim 2017. 6. 11.

나는 1987년에 태어났다. 우리 집은 1987년에 지어졌다. 올해 31살이 된 나와 우리 집은 동갑내기다. 사람이 태어나서 청년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노인이 된다. 청년의 시기에는 비 바람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나이가 들면 점점 비에 젖는 것조차 위험하게 된다. 집도 막 지어지고선 튼튼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점점 노쇠해진다. 여기저기가 부식이 되고 삭아버린다. 튼튼한 쇠붙이도 아이 손에서 바스러지게 만드는 것이 세월의 힘이다. 옛날에는 집도 100년은 너끈히 간다고 했는데, 현대로 들어서선 사람만큼 사는 집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재개발로 부숴지는 집도 많고, 그냥 혼자 쓰러지는 집도 있다. 나와 같은 나이의 집에 사는 것은 꾀나 부담이 되는 일이다. 점 점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지는데, 보살펴야 하는 식구가 늘어난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집에 살면서 여기저기 손본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샤시도 새로 하고, 전등도 싹 갈고, 바닥도 한번 뜯고, 스페너로 조이고, 갈아주고어쩌면 내 몸보다 더 보살피며 산 건 아닐까도 싶다. 그러다 보니 정도 들고, 애착도 생겼다. 역시 땀이 들어가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듯 싶다.

그러나 아프다는데 어찌 좋게만 여겨질까. “여보, 이거 왜 이럴까……”, “글쎄……고장인가……”. 세면대에서 물이 내려간다던 지, 스위치를 누르면 빛이 나온다던 지 하는 일상적이고 하찮은 일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위대한 발견인지는 그것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될 때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고장이 일상과 평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의 소중함이 찰나의 불편함보다 커 보이긴 힘들다. 불편은 걱정이 되고, 걱정은 불안이 된다. 불안은 우울이 되고, 우울은 괴로움이 된다. 오래된 집에서 산다는 것이 불시에 불안감으로 찾아올 때가 많았다. “또 고장 나면 어쩌지이거 안되면 어쩌지…”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에 이런 불편감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삶의 만족도가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된다.

 함께 사는 아내는 우리 집이 좋다고 한다. 너무 감사한 곳이라고 한다. 하긴 그렇다. 나도 처음 집을 구했을 때,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간사함이란……나야말로 간사함의 산 증인이다.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오래된 집이어서 불편하지는 않아?” 아내는 답했다. “고장 나면 또 고치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하긴 그랬다. 사람이 젊어서 건강하고 나이가 들어서 건강하지 않은가? 젊어서도 아프고,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었다. 집도 마찬가지다. 새로 지은 신축 건물이 고장 나기도 하고, 보수가 필요하기도 한다. 반대로 오래되어도 튼튼한 집도 있다. 살다 보면 그냥 아플 수 있고, 고장 날 수 있다. 아프면 다른 방법이 있는가? 병원 가서 치료해야 한다. 고장 나면 고치면 된다. 삶에는 행복과 괴로움이 모두 있듯, 건강함과 아픔이 같이 있다. 어디서 살던, 어떤 때이건 그렇다. 그럼 안 좋아질 것을 걱정하며 살기보다 좋을 때를 즐기고, 안 좋을 때는 좋게 만들려고 노력하면 된다. 아내는 그런 면에서 지혜롭다. 내가 아내를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안 좋아질 것을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삶을 살면 행복할 수가 없다. 그냥 지금을 즐기고, ‘고장 나면 고치면 되지의 정신으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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