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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노트

170526 묵상노트

by GrapeVine.Kim 2017. 5. 26.

170526 묵상노트
디모데전서 5:1~8

나이가 많은 이를 나무라지 말고, 아버지를 대하듯이 권면하십시오. 젋은 남자는 형제를 대하듯이 권면하십시오. 나이가 많은 여자는 어머니를 대하듯이 권면하고, 젊은 여자는 자매를 대하듯이, 오로지 순결한 마음으로 권면하십시오.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십시오. 어떤 과부에게 자녀들이나 손자들이 있으면, 그들은 먼저 자기네 가족에게 종교상의 의무를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어버이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일입니다. 참 과부로서 의지할 데가 없는 이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간구와 기도를 드립니다. 향락에 빠져서 사는 과부는, 살아 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런 것을 명령하여, 그들이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척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그는 벌써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바울은 공동체의 지체를 대함에 있어서 가족을 대함과 같이 대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공동체를 서로 가족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가족인 것이다. 아버지를 공경하듯, 어머니를 존중하듯, 형제와 자매에게 애정을 갖듯 공동체의 구성원을 대하도록 요구되는 우리는, 말 그대로 서로 가족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은 가장 기본적으로 서로 보호한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할 때 타인에게는 도움을 줄 의무가 없지만 가족에게는 그를 보살필 의무가 주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의 지체가 된 우리는 가족에게 요구되듯이 서로를 향한 보호와 책임을 질 의무가 생긴다. 그러나 이는 기계적이고 율법적인 보호와 책임은 아니다. 제대로 된 가족은 서로를 향한 애정과 연민을 품는다. 정서적으로 차단된 가족은 혈연 관계에도 불구하고 가족으로 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책임과 보호, 그리고 유대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가족이 되어간다.

나는 지금 소속된 교회에서 ‘가족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서로 가족이 되기 위한 선언적 의미를 담아 공동체의 지체들은 모임의 이름을 ‘가족’이라고 붙였다. 나와 너를 가족이라고 서로 정의한 순간 우리는 서로를 향한 보호와 책임의 의무, 그리고 정서적 유대감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시대의 깨어진 수많은 가정들과 같이 우리의 가족 관계도 금방 깨질 것이다. 서로를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형제와 자매처럼 대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노력해야할까.

애석하게도 내가 소속된 가족모임은 아직은 서로 어색하고 어떻게 책임져야하는지, 책임지고자 하는지 확신이 없는 상태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바심을 내지 않으려 조심하고자 하지만 걱정이 되긴한다. 애초에 가족이 서로 가족처럼 되어가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같이 밥을 먹고,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알고, 때론 투정을 받아주면 되는 것일까. 이런 것은 물론 도움이 된다. 서로를 향해 더 애정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언제 서로의 갈 길을 가게될지 모르지만 지금을 함께하는 ‘동행자 혹은 친구’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가 된 ‘가족’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때론 서로에게 이유가 없을 때가 있다. 왜?라는 질문에 ‘가족’이 대답이 될 때가 있다. 서로를 왜 책임지는지, 서로를 왜 사랑하는지 그 이유가 없이 ‘가족’이라는 대답으로 모든 이유가 충족되기도 한다. 서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간 우리가 서로 어떤 관계였는지로 도움을 결정할 필요 없이 ‘가족’이라는 대답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가족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척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그는 벌써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가족이기에 서로를 돌본다. 가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자 족쇄일까. 어찌되었든 바울은 우리에게 가족을 돌보라고 말한다.

교회에서 지내는데 있어서 어려울 때가 많다. 주로 관계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미운 사람도 있고, 불편한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고, 아쉬운 사람도 있다. 물론 함께해서 즐겁고 행복할 때도 있다. 사람 관계가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런 관계는 우리가 서로를 책임지고 돌보는데 있어서 그 근거가 되어선 안될 것이다.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는 바울의 말은 무서운 말이다. 가족 모임을 함에 있어서 내가 책임지고 돌볼 필요가 있는 사람은 없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나의 것을 내어주기를 노력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이 말씀은 내게 너무나 큰 고통이자 가시로 느껴진다. 교회를 공동체로, 또 가족으로 여기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향한 기대감과 일치되어 마음 속에서 하나의 다짐이 된다. 그러나 나의 혈연 가족들을 향한 책임과 돌봄의 말씀은 내게 괴로움이자 회피하고 싶은 말씀이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을 향한 분노와 절망, 상처로 관계의 벽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알콜 중독과 폭언, 폭력, 과도한 기대와 요구, 무관심, 무책임 등으로 기억되는 나의 아버지를 나는 아직도 용서를 하지 못한다. 못하겠다. 머리와 마음이 분리되는 용서의 기로에서 나는 나의 작음과 못남에 무릎 꿇고 비통해한다. 나는 지금 아버지가 어디에서 사는지 모른다. 알려면 알 수 있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아직은 그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혼자서 생활을 할 수 없는 건강상태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올까봐 두렵다. 그 땐,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돌보아야 하지만 내가 과연 돌볼 수 있을까. 매일 그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상상 속에서조차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나의 신앙이 진실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하는 문제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나를, 내 신앙을 알도록 준비해놓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나의 아버지를 도울 수 있다면, 어쩌면 나는 모든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는 공동체 지체를 더 쉽게 품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 나는 이렇게 나의 부끄러운 삶의 조각을 잠시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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