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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노트

170518 묵상노트

by GrapeVine.Kim 2017. 5. 18.

170518 묵상노트

디모데전서 1:1~11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 믿음 안에서 나의 참 아들이 된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그대에게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명령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입니다. 이 명령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은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나서 쓸데없는 토론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율법교사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입니다. 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 간음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사람을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그 밖에도,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훈에 배치되는 일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 건전한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복음을 선포할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 명령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복음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처럼 변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바울이 위와 같은 문장으로도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하는가. 안타깝게도 사랑하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들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는 것은 쉽지 않다.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인가우리의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기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수단에 대해 서로 논쟁하며 왈가왈부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사랑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와중에, 서로 다른 방법을 발견한 나머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때론 자신만의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다가 싸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바울은 이 것을 두고 쓸데없는 변론이라고 일갈한다. 사랑하고자 미워하는 꼴이다. 목적전치다.

그러나 나는 서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논쟁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사랑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갈지 논쟁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우리의 삶은 구체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삶의 형태가 다양하듯, 답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답을 찾는 방법 조차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 간음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사람을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그 밖에도,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훈에 배치되는 일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

 현대 개신교는 율법주의를 매우 부정적으로 여긴다. 그런 와중에도 고정되고 정형화된 신앙의 모습을 만들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앞에서 비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라는 거야? 신앙이 아니라는 거야?”, “믿음으로 인한 신앙이라면서?” 그렇게 이야기하며 나는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려는 시도로부터 숨었던 것 같다. “정해진 방법은 없어라고 이야기함은 곧 내 행동의 옳고 그름, 혹은 정당과 부당함을 판단할 기준을 없애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내 행동에 대해 무엇으로 사랑인가 아닌가를 고민할 것인가. 나는 이미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음을 내 양심은 안다.

 나는 말씀 앞에서 내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해,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고 있는지 하지 않는지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타인에 대해 비난하고 타인을 구분 짓는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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