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나날, 기록

헤어질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by GrapeVine.Kim 2017. 2. 14.

헤어질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고단하고 지치는 대학생시절, 도서관 한 켠에서 과제를 끝마친 새벽 1시, 답답한 마음에 올라간 옥상에서 캔 커피 하나로 서로를 격려했던 친구의 기억이 난다. 다른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던 힘든 고민을 털어놓고 울음을 쏟아냈던 친구의 기억도 난다. 서로를 다독이며 힘든 시절을 이겨낸 친구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삶의 무게를 이겨내기에도 버거워졌고, 서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을 겨를이 없다. 한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은 이제 나의 삶 속에서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지는 못한다.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은 좋은 이들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일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고, 몰상식한 직장 상사의 언행에 대해 함께 농담을 던지며 이겨냈던 이들이었다. 때론 일을 마치고 함께 맥주 한잔을 나누며 삶의 고단함을 견디어가는 동료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다른 곳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살아가며 이전에는 알지 못하였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쏟아야 하고, 호의를 베풀어야 하며, 나를 보여주어야 한다. 관계는 결국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결국 헤어져야할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이기도 하다.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많지 않다. 결국 많은 이들은 인생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이들일 수도 있다.


 언젠가부터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들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 것에 대해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헤어질 것이라면 처음부터 큰 노력을 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스스로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인간 관계에 대해 느끼는 허무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혼자서는 해결을 하지 못할 듯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며 돌아다녔다. 그 때 들었던 답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우리가 만나는 순간이 짧기에 그 짧은 순간을 더욱 소중히’라는 대답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미술의 형태 중 바니타스 미술이라는 것이 있다. 주로 해골 등이 등장하며 죽음을 소재로 사용한다. 바니타스 미술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을 기억하도록 한다. 바니타스라는 말은 라틴어로 허무를 뜻한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기에 지금의 삶이 허무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바니타스 미술에 관해 이렇게 해석한다. ‘이런 작품들의 목적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생각으로 그 소유자를 우울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경험의 구체적인 면에서 결함을 찾아낼 용기를 주고, 동시에 사랑, 선, 신실, 겸손, 친절 등의 미덕에 좀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질 자유를 주었다.’ 우리가 언젠가 죽을 것이기에 지금 더욱 의미 있게 살아야함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기억한다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준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을 생각해보면, 헤어질 것을 기억하기에 지금의 만남을 소중히 해야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만남에 있어서 헤어짐을 떠올리고는 한다. 지금의 만남이 평생을 함께 할 만남이 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평생의 우정이라는 단어에 대한 기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정에 대한 실망을 동반하게 된다. 지금의 만남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언젠가 헤어짐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지금이 아니면 인생에서 마주칠 수 없는 사람일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만남은 소중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전에는 내 삶의 일부였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내 삶의 일부이지는 못한 경우가 있다. 그들은 과거의 추억 한 부분이 되어주었기에 감사의 대상이다.


 그리하여 헤어질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지금의 순간 옆에 있는 사람과 인생을 더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나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자취를 감출지도 모르지만, 현재 내 인생의 일부가 되어 주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기에 지금 그 사람에게 충실하려 한다. 더 큰 관심을 쏟고자 한다. 의미 있는 만남들이 쌓여서 언젠가 삶을 정리할 때 허무함으로 괴로워하기 보다는, 즐거운 추억들을 기억하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