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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울타리를 넘어, 리뷰

리뷰, 대리사회

by GrapeVine.Kim 2017. 1. 31.

「대리사회」리뷰



 나는 얼마 전까지 A라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했다. A시설에서는 6개월에 한번씩 ‘장터’라는 행사를 열었다. ‘장터’는 각종 물건들과 음식을 지역 주민들과 A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행사였고, 사회복지 기금 마련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A시설에서는 대대적인 홍보를 하곤 했다. 그러나 그 행사의 이면에는 좋은 모습만 담겨있진 않았다. A시설의 직원은 ‘장터’를 위해 자신의 애장품을 시설에 기부해야했다. A시설은 각 부서별로 장터에서 사용되는 화폐인 ‘쿠폰’을 약 100만 원가량 구입토록 했다. 내가 소속된 부서에는 부서원이 13명이었는데, 직급에 관계없이 100만 원을 나누어 쿠폰을 구입해야만 했다. 행사는 보통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진행되었는데, 모든 직원이 출근해야했다. 그러나 출근부에 출근이 기록되는 경우는 없었다. 시설장은 행사 날 이루어진 전 직원의 출근을 ‘자원봉사’로 규정했다. 누구도 자원하지 않았음에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비치지 못했다. 결국 행사는 성대하게 치러졌고 시설에는 자동차 한 대가 생겼다.


 하루하루 격무에 시달리던 나는 부서장에게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A시설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 받아 30대 중반에 100여명의 직원 중 권력 서열 3위에 오르고, 다른 직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 부서장은 나를 빈 프로그램실로 불러내어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회사가 없으면 나와 가족은 생활을 못해. 그래서 나는 회사가 가족보다, 그 무엇보다 우선이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김 선생은 책임감이 없는 것 아닌가?” 면담을 진행하며 김 부서장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해나갔다. 나는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내 삶을 조직에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직장을 다니며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휴일에 출근을 하지 않으면 안됐으며, 시설장의 자원봉사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됐다. 이는 말과 행동, 사유의 제한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과 행동, 사유의 제한을 요구받는다.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며, 생각을 제한당하는 인간을  두고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은 ‘대리인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대리인간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는 대리사회이다. 


 김민섭은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라는 책의 저자로 2015년 12월 까지 대학에서 현대소설 연구자로 생활했다. 그는 대학의 대리자로 대학에서 8년간 시간 강사로 일을 하였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그를 노동자로 대우하고 보호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과 생계를 위해 카카오드라이버의 대리운전자 일을 하였다. 그는 대리운전의 노동 현장에서 ‘대리’로 이루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고「대리사회」라는 책을 출간하게 됐다.


 대리운전자는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차주가 설정한 목적지로 운전을 한다. 대리운전자는 운전석을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듣고 싶은 음악을 틀 수 없다. 오직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으로 핸들과 악셀, 브레이크를 조정할 뿐 다른 행동의 자유는 없다. 또 손님이 먼저 말을 걸기 전에는 손님에게 먼저 말을 할 권리도 없다. 손님과의 대화에서 가치관이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때에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다.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도, 교수에게 학점을 따기 위한 학생들도, 거대하게는 한 국가의 국민도 이러한 대리인의 속성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김 부서장은 조직을 위해선 무엇이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자신처럼 하길 요구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조직에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었고, 조직의 일을 하며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조직의 대리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의 역할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것이고, 조직은 아무렇지 않게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의해 규정된 자가 아닌 주체로 서고 싶었다. 그렇다면 주체로 살기 위해선 직장인이 되면 안 되는 것인가? 어떤 조직에 속하면 안 되는 것인가? 어떤 사회에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누군가로부터 어떤 일을 수주하면 안 되는 것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대리인으로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김민섭은 대리인간을 두 부류로 구분하는 것 같다. 자신이 대리임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는 개인들을 주저앉힌다. 하지만 그것이 대리된 욕망임은 알지 못하고 주체로서 정의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국가/조직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는 모든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 자신이 대리임을 모르는 이들은 대리된 욕망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을 다스린다. 그러나 그에게도 언젠가 자신이 대리였음을 인식하는 순간이 온다. ‘자신을 주체로 믿던 누군가 밀려나고 나면 그를 잉여, 패배자로 규정하고는 곧 다른 대리인간을 세운다.’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동과 말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 김민섭은 한 발 물러서 자신을 바라보고 대리인으로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라고 이야기한다. 대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서야 주체로 살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다. 


 김민섭은 대리인인 자신을 발견하고서야 자신의 대리인이 된 타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대리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할 수 있게 되고, 대리인을 주체로 새워주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가 주체가 되기 위해서 대리사회를 깨우치고, 서로 주체로 설 수 있기를 이 책을 통해 바라는 것 같다.


 나는 주체로 살아가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런 와중에 「대리사회」를 읽고 그간 내가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내 대신 노동을 하고 있는 나의 가족이 나의 대리인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나의 대리인이 된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거기서 서로를 주체로 만드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대리사회의 실체를 파악한 김민섭은 다시 누군가의 대리인이 되어 타인의 운전석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다시 누군가의 대리인으로 돌아가야 함을 느낀다. 대리사회 속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실체를 파악하고 대리로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주체로 서는 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어 「대리사회」의 저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