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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17.1.5 / 궁핍한 사람은 녹물을 먹는다.

by GrapeVine.Kim 2017. 1. 5.
 얼마전 집에서 쉬고 있는 와중에 배가 아팠다. 무얼 잘 못 먹었는지...배가 아프면 찬 물을 마시는게 좋을게 없어 부러 따뜻한 물을 마신다. 커피포트로 물을 데워 흰색 도기 컵에 따랐다. 역시 배가 아플 때는 따뜻한 물이 좋다. 집에 매실 원액이라도 있다면 같이 마시면 더욱 좋다. 그런데 물을 마시고 내려 놓은 컵을 보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흰색 컵 안에 담긴 물은 노란 색이었다. 나는 내가 타지도 않은 매실 원액이 들어있었나 잠시 고민해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커피포트에는 분명 싱크대에서 받은 물만 넣었기에 그럴 일은 없었다. 싱크대에 가서 다시 물을 받아보았다. 속이 하얀 컵 내부는 다시 누렇게 변했다. 뭔가 이상했다. 이게...녹물인가...?

 나와 아내는 결혼하며 되도록 서로가 가진 것으로, 서로의 힘을 모아 결혼 생활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돈과 독립적인 결혼 생활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과 성인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기도 했지만, 양가의 실제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한 것도 있었다. 우리는 결혼에 대한 뜻을 서로 확인하고 결혼을 위해 함께 돈을 모았다. 결혼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돈이 필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주거 공간을 찾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얼마 없는 예산으로 집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집을 구하고자 하는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부동산 중계인을 하시는 지인의 소개로 저렴한 주거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물론 엄청나게 오래된 빌라였지만 신축 빌라나 아파트에 들어가기에는 돈이 턱 없이 부족했기에 그게 어딘가 싶어 계약을 했다. 

 오래된 구옥은 각 부분의 노후화로 인하여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한다. 잘 지은 집이라면 2~30년 거뜬할지도 모르나...그런 집이 흔한 것 같지는 않다. 매설된 수도관이 터지기도 하고, 화장실에 붙여둔 타일에 금이 가있기도 하고, 문틀이 어긋나 방문이 잘 안닫히기도 하고. 한번은 작은 일에도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내가 아내에게 신경쓰이는 것이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던 적이 있다. 아내는 오래된 집에 살면서 그 정도는 감수해야하지 않겠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불꺼져 어두운 방 안 침대에 누워서 그래도 함께 살 수 있는 집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나즈막히 말했다. 나는 그렇지...하고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녹물이라니. 수도관 터지면 사람 불러서 때우면 되고, 화장실 타일에 금이 가면 내가 실리콘 사서 바르면 되고, 문이 잘 안닫히면 방문 안닫고 살면 되는데 녹물이라니. 내가 마셔야하고 라면 끓여 먹어야하고, 씻어야 하고, 양치하고 입 행궈야하는 그 물이 녹물이라니. 불안 증세 중 하나인 건강 염려 증상이 다시 돋기 시작했다...아내에게 집 전체 수도관을 교체할까 이야기를 꺼내보았으나, 아내는 그런 대규모 공사를 할 자신이 있는지 되물었다. 나는 비용이며 과정을 떠올리는 일조차 두려웠다. 집에서 나오는 물들은 아직 녹물의 농도가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고 조금 물을 틀면 다시 깨끗해보이는 물이 나오고 있어서 아내와 나는 조심히 물을 사용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녹물이 나오는 집이 또 있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녹물이 나오는 집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녹물로 인해 고생하고 있었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에 대처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축 빌라나 주택,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 뿐만은 아니었기 때문이고, 잘 지은 아파트라도 10년, 20년이 지나면 녹물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때문이다. 

(http://imnews.imbc.com/replay/2016/nw1800/article/3978688_19830.html 이 기사처럼 녹물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 집은 많았다.)

 물은 사람들이 살면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생활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녹물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수도관 전체를 바꾸는 것인데, 비용도 만만치 않고 아파트 같은 많은 세대가 연결된 곳은 더 어렵기도 하다. 또 가정 내에 수도관을 바꿔도 가정에 도착하기 전에 녹물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하니 이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비용적인 면을 고려하여 수도관을 세척하거나 내부를 코팅하는 방법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완벽하게 녹물을 제거해줄 수가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물이 나오는 곳에 녹물 필터를 설치하여 녹물에 대처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심한 경우에는 하루도 안되어 필터가 오염된다고도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노후화된 수도관으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 중에 한사람이 되었다. 다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님에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예전에는 어떤 집에 녹물이 나온다고 하면, 집에 곰팡이가 생긴다고 하면, 집에 균열이 간다고 하면, 집에 비가 샌다고 하면 이사가야겠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한 곳에 터를 잡아보니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숨만 쉬며 살기에도 버티기가 쉽지 않은 서울에서 더 나은 집을 구하는 것은 고사하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터에서 대출금을 갚으며 버티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통장에 비축한 여유돈이 충분해서 여기 좀 불편하네, 다른 곳으로 이사가야겠다 하고 쉽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어도 녹물 안나오고 문제 없는 새로 지은 빌라, 아파트로 이사가야겠다고 말 하기에는 더 어렵겠지 싶지만.

 서울에만 50만가구 이상이 녹물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한다.(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319_0013968602&cID=10201&pID=10200) 전국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곳에서 어려움을 감수하고 사는 이유는 무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처럼 거기보다 나은 곳으로 가기에는 형편이 안되기 때문이 아닐까. 오래되고 노후된 집에서 살수 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녹물은 사람의 건강과도 밀접하게 관련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물을 마시다, 밥을 해먹다, 씻다 등의 기본적인 생활만으로도 건강의 증진과 악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형편상 노후된 집에서 사는 사람과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은 그렇게 건강적인 면에서 차이가 생길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건강은 경제활동에 또다시 영향을 주게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결국 경제적 빈부의 차이는 건강의 빈부차와 관련이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궁핍한 사람들은 녹물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녹물을 먹게 된 사람은 더 궁핍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가나 지자체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상하수도 교체에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우리집 모든 살림살이 다 옮길 기회 있고, 리모델링 할 여유돈이 생기면...한번 시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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