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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12.10.07

by GrapeVine.Kim 2016. 12. 18.

◎ 사회복지와 나의 길


 때는 1997년, 김영삼 정부의 경제적 지휘 실패로 한국은 IMF에 구조조정을 요청하게 된다. 신용이 떨어진 한국 사회는 돈이 돌지 않게 되었고, 이것은 많은 기업들의 줄도산을 불러왔다. 기업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은 평생을 안정적으로 일하며 가족들과 자신의 몸을 부양하리라 믿고 한 몸 바치던 기업에서 가차 없이 퇴직당하고, 파산 직전의 기업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던 많은 사람을 사람은 할 수 없었을 잘라서 버리는 행태를 보였다. 이런 일은 너무나 많은 곳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일어나고 있던 일이었기에, 아프고 쓰라린 상처를 가득 안게 된 사람들은 어디 하나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그저 스스로 삼키고, 가족들에게 토하고, 스스로 포기할 뿐이었다.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이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우리 집은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도 많이 힘들었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했고, 무모한 도전 속에서 집안의 빚은 늘어만 갔다. 자포자기한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여자 혼자서 한 가족을 부양하도록 사회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우리 가족은 힘 없이 무너지고, 도움 없이 견딜 수 없었던 우리는 분에 못 이겨 서로를 비난하며 물어 뜯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은 내게 힘겨운 상처로 가득하고, 그 시절 나는 고립되어 세상을 보게 된다.


 학교가 끝나면 습관처럼 TV를 켰다. 저녁 8시가 되면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시청했다. 뉴스에는 사람들의 처절한 삶과 힘겨운 눈물이 가득했다. 매일같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가족에 의한 동반자살 등의 사건이 터져나왔다. 일터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갈 곳을 없어 공원을 배회하다 결국 거리 역사 앞에서 술병과 함께 잠이 들었고, 아무리 일을 해도 하루 먹을 것도 벌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들이 방송되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뉴스가 끝나고 나오는 TV 속 사람들과 거리에 보이는 빌딩 속 사람들, 도로를 질주하는 멋진 외제차 속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해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회가 조금은 부조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는 했다. 이 세상이 조금은 잘 못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인데, 어떤 이는 거리를 방황하고 어떤 이는 다른 이들을 종 부리듯 살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부조화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기에 대한 아주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스스로가 노력을 부족하게 하였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문제를 자초한 것이기 때문에, 쓰러지는 사람들은 쓰러져도 괜찮다는 논리였다. 우리 엄마도 내게 “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세상의 논리는 어쩔 수 없이 내게도 있었고, 그 세상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혼자서 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내가 사회복지를 알게 된 것은 우연찮은 계기로 인함이었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꿈도 없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하던 나는 앞으로 무얼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런 세상에서는 공무원이 최고라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부추겨져 공무원 사관학교라도 들어갈까 고민하던 나는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사회복지를 알게 된다. 평소 사회과목에 관심이 많았고, 어려운 가정 경제에 사회복지제도의 도움을 받고 있던 나는 사회복지과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가톨릭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된 나는 ‘사회복지’가 주는 긍정적 이미지에 만족하고 있었을 뿐, 사회복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복지 공부는 힘들었다.

 

 대학 1학년, 사회복지 개론으로 접한 사회복지는 여전히 애매모호하고 무엇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등의 과목은 사회복지에 필요한 이론과 지식을 가르치긴 하였지만, 여전히 사회복지가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이 때까지 여전히 사회복지는 내게 ‘힘겹고 어려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정리로 그칠 뿐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돕는 학문일 뿐인 사회복지를 하고 있던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우리가, 사회가 왜 도와야하는지 잘 몰랐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도 던질 줄 몰랐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정리도, 배움도 없었다. 그저 단편적인 지식을 모으는 시기였던 것 같다. 세상은 뭔가 부조리하지만, 그것은 이제까지의 세상이 말했던 것처럼, 모두 그 삶을 잘 못 유용한 사람들의 개인적 노력 부족과 능력 부족이 야기한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책임은 모두 개인이 져야 했다. 다만 사회는 실패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사람들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효율적인 인간 활용을 위해서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다였다. 사회복지가 무엇인지 몰랐던 나는 여전히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개인의 노력은 개인의 보상으로 이어진다고 그것을 진리처럼 가르치는 곳이었고, 난 그 사회에서 자란 어린 청년이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사회복지에 사용되는 제반 지식을 넘어서 사회복지에 대해 배워가기 시작하면서 난 그것에 대해 올바르게 배워갔던 것 같다. 점차 이 학문을 하면서 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배워갔다.


 사회복지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었다. 즉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비록 거창하게 ‘인간’에 대해 정의할 수 없고, 아직 다 이해하지도 못하였지만 사람은 사람이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주장한다. 사람은 때로는 무너지고,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때론 나태하고 때론 실수하는 존재다. 어떤 이는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내고, 어떤 이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만큼 초라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앞으로의 삶을 희망할 수 있고, 약하지만 강하기도 하며, 모순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아름다운 행동 또한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간다. 그리고 나도 그런 인간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나와 같은 존재였다. 현재의 모습이 그들의 가치가 되어선 안 되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약하고 강한 존재다. 서로 다를 뿐이다. 인간은 그저 인간이기에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다. 그러한 가치 안에서 인간을 대하고 인간을 키워가야 함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물 속에서 살아간다. 지금 내가 내쉬는 숨을 들이마시는 사람들, 함께 이야기하고 상호작용하는 사람들, 살갗이 닫는 일상의 관계는 좀 더 큰 관계에 일부분일 뿐이며, 좀 더 큰 관계는 더욱 거대한 관계망의 일부일 뿐이다. 거대한 관계망과 많은 상호작용은 수많은 역사 속에서 체계화되어 한 사회를 이루었다. 법과 관습, 문화와 역사는 우리 삶의 토대가 되고, 양식이 되고, 우리를 이끌어간다. 개인은 자유로워 보일뿐, 사실 사회 속에서 얽혀 살아가는 존재들로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다. 우리는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거대한 물결 속에서 헤엄치는 자들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사회의 관계망과 영향을 모두 무시한 체, 개인의 삶은 개인이 구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과 세계의 역사 속에서 팽배했던 거대한 인식인데, 이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실과는 다르다. 사회 속에서 개인은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나 살아가기 어렵고, 사회적 구조는 한 사람의 개인적 노력으로 극복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톱날이기에, 우리가 겪는 문제와 어려움은 톱니바퀴의 잘못된 구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의 문제는 톱니바퀴와 맞물린 모든 톱니바퀴, 결국 거대한 구조물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개인은 사회에 책임이 있으며, 사회는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개인주의적 문화가 팽배한 현재의 사회는 이러한 책임성에 대해 부정하고, 개인의 책임성에 대한 논리를 발전시켜 사회 경제 체제 전반을 구조화한다.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기득권과 권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으며, 소수의 개인적 성공 신화를 신봉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사회적 관계와 인과관계를 통해 현재의 지위를 획득한 것이지, 온전히 개인의 성취만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현재 개인주의와 자유 경쟁의 신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 세계는 복지의 황금기를 누렸지만, 석유 파동과 사회적 문제로 인한 경제적 침체 속에서 복지의 황금기는 한풀 꺾이고 말았다. 이제 신자유주의 체제 가운데 그것이 유일한 대안이자 방향이 되어서 사회를 선도해 나간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기류 가운데 흘러가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개인주의와 자유 경쟁의 팽배를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 더욱 심해졌으며, IMF이후 우리 사회에서 점점 진행되던 흐름을 가속화 시켜, 개인의 삶은 개인이 책임지며 살아남기 식 경쟁 문화가 발전하였다. 이 속에서 사회에서 인간성은 조금씩 말살되고 있으며, 능력 있는 인간만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갔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이러한 흐름에 대한 성찰을 해보곤 하였다. 사회복지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만 하는가.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사회복지를 행하는 사람은 과연 무엇을 바라보며 이 길을 걸어야 하는가. 이것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약간의 시각차이가 인간을 대하고, 사회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사회복지는 일반적인 지식체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 지식체계는 어떤 가치와 흐름, 방향 속에서 실체화 되고 생명력을 얻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사회가 부조리하며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이러한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과 가족을 부양하고 싶지만 자신의 몸을 누일 곳도 확보할 수 없어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100명 중 단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을 뿐인데, 99명의 자리가 없음에도 100명이 모두 죽을 듯이 경쟁하고, 경쟁에서 진 사람들은 각자의 노력이 부족하여 진 것으로 매도되고, 이긴 한 사람은 나머지 99명을 경멸하는 잘 못된 사회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사회는 정의로운가?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사회복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회복지는 개인에게 지어진 실패의 책임을 사회가 함께 지는 것이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삶의 대한 책임을 지고 문제가 발생했을 시 스스로 해결하도록 강요되는 개인을 사회가 다시 책임지어야 했다.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사회에 고발하며 희생된 사람들을 다시 살리는 활동이어야 했다.


 나에게 있어서 사회복지란 단순히 어려운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활동이상이어야 했다. 사회복지는 사회가 만들어낸 모순들을 바로잡고, 우리 사회의 깨어져가는 공동체성을 회복시키며, 사회 문제의 책임을 전적으로 지고 살아가는 개인의 짐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되어야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 시대의 상황 속에서 사회복지의 존재 이유가 당위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영역 속에서, 집단의 영역 속에서, 지역 사회의 영역 속에서, 법과 제도의 영역 속에서 사회복지 활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 환경과 그 구조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우며, 집단의 활동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사회의 자원과 구조를 파악하여 사회적 책임성을 가지고 함께 대처해가는 것을 이루어가야 한다. 법과 제도의 차원에서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영역들을 사회복지의 가치 속에서 파악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체계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사회에 영향력을 미쳐야 할 것이다.







2012년도, 아직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무렵...사회복지사를 꿈꾸던 내가 적어놓았던 글을 발견하고...지금의 내가 보기에 한 없이 부끄럽지만...현재의 나의 모습과는 관계 없이 한때 꿈꾸어왔던 것들을...가끔은 떠올려보고자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