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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울타리를 넘어, 리뷰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 리뷰

by GrapeVine.Kim 2014. 12. 18.



 친구가 별로 없었던 어린 시절, 내겐 학교가 끝나고서 갈 곳은 집 밖에 없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보지도, 친구네 집에 놀러가 밥을 얻어먹은 적도 내겐 생소한 일이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종종 같은 반에 속하게 된 아이들이 서로의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묻는다. 


놀 곳이 없던 그 때에는 새로운 친구의 집에 놀러가는 것이 친해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묻는 것이 두려웠다.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술에 취해서 할 일 없이 담배만 피워대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를 데려오지도, 또 놀러가지도 않았고 혼자 집으로 향했다.



집에선 항상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다. 몇 년을 맡아온 익숙해질법한 냄새였지만, 어린 내겐 너무나 독하고 싫은 냄새였다. 굴러다니는 녹색 술병과 지저분하게 떨어져있는 담뱃재와 꽁초들을 앞두고 폐인처럼 누워있던 아버지가 너무나 싫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밤만 되면 전쟁을 했다. 하루를 살기 위해서 종일 힘들게 밖에서 일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는 지친 몸으로 집에 왔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이었다. 두 사람은 자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욕설과 폭력을 숨기지 않았다. 매일 이어져오는 그 전쟁 속에서 어린 나와 동생은 무서워 떨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나에게 꿈은 평범한 생활이었다. 가족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여력이 있는 다정한 어머니. 매일 재미있진 않지만 쉴 수 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가족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뭐가 되고 싶다거나 뭘 하고 싶다거나 하는 질문에 나는 그저 그런 소박한 이야기로 안정을 기대했다.



매일 이어지는 전쟁과 같은 시간- 집 밖에 갈 곳이 없는 나에게 집은 전쟁터였고, 친구도 없던 나에게 마음 붙일 곳이란 없었다. 함께 살아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함께 살아감은 아픔이고 고통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누구도 없다고 여긴 나는 마음을 닫고 오로지 자신만을 보호하기에 급급한 사람이 되어갔다. 때론 서러움에 오열하고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지만 그런 마음도 어느새 차갑게 굳어버려 깊숙한 곳에 묻히고 말았다.



가족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내게 그 시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준 상처로 가득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무엇으로 그 시간을 이겨내고 살았을까. 이겨냈다는 표현보다 버티어냈다는 표현이 맞겠지 싶다.



당시 내게는 함께 그 시간을 버티어줄 버팀목 같은 사람이 곁에 없었다. 이제는 필요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던 나는 사실 내 작은 손을 놓지 않고 꼭 붙들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 같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슬픔에 잠들었던 그 밤들...누군가를 기다리며 나는 혼자라는 생각으로 채워졌던 깊은 외로움의 순간들. 책속에서 발견한 타인의 아픔 속에서 그 때를 기억하게 되는 오늘은 그 외로움과 슬픔을 잠시 꺼내어 본다.



비록 그 때 내게는 없었지만, 방황과 상처의 시기를 함께 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조금은 덜 아프고 덜 무섭고 덜 힘들지 않았을까. 가슴과 머리에 있는 멍울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대학시절 만난 공동체 지체들은 아픔을 만져주는 손길이었고, 넘어져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듬직한 팔이었다. 상처를 간직한 채 손을 놓지 않았던 그들의 사랑이 닫힌 마음을 열고 함께함과 사랑을 알게 해주었다. 참 다행이다.



받은 것 보다 줄 수 없는 나의 작음에 여전히 부끄럽지만, 비록 상처가 남아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다 해도, 힘든 누군가에게 있어서 그 손을 꼭 붙들어줄 작은 손이 되어주며 살리라 다짐해본다.


또 누군가가 내밀어 줄 그 손을 꼭 붙들며 살기를, 그렇게 함께 지지하며 기댈 곳이 되어주며 살아가기를 소망해본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떤 완벽한 사람이 번쩍 안아 원하는 곳으로 옮겨 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 만나기가 또 쉽지 않습니다. 우리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서로에게 작은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작가 김려령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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