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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나날, 기록

150903, 추락

by GrapeVine.Kim 2015. 9. 3.

 높은 하늘에는 아직 뜨거운 여운을 남기는 해가 떠있다. 한산한 거리에는 흰 반팔 셔츠에 검은 양장바지, 검정색 혹은 갈색의 구두를 신고는 무표정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 몇몇 남성들과 화려한 색깔이 군데 군데 섞여들어간 등산복을 입고서 무리지어 걸어가는 중년 여성들이 보였다. 느즈막히 어딘가를 가야겠다고 결심하고는 이것 저것 챙겨서 밖으로 나온 나는 그들이 보이는 큰 유리 창 앞 테이블에 앉아서 이렇게 한가롭게 타자를 치고 있다. 마치 이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양, 무언가 대단한 것을 적어내는양.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속에서 맴돌다가 연약한 속살을 할퀴고 흘러내려버릴 무언가를 달래듯 풀어줄 요량으로 죄책감 혹은 실망감 비스무리한 것들을 적어내려가는 것이겠다.

 일 하지 않는 사람은 어려움을 갖는다. 돈? 충분치 않은 경제력도 있겠고, 자신이 이 사회에서 별안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같은 그런 비릿한 모멸감 비슷한 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아무래도 생각을 끊어낼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해야만 하는 일도, 완수해야 하는 과제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결과물도 없기에 나는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된다. 외부에 집중이 필요한 일이 없을 때, 가장 쉽게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은 자신이다. 자신의 내면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끊임 없이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렇구나. 내가 그렇구나. 별로 좋을 것도 없을, 그 어떤 기쁨과 즐거움과 희망을 만들어 내지도 못하는 대상에 대해 깊숙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만 한다. 그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지와 관계가 없다. 마치 영화 '그래비티'에서와 같이 무중력 우주 공간에서 지구의 중력에 이끌리어 추락하는 것과 같다.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는 그 추락은 결국 끔찍한 파국을 맞이한다는 결과를 그와 함께 동반되는 공포 속에 숨겨두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나는 요즘 공포감 속에 있다. 나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허우적 거려보지만 그럴수록 늪에 빠진 것 같이 불가항력적으로 나는 생각한다. 이것 밖에 안돼?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거니. 이젠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 이전의 실수를 바로잡아볼 수도 있겠지만, 과연 나는 언제로 돌아가야하는걸까. 돌아간다고 내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그대로 지금의 내가 되어서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살겠고, 그 인생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이기에 인생은 '나의 인생'이 되고 만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결과도 다르지 않다.

 그만,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보자. 다시 허우적거려보자. 우주선을 찾아보자. 끝 없는 추락 속에서도 발을 디딜 곳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딪어볼 수 있도록. 라이언 스톤은 우주 속에서 먼지와 같은 자신의 미약함에 무릎 꿇고서 아무도 없는 작은 우주선 안에서 잠들기를 택했다. 그러나 맷 코왈스키의 존재가 그에게 다시 앞으로 나갈 용기를 주었다. 감사하게도, 내게는 내가 소중한 존재라고 진심으로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다. 지금 내가 보는 것이 끝이 아니며 내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계획 속에서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이 계시다는 믿음도 있다. 그렇다. 나는 아직 잠들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이력서를 제출할 곳을 검색해본다. 어제도 나는 면접에서 퇴짜를 맞았다. 분하기 보다는, 그럴듯해보여서 더 힘이 빠졌다. 그러나 이렇게 밖으로 나와 누군가의 질문에 나만의 대답을 해보는 것도 지금에 내겐 도움이 될 것 같다.

 조금 더 어렸을 때, 그 때는 내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이라는 의심을 해본적이 없었다. 당연하게 학교를 졸업하면 일을 하고,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누구나 경험할 인생의 대소사를 경험하다가 갈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며, 생각은 조금씩 달라진다. 당연히 잘 먹고 잘 사는 건 없겠구나. 몇몇은 고민도 고생도 없이 별 탈도 없이 살겠고, 몇 몇은 죽도록 고생하다가 괴롭기만하겠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은 좋은 일, 슬픈 일, 기쁜 일, 억울한 일 같이 별별 일을 다 겪으며 살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까. 모르겠지만, 두 가지는 확실하다. 내 인생이 무탈한 인생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과 내 인생이 어떤 부류일지는 내가 정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지겠다.

 나는 작다. 우주의 먼지와도 같다. 영화 속 주인공 처럼, 세상의 중심도 아니다. 세상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나름의 의미가 있을 뿐. 주어진 오늘의 의미를 발견하는...하루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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